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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공모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최근 전북 군산의 마이스터고인 군산기계공업고등학교(군산기공고)에서 개방형 교장 공모제 추진 과정 중 불거진 공정성 논란은 교장 공모제 자체의 한계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제도 도입의 취지와 의미를 상실한 채 형식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교장 공모제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살필 필요성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교장 공모제는 응모 자격을 기준으로 교육계 외부 인사에게 교장직을 허용하는 개방형 외에 초빙형(교장 자격증 소지자 대상)과 내부형(15년 이상의 경력 교원 대상)이 있다. 2007년 최초 도입 당시 교장 자격증 소지 여부나 연공서열보다 교육자로서의 자질이나 역량을 평가해 선발함으로써 공교육 혁신을 이뤄보자는 취지에서 나온 제도였다. 기대감이 높았던 이유다.

실제 현실은 달랐다. 2014년 3월 1일자로 교장 공모제를 실시한 전국 256개 학교 중 96퍼센트에 해당하는 245곳에서 교장 자격증 소지자가 뽑혔다.(<경향신문> 2014년 12월 30일자 기사 "평교사 출신 제한...'껍데기'만 남은 교장 공모제") 평교사 출신은 단 4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공모 교장 108명 중 평교사 출신은 7명

교장 공모제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교장 공모제의 도입 취지를 무력화하는 교육공무원 임용령(대통령령 제25890호)의 공모 학교 지정 비율 제한 규정 탓이 크다. 법 시스템상의 문제가 일차적인 배경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교장 공모제 실시 근거를 담은 2005년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에는 "과열된 승진경쟁을 완화하고 교장 자격증을 가지지 아니한 교원이라도 교장 공모제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한다"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다고 한다. 교장 자격증과 무관하게 평교사도 얼마든지 교장 공모에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11년부터 상황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는 교장이 공석 상태인 자율학교의 15퍼센트만 내부형 교장 공모제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이 중 또 다시 15퍼센트만이 교장 자격증이 없는 교사 지원이 가능하도록 교육공무원 임용령을 바꾸었다. 극소수(2퍼센트)의 평교사만 지원할 수 있도록 교장직 진입 문턱을 높인 것이다.

가령 올해 전북은 교장 공모제로 지정된 10개 교 중 초빙형과 내부형이 각각 5곳이었다. 그런데 교장 자격증이 없는 평교사가 응시할 수 있는 학교는 내부형으로 지정된 5개 교 중 한 곳도 없었다. 교육공무원 임용령의 15퍼센트 제한 규정 적용을 받은 결과였다.

교장 공모제의 파행은 전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7월 1일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9월 2학기 인사를 맞아 도내 49개 교를 대상으로 교장 공모제를 시행하기로 하고 지원자를 접수한 결과 69퍼센트에 해당하는 34개 교에서 1명만 단수 지원하거나 지원자가 0명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64개 교에서 공모를 실시한 올 초도 비슷했다. 평균 경쟁률이 0.98대 1이었고, 15개 교에서는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다.

교장 공모제의 첫 출발은 좋았다. 열정적이고 개혁적인 공모 교장들 일부가 부임한 학교에서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제도 도입 초기 교장 공모제의 효과를 분석한 일련의 보고서들도 공모 교장들의 직무 수행력을 높게 평가했다.

나민주 충북대학교 교수가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 의뢰로 작성한 '교장공모제의 공모교장 직무수행에 대한 효과분석'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이에 따르면 임명제 교장보다 공모제 교장의 직무 수행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교과부 의뢰로 충북대학교 지방교육발전센터가 작성한 '교장공모제 학교의 효과 분석'에서도 내부형(85.1), 개방형(83.5), 초빙형(81.7)의 순서로 직무수행 점수가 높게 나왔다. 특히 여기서는 평교사 출신의 내부형 공모제 교장이 직무수행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교장 공모제 시행 원년인 2007년 내부형 공모 교장은 69퍼센트, 초빙형은 22퍼센트 정도였다. 이 비율은 4년 뒤인 2011년에 내부형 17퍼센트, 초빙형 82퍼센트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2014년 현재 전체 공모 교장 108명 중 평교사 출신의 내부형 교장은 7명에 지나지 않는다.

교장공모제, 제자리 찾으려면...

10년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 교장 공모제는 허울만 남아 있다. 일각에서는 교장 자격증 소지자를 대상으로 하는 초빙형이 공모 교장의 대다수를 점하면서 끼리끼리 나눠먹기, 담합 의혹 등의 비판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교장 공모제는 잔여 재직 연수가 오래 남은 '젊은' 교장들의 임기 연장 수단으로도 악용되고 있다. 현행 법률상 교장직은 4년 중임이 가능하다. 임기를 모두 채우면 8년이다. 그런데 이 8년에는 교장 공모제에 따른 임기는 제외된다. 퇴임까지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이 남은 교장들이 눈독을 들일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교장 공모제의 이면에는 최근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의 '과잉 시행령 통치' 문제도 깔려 있다. 2014년 4월 30일 국회 입법조사처가 교장 자격증이 없는 평교사의 교장 공모학교 비율(15퍼센트)을 대통령령으로 제한하는 것이 교장 공모제 입법 취지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법률 해석을 내놓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교장 공모제 도입의 취지를 살리려면 초빙형이 공모제 교장직 대다수를 점하는 것을 가능케 하고 있는 교육공무원임용령을 손볼 필요가 있다. 내부형을 15퍼센트로 제한하고 있는 조항을 없애거나 비율을 조정하면 된다. 교장 공모제 효과 분석 보고서들이 직무 수행력과 학교 구성원 만족도 측면에서 초빙형보다 내부형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교장 공모제 지원 자격 조항을 꼼꼼하게 따지는 일도 중요하다. 군산기공고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해관계인을 배제하는 조항이 현실과 맞지 않는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선발 과정도 고쳐야 한다. 개방형 교장 공모제가 특히 그렇다. 현행 개방형 공모 교장 선발 절차는 1차 학교(3배수 추천), 2차 교육청(2배수 추천) 심사 뒤 교육감이 1명을 최종 선정해 교육부장관에게 임용 추천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문제는 1차 심사에서 지원자들의 교육 전문성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검증할 수 있는 절차를 제대로 진행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개방형 교장 공모제를 택하고 있는 마이스터고의 경우 그 특성상 산업체 인사들이 다수 지원한다. 교육 문외한이자 효율성을 중시하는 '기업가 정신'의 소유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의 교육 철학이나 역량을 학운위가 구성하는 1차 심사위원단이 제대로 검증해 평가할 수 있을까.

학교운영의 세부 영역별로 개방형 교장 공모제 심사 전문가 인력 풀을 구성해 1차 심사 주체로 활용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 교장 공모제 추진 시 인력 풀에서 전문가 심사위원을 무작위로 추첨해 이들에게 1차 심사 과정을 맡기는 식으로 하면 된다. 심사 과정의 불공정 시비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2012년 한국고용정보원의 직업만족도조사(759개 직업 현직 종사자 2만6181명 대상)에서 초등학교 교장은 1위, 중고등학교 교장은 49위로 나타났다. 교장직을 다는 순간 무소불위에 가까운 권한을 행사하는 한국식 교장제도의 결과다.

6개월짜리 연수를 성실하게만 받으면 주어지는 교장 '자격증'이 교장 '자격'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교장의 자율성이 학교의 자율성"이라는 말이 있으나 현실에서는 교장'만'의 자율성에 그치고 말 때가 많다. 교육적 열정과 소신으로 뭉친 평교사나 교육계 외부 인사들의 교장직 입직을 보장하는 교장 공모제가 하루속히 제자리를 찾아야 하는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태그:#교장 공모제, #교육공무원 임용령, #내부형과 초빙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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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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