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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6월 가계부입니다.
 우리 집 6월 가계부입니다.
ⓒ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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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조목조목 가계부를 적어 보았습니다. 적어놓고 보니 '야! 그동안 내가 살림을 어떻게 했지?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지출내역을 아무리 훑어보아도 식비 포함 기초생활비에 대한 내역을 어디에서도 찾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머니 포함 우리 다섯 식구는 먹지도 입지도 않고 살아왔단 말인가! 신선도 아니면서, 이슬만 먹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말입니다.

우선은 매달 반드시 지출되어야 하는 금액만 우선 발췌하여 적어본 것이 이 정도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좀 더 사실적으로 적어 내려간다면 아마도 전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릅니다. 2001년 맞벌이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꾀를 부린 적이 없고, 느리지만 고지식하게 꾸준히 노력해서 올해 처음 부부합산 월 500만 원을 처음 넘게 되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실수령액이 오백만 원을 넘은 건 올해 6월이 처음이었습니다. 매년 1월 그야말로 쥐꼬리만큼의 급여인상이 이루어지긴 하였지만, 2015년 2월 무시무시한 연말정산 납부금액과 2015년 4월 건강보험료(2014년 정산분) 폭탄을 맞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연말정산 납부액만 봐도 남편은 83만 1190원, 남편 앞으로 몰아주느라 아무런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었던 난 103만 3430원. 2015년 2월 급여부터 일시불 혹은 삼개월 분납으로 완납을 하고 돌아섰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우뚝 멈춰 서 있는 2014년 건강보험 정산납부액, 남편과 나 포함해서 70만 9380원. 찍소리 못하고 고스란히 일시불로 완납하고 이제야 겨우 제대로 된 급여명세서를 받아 쥐게 된 것입니다.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맞벌이 수입 160만 원에서 시작... '늦은 장그래'들의 삶

처음엔 저도 제법 계산기 두들겨가며 은행이율을 계산하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재테크 격언 등을 중얼거리면서 목돈을 만들어 집을 넓혀야지, 남편 차를 바꿔줘야지라는 꿈에 부풀기도 하였습니다. IMF 때문에 실패하고, 수입은 없는, 지출만 나날이 늘어가는 가계부를 적는 일이 사치가 되는 시간을 견디고, 2001년 어렵사리 남편과 맞벌이를 시작했을 때, 남편의 월급은 백만 원, 제 월급은 육십만 원이었습니다. 남편의 나이 마흔 하나, 제 나이 스물아홉 그렇게 우리는 '늦깎이 장그래'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듣고 배운 것은 있어서 수입이 아무리 적어도 수입의 50% 이상은 저축을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았습니다. 가계 수입이 백육십만 원일 때, 팔십만 원을 저축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최대 사십만 원을 저축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한 해 한 해를 보내면서 급여가 조금씩 올라 남편 암보험도 하나 가입하고, 운전자 보험도 가입하고, 제 치아보험도 가입하고 생활비를 쪼개어 주택청약저축도 가입했습니다. 그렇게 일 년에 한 가지씩 새롭게 준비해 온 것입니다.

지난 2014년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대충이나마 남편의 연봉과 나의 연봉을 계산하고 이번에 작성해보게 된 가계부처럼 2014년 한 해 지출금액을 대충 뽑아보다 그만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남편과 내가 이렇게라도 벌지 않으면, 남편과 나에게 딸린 네 명의 식솔들을 도저히 먹여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자식이라곤 나 하나가 전부인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에게 터무니없이 부족한 금액이지만 매달 당당하게 생활비를 보내 드리려면, 나는 아직도 한참이나 더 멀었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참이나 더 열심히 일을 해야만 하겠구나... 마음을 다잡고 정신을 번쩍 차렸습니다.

솔직히 나이 마흔이 넘어가면서 멀쩡하던 몸 곳곳이 쑤시고 아팠고 꾀도 나, 남편 혼자 벌게 하고 놀고 싶다, 쉬고 싶다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어느새 긴장이 풀어져 밥숟갈이나 뜨고 사니 놀고 싶은 생각이 나는구나... 그러나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허황된 꿈에 젖어있던 시간들을 깨끗하게 지워버렸습니다. 일해야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돈 벌어서, 불쌍한 우리 엄마 생활비도 드리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드려야지, 다짐했습니다.

그럼 도대체 5인 가족 기준(친정어머니는 생활은 따로 하시니 살짝 빼드리고)인 우리가정은 식비, 의료비, 대학생, 고등학생 학비, 가족들 의료비는 어디에서 충당을 할까요? 구정이면 기본급의 100%, 여름휴가 때 기본급의 100%, 추석 때 기본급의 100%, 5월 가정의 달엔 기본급의 50%, 12월 연말에 기본급의 50% 외 상여금을 가지고 매달 적자를 메우고 일년에 두 번 대학교 등록금, 분기별에 한 번인 고등학교 수업료를 내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매월 적자투성이에, 수입금액이나 지출금액이 빠듯하기만 하다보니, 가족 중 누구 한 사람 아프기라도 하면 가족구성원들만 비상이 아니라, 통장잔고도 비상이 걸립니다. 2015년 1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어머니 두 분이 일시에 병원에 입원을 하셨는데, 시어머니는 5일 정도 경과 관찰 후 퇴원을 하셨고, 친정어머니는 양쪽 무릎에 인공관절 삽입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24시간 엄마 곁을 지키지 못하는 나 대신 엄마를 돌봐줄 간병인 비용에, 병원비, 장기간 요양비까지 들었습니다.

'엄마가 얼마 있는지 먼저 계산하면 모자라는 부분은 내가 보탤게요'라고는 할 수가 없어 2015년 1월, 2월 우리 집 통장은 뼛속까지 환히 다 보이게 투명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몇 년에 걸쳐 벼르고 벼르던 수술이었고, 수술 받기 전엔 제대로 걸을 수가 없어 너무나 고통스러워 한 엄마의 모습에 가슴이 아파, 하루라도 빨리 수술시켜 드리고 싶었기에... 수술 후 완쾌된 지금 지팡이 없이 두 다리로 걸어 다니시는 엄마의 모습이 얼마나 감사하고 반가운지 모릅니다.

그래도, 여섯 식구 중 누구 한 사람 어디 아프기라도 할라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지금 통장에 돈이 얼마가 있더라? 입니다. 하루 아침에 살림살이가 대단하게 나아지지 않는 한, 남편과 내가 네 식구를 거느리는 공동가장의 자리를 함께 하는 한, 팍팍한 살림살이에 대한 고민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두 어머니 모시고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제주도 여행

지난 2013년 연말정산 때 나만 엄청난 금액의 세금을 납부하고, 올해도 부부가 나란히 적지 않은 세금을 완납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저축하기를 세금 내는 것처럼 하면 우리네는 금방 부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입니다. 무섭게 세금징수를 해가는 분들에 대한 조금의 미움이 담긴 볼멘소리이기도 하지만, 실제 저축을 세금처럼 하게 된다면 금세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축? 다음 달부터 하지, 오십만 원? 아냐 매월 삼십만 원씩만 저축할 거야... 쓸 돈도 없는데, 먹고 죽을 돈도 없는데 저축을 어떻게 해.'

쓸 돈이 없어도, 먹고 죽을 돈이 없어도 납세의 의무는 국민에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무서운 의무이므로 대다수 선량한 국민들은 세금을 납부합니다. 정말 돈이 없어 다음 월급날까지 한 끼를 거르고, 한 끼는 라면으로 해결하고 나머지 한 끼는 얻어먹고 산다고 하더라도, 우리 근로자들은 세금을 먼저 뗀 나머지 금액을 실수령하게 되니까요. 세금 떼이는 것처럼 저축을 하게 된다면 순식간에 부자가 되지 않겠습니까? 앓는 소리는 아무런 소용이 없잖아요.

2015년 하반기부터 근로자 자율에 따라 갑근세를 더 많이 공제하였다가 연말정산 때 세금폭탄을 피하는 방법과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고정적인 갑근세 공제 후 연말정산을 하는 방법을 선택하게 하는 제도가 신설된다고 연이어 보도들을 하던데요.

한 푼이라도 근로자 세액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게 아니라, 세금폭탄은 당연히 때릴 것이니, 미리 조금 더 떼어놓았다가 세금폭탄을 피하든지 아니면 지금처럼 세금폭탄 맞고 그해 6월쯤 제대로 된 첫 월급을 받든지 자율적으로 선택하라니... 이런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저축하고 조금씩 부자가 되기를 꿈 꿀 수 있는 방법은 저축을 세금이라고 생각하고 모으는 방법 말고는 없을 것만 같습니다.

늦은 나이에 장그래가 된 우리 부부는 그래서 마음도 바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스무 살에 암보험을 가입하고, 개인연금을 준비하는데 우리는 그걸 마흔부터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추석, 구정, 여름휴가 연휴를 이용하여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인천공항이 북적거리는 뉴스를 딴 나라 이야기인 듯 멍하니 지켜보고, 바다 건너 제주도 여행쯤이야 이웃집 마실 가는 것 만큼이나 수월해진 삶 속에서 아직 한 번도 육지를 떠나본 적 없는 고달픈 삶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오늘을 살 수 있는 건,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살림살이이지만, 55만 9000원짜리 세탁기를 무이자 12개월 할부로 사야하는 살림살이지만... 할부 첫 달엔 '언제 다 갚나' 하다, 완납하고 나면 그래도 우리 세탁기 한 대 장만했다고 우쭐해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네 장그래들은 오늘을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둘째아이가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필요한 학원을 보내 달라 간청을 하여 7월부터는 매달 32만 원의 고정지출이 더 늘어납니다. 여기에 제가 희망풍선 하나를 부풀려 본다면 매월 삼십만 원씩 별도로 저축해 두었다가 2016년 9월 추석연휴가 되면 우리도 남부럽지 않게, 어머니 두 분 포함하여 온가족 제주도 여행을 가 보는 것입니다. 이제껏 모르다가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항공권 예매는 일년 전부터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누가 일년 전부터 예매를 해서 제주도를 가는가 하였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올해 9월 추석연휴 국내선 항공권 모두가 매진 행렬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마흔이 넘어 처음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각 항공사 사이트들을 클릭해보았더니 신세계가 바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지출할 곳도 많고, 저축해야 할 명분도 뚜렷하고, 벌어들이는 수입은 뻔하지만, 올해보다는 조금은 더 나은 내년을 꿈꾸고, 늙은 어머니 두 분께 유명하다는 제주도 갈치찜 사드리고 싶은 제 희망풍선이 펑! 터지지 않게 올 한 해 열심히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백화점 정기세일과는 평생 상관없는 살림살이, 면세점 물품들이 아무리 싸다한들 그림의 떡인 살림살이이지만, 매년 이루고 싶은 것에 대한 희망목록을 하나씩 세우고 이뤄가는 우리네 장그래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나날들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열심히, 그래서 오늘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장그래들을 많이 응원해 주세요. 남편과 나, 늦깎이 장그래는 오늘도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덧붙이는 글 | 장그래 가계부 공모 기사입니다.



태그:#장그래가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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