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일 <조선일보>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카드뉴스. "'변호인'은 되고, '연평해전'은 안 된다?"라는 제목이다.
 2일 <조선일보>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카드뉴스. "'변호인'은 되고, '연평해전'은 안 된다?"라는 제목이다.
ⓒ 조선일보 페이스북

관련사진보기


지난 2일, <조선일보>(아래 <조선>) 페이스북 페이지에 카드 뉴스가 올라왔다. 제목은 ''변호인'은 되고, '연평해전'은 안 된다?'였다. 최근 개봉한 영화 <연평해전>과 2013년 개봉한 <변호인>의 포스터를 나란히 붙여놓았다. 그런데 내용을 살펴보면 두 영화 자체를 단순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카드뉴스는 "2002년 6월 29일, 북한의 기습 포격에 맞서 대한민국 해군 6명이 전사하면서 승리로 이끈 연평 해전을 소재로 만든 영화"라고 <연평해전>의 내용을 소개한다. 이어서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최단 기간 200만 돌파"라고 덧붙인다.

그 뒤에 나오는 내용에 꽤 당황스러운 구석이 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올라온 평론가의 영화평이 단 하나라고 지적한 것이다. 포털 업체와 제휴한 잡지사의 평론가들이 한줄평과 평점을 올리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을 설명하면서, <조선>은 "전체 20명의 평론가 중 단 한 명만 평점을 매긴거죠"라고 지적한다. 여기서 영화 <변호인>이 호출된다. <연평해전>의 포털 평점은 하나뿐인데, "재작년 개봉한 <변호인>에 평점을 올린 평론가는 15명"이라고 수치를 비교한 것이다.

카드뉴스는 <연평해전>에 대해 "영화 자체가 뻔할 것 같아, 관심이 없다"며 영화를 보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힌 어느 평론가의 글을 담았다. 그리고는 "영화의 사회적 의미를 비평하는 것도 평론가의 일입니다. 낮은 평가를 했다 곤욕을 치를까 걱정된다고요? 그럴거면 '전문가' 타이틀을 반납하는 것이 낫겠죠?"라고 쏘아붙인다.

기억한다, 배우 송강호에게 "급전 필요한가" 묻던 기사를

2013년 10월 30일, '조선닷컴'의 이름으로 나간 기사. <변호인>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 송강호의 영화가 잇달아 개봉하자 "급전 필요한가?"라는 제목을 달았다.
 2013년 10월 30일, '조선닷컴'의 이름으로 나간 기사. <변호인>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 송강호의 영화가 잇달아 개봉하자 "급전 필요한가?"라는 제목을 달았다.
ⓒ 조선닷컴 캡쳐

관련사진보기


<조선>이 평점 개수를 비교하면서 <변호인>을 불러냈으니, 이 영화를 다뤘던 그들의 유명한 기사를 다시 돌이켜보자. 2013년 10월 30일, 영화 <변호인>이 개봉하기 전에 <조선>은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를 냈다.

설국열차, 관상 이어 변호인까지... 송강호 연이어 영화 출연 "급전 필요한가"?

2013년, 출연한 흥행작들이 연달아 개봉한 배우 송강호에게 뜬금없이 "급전 필요하느냐"고 묻는 기사. 제목만 읽으면 재정난에 허덕이는 배우의 뒷얘기를 취재한 보도가 이어질 것 같지만, 역시나 내용은 별다를 것이 없었다.

"보통 특1급 배우들은 1년에 한편 정도의 영화에 출연하는 정도"라면서 "때문에 일각에서는 송강호가 "급전 필요한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올 정도"라고 적어놓은 수준이다. 구체적인 내용 없이 몇 줄에 불과한 기사는 검색어를 염두에 두고 쓴 낚시성 기사로 보일 정도였다.

짧은 기사는 '의도한 건 아닌데 작품들의 개봉시기가 겹쳤을 뿐'이라는 송강호의 인터뷰를 인용해서 마무리를 지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수긍할 수 있는 말이다. 성실한 배우라면 짧은 휴식기를 갖고 꾸준히 촬영 작업에 임할 수 있고, 1년에 3편 이상의 영화가 개봉하는 것은 그저 우연이었을 것이다.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는 일정은 배우 개인이 아니라 배급사가 조율할 역할이지 않은가. 아니나 다를까, 배우 송강호는 시사회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미디어오늘> 기자가 이에 관해 묻자 "급전은 항상 필요하다. 그런데 이번엔 아닌 것 같다"라고 재치있게 대답하기도 했다.

<변호인>이 개봉하지도 않은 시기에 주연배우에게 "급전 필요한가"라고 물었던 <조선>. 심지어 해당 기사에는 기자의 이름조차 없고 <조선닷컴>이라고 나와있을 뿐이다. 그랬던 매체가 이번에는 <연평해전>에 대한 평론가들의 관심이 부족하다고 애둘러 비난하는 모양새다. 본인의 이름을 걸고 평점을 남기는 평론가들에게, 기자의 이름도 없이 배우를 폄하하던 언론이 지적하기엔 꽤 민망한 부분으로 보인다.

2일자 카드뉴스에서 <조선>은, 평론가들이 영화에 대한 평점을 남겨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럴거면 '전문가' 타이틀을 반납하는 것이 낫겠죠?"라고 쏘아붙인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영화를 보고 안 보는 것은 순전히 평론가의 선택에 달린 일인 것을. 또한 아무리 평론가라고 할지라도, 미처 관람하지도 않은 영화를 두고 이렇다 저렇다 평가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조선>은 '전문가' 타이틀 없이도 이런 일을 해낸 적이 있다. 지난해 10월 8일, <조선>은 사설에서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다이빙벨>이 상영된 것에 분노를 드러낸 바 있다(관련 기사 : [사설] 세금 받아 쓴 영화제가 국민 속인 '다이빙벨' 상영하다니).

당시 사설은 "부산영화제 집행위는 작품 완성도는 말할 것도 없고 국민을 오도하고 세월호 유족들 가슴에 못을 박는 과대망상 같은 작품을 상영함으로써 그간 쌓아올린 명성에 먹칠을 했다"고 적었다.

영화 <다이빙벨>에 담긴 이념이나 주장이 문제라고 하기보다, 사실이 왜곡되었으니 잘못됐다는 주장은 언뜻 중립적이고 적절한 비판인 듯하다. 그런데 <조선>의 기사를 읽다 보면 이상한 부분이 눈에 띈다. 바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얘기로는"으로 시작하는 기사의 두 번째 문단부터다. 이어지는 내용은 그 '영화를 보았다는 사람'이 누구인지 직접 인터뷰를 한 것도 아닐 뿐더러, 이는 필자가 직접 영화를 보고 쓴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도 <조선>은 글에서 <다이빙벨>의 완성도를 거론하고, 구성의 문제점까지 제기한다. 심지어 직접 내용을 확인하지도 않은 영화를 두고 "과대망상 같은 작품"이라고 비하를 서슴지 않는다(관련 기사 : <다이빙벨> 보지도 않고 비난하는 <조선> 사설).

평론가 압박하는 <조선>, <연평해전> '급 호평' 필요한가

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
 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
ⓒ (주)로제타시네마

관련사진보기


영화 <연평해전>은 한국의 분단현실과 쓰라린 기억을 고스란히 담았다. 영화는 영화 그 자체로 평가해야 마땅하며, 언론이 평가의 방향을 언급하며 개입할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그럴만한 가치가 기꺼이 있다면, 관객은 직접 극장을 찾아 영화가 주는 감동을 느낄 것이다. 이는 평론가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변호인>은 되고 <연평해전>은 안 되느냐'고 묻는 <조선>의 태도는 어딘가 의아한 구석이 있다. <조선>뿐만 아니라 최근 보수언론은 앞다투어 <연평해전> 띄우기에 나서는 분위기다.

한국전쟁 65주기에 하루 앞선 지난 6월 24일에 개봉하고, 북한에 맞서 싸운 해군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라서 그런 것일까? 지금껏 사회적 이슈마다 종북몰이에 앞장서고, 남북의 대립을 이념 전쟁에 적절히 사용하던 매체도 있기에 심히 그 의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 페이스북에 게재된 카드뉴스는 <연평해전>의 평점이 적다고 푸념을 늘어놓고, 영화를 안 봤다는 평론가들에게 "그럴거면 '전문가' 타이틀을 반납하는 것이 낫겠죠?"라고 적었다. 이는 '<연평해전> 평점 안 줄거면 평론가 하지 말라'는 우회적 압박처럼 들릴 정도다. <조선>은 왜 이렇게 특정 영화에 대해서, 관대한 수준을 넘어 후한 평가 주는 일에 동참하라고 부추기는 걸까?

<조선>은 <연평해전>이 보수진영을 위한 대표작으로 남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11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변호인>이 역대 흥행 7위의 성적을 올렸던 것에 자극받은 것 때문일 수도 있다. 영화의 소재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재임 당시 벌어졌던 전투이기에 민주 진영에 대한 비난의 도구로 이용하기에도 적절해 보인다. 북한과의 전투에서 끊임없이 '대한민국'이 드러나는 구도 역시 보수진영의 '애국심 마케팅'에 활용될 여지가 크다.

묻고 싶다. 굳이 평론가들을 들볶으면서 <연평해전>의 홍보에 적극 나서는 <조선>의 의도를 말이다. 특정 영화의 포털 평점을 두고 평론가의 '전문가' 자격을 운운하는 언론은, "혹시 급히 호평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떳떳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조선일보, #연평해전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