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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 사회의 활성화를 도모하며,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 간의 선의의 경쟁을 통하여 교육의 질적 수월성을 제고하고자 한다.'

1995년 정부가 교원 성과급 제도를 처음 도입하며 밝힌 취지다. 쉽게 풀어쓰면 이렇다. 담임 등 기피 업무와 초과 수업 부담을 돈으로 보상하고, 경쟁을 통해 교사의 자질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모든 동기부여의 바탕은 물론 돈이다.

여기서 잠깐, 낯선 분들을 위해 성과급 제도와 함께 2000년대 들어와 수차례 개정을 거친 현재의 교원 평가 제도를 간략히 소개한다. 교원 평가는 크게 근무성적 평가와 능력 개발 평가, 성과 상여금 평가 등 세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 평가의 주체도, 방법도, 시기도, 기준도 모두 다르지만, 세 평가 중 어느 것 하나 확실한 신뢰를 얻지 못한 채 근근이 시행해오고 있다.

흔히 '근평'이라고 줄여 부르는 근무성적 평가는 승진에 가히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학교장의 무소불위 권한이다. 승진이라고 해봐야 교감과 교장뿐인 교직사회에서 '벼슬길'에 오르는 유일한 통로이다 보니, 학교장이 핵심 측근을 심고 키우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된다. 학교장을 추종하는, 이른바 '왕당파'가 종국엔 교감과 교장이 되는 메커니즘의 핵심 고리인 셈이다.

능력 개발 평가는 학년 말에 근무 태도와 수업, 생활지도 등 지난 1년간의 교육활동 전반을 관리자와 동료교사, 학부모, 학생들에게 피드백 받는 장치다. 세부 항목에 대해 대개 매우 우수, 우수, 보통, 미흡, 매우 미흡 등 5단계로 평가하는데, 서술형으로 작성하는 항목도 있다. 다만, 교육활동과는 무관한 친소관계나 인상, 풍문 등 다분히 평가자의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될 여지가 크다는 맹점이 있다.

성과 상여금 평가는 학교별로 정한 기준에 따라 계량화된 점수를 부여하고 서열을 세워 다음 해에 상여금을 교사별로 차등 지급하는 방식이다. 학교마다 들쭉날쭉한 기준도 그렇지만, 다른 교사에게 지급되어야할 급여의 일부를 성과급이라는 이름으로 빼앗아가는 셈이어서 교사 간 갈등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많다. '상호 약탈 상여금'이라는 조롱까지 듣는 지경이다.

교원평가제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

이렇듯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원 평가 제도가 또 바뀔 모양이다. 지난 1일, 교육부는 공청회를 열어 '교원 평가제 개선 시안'을 공개했다. 교사 승진을 결정하는 '근평'과 성과급 차등 지급을 좌우하는 성과 상여금 평가를 '교원 업적 평가'라는 이름으로 통합 운영한다는 것이 골자다. 아울러,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생활 만족도 조사 영역을 삭제하는 방안도 담겼다.

공청회가 이어지는 등 나름의 보완책이 강구되고 있는 걸 두고 몽니부릴 건 아니지만, 교원 평가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 없이는 허물어진 신뢰를 회복하기란 쉽진 않을 전망이다. 어떻든 서열이 정해질 수밖에 없어 평가 기준 등을 두고 교사 간 갈등을 피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안고 있는 탓이다. 바뀔 내용이 뭐든 간에 '언 발에 오줌 누기'일 거라는 해석이 늘 뒤따르는 것도 그래서다.

더욱이 교육부의 방안대로 급여와 승진이 연동된다면, 그 갈등의 골이 더욱 깊게 패일 건 불 보듯 뻔하다. 시안이 공개되자마자 학교장의 교사에 대한 통제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지적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거칠게 말해서, 학교장이 꽃놀이패를 쥐고 그의 '꼬붕'들이 승진의 기회와 상여금의 혜택을 독식하게 될 것이라며 우려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수많은 우려와 공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교직 사회에도 성과급 제도가 도입된 건 '무한 경쟁'이라는 말이 보편화된 우리 사회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몰아치며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현실에서, 교직 사회는 공무원과 함께 유일한 '무풍지대'로 받아들여졌다. '철밥통'이라는 대명사가 두루 쓰이게 된 것도 그즈음이다.

저항은 했지만, 끝내 거부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바뀌든 교원 성과급 제도에 대한 여론은 늘 정부 편이었기 때문이다. 처절한 현실 앞에 명분은 헛된 이상일 뿐이었다. 일례로 당시 동료교사 한 분은, 담임을 기피하는 게 문제라면 성과급이 아니라 담임수당을 올려주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했더니, 여론에 의해 어처구니없이 '돈 밝히는' 교사로 낙인찍히는 수모를 당했단다.

쇠고기 부위 마냥 등급을 나누어 돈으로 교육 행위를 평가받는 게 교사로서 모욕적이라고 말했다가 '배부른 소리'라며 여론의 조롱을 받았다는 경우도 있다. 교사들의 교육 행위를 과연 계량화된 수치로 환산해 등급으로 나눌 수 있냐는 근본적인 질문에 당시의 막무가내 여론은 그 뜻을 곱씹어보기는커녕 '철밥통의 저항' 정도로 받아들였다.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거다.

어떻든 우리 교육 현장에 활력을 불러일으키겠다고 공언하며 교원 성과급 제도를 도입한 지 어언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평가의 방식과 기준 등이 수시로 바뀌었지만, 교원 평가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여전히 압도적인 듯하다. 이제는 교총 소속이든 전교조 조합원이든 평가받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교사들 또한 소수에 불과하다.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면 교원 성과급 제도에 대한 '성과'의 피드백이 필요하다. 한 번 자문해보자. 정부가 도입 취지에 명시한 대로, 성과급 제도로 인해 교직 사회는 활성화 되었나. 또, 교사들 간 선의의 경쟁을 통해 교육의 질적 수월성이 제고되었나. 교사를 포함해 우리 국민들 중 '그렇다'고 답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런 질문엔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교원 평가를 지지하는 여론의 바람대로 무능력하고 자질 없는 교사들은 걸러졌는가. 또, 수업과 생활지도에 최선을 다하는 열정적인 교사들의 사기가 북돋고, 매너리즘에 빠진 교사들에게 충분한 자극이 되었는가.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학교생활은 그만큼 행복해졌는가.

요즘 들어 이런 '삐딱한' 생각마저 든다. 교원 평가 제도라는 것이 교직 사회 전체를 무능력하고 탐욕스런 집단으로 매도하기 위한 정부의 '안전장치' 아니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해도 그들의 공고한 '철밥통'을 깰 수 없다는 부정적인 메시지를 여론에 계속 흘려 정작 정부의 무능함을 덮는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면 억측일까.

교육은 수치로 계량화하기 어렵다

여론의 뭇매가 솔직히 두렵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개혁을 위한 외부적 강제는 필연적으로 교직 사회의 협력을 방해하고 분열을 초래한다. 적잖은 시간이 걸릴지언정 교직 사회에 대한 신뢰와 자정 노력에 대한 지지 없이는 부작용만 양산될 뿐이다. 돈으로 교사들의 자존감에 생채기를 내서는 안 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울지도 모른다.

무릇 교육이란 수치로 계량화할 수 없는 활동이 대부분이다. 아이들의 일제고사 성적과 대학입시 결과를 평가 기준 삼을 게 아니라면, 교육적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정당성과 평가의 신뢰성을 두루 인정받기란 애초 무망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관계 속에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수치로 나타내고 등급화 한다는 건 정부 관료들의 책상 위에서나 가능한 발상이다.

요즘 일선 학교마다 수업을 개선해보고자 하는 교사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교사는 수업으로 말해야 한다. 이른바 '배움의 공동체 수업'니, '거꾸로 수업'이니, 수업 개선에 관한 연수라면 어디든 달려가 배우려는 분위기가 시나브로 확산되고 있다. 교실 안 아이들의 쾡한 눈빛을 통해, 자신의 수업 방식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음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좋은 등급을 받으려거나 승진을 염두에 두고 배우려는 건 아니다. 믿기 힘들겠지만, 그들 중에는 성과급 제도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관심조차 없는 '순진무구한' 교사도 많다. 요컨대, 교직 사회를 활성화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성과급, 곧 돈을 미끼삼을 게 아니라, 교사들의 자발적 활동을 장려하고 존중해주는 사회적 풍토가 우선 마련되어야 한다.

'당신은 S등급인지, A등급인지, B등급인지'를 묻기보다, 소수일지언정 아이들 곁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교사들의 선의를 믿고 격려해줄 수는 없는 걸까. 교직 사회에 대한 싸늘한 여론이 그들의 열정마저 꺾어버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태그:#교원평가제 개선안, #성과급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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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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