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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징용시설 유네스코 산업유산 등재 반대활동에 힘을 보태기 위해 캠페인 현장을 찾아 직접 활동에 나선 독일 현지 교민들이 한국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일제 징용시설 유네스코 산업유산 등재 반대활동에 힘을 보태기 위해 캠페인 현장을 찾아 직접 활동에 나선 독일 현지 교민들이 한국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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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쿠젠이라고 아세요? 손흥민 선수 활동하는 곳. 기차 타고, 버스 타고 세 번 갈아타고 왔어요."

전북 익산이 고향이라는 지화순(66)씨는 1974년 파독 간호사로 처음 독일 땅을 밟았다고 했다. 지씨와 함께 먼 길을 동행한 신정희(61)씨는 전남 고흥이 고향으로 지씨보다 한 해 앞서 독일 땅을 밟았다.

일본 정부가 추진 중인 일제 강제 징용 시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등재 여부가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시민단체의 독일 현지 등재 반대 활동에 재독 한인회 회원들도 막판 힘을 보탰다.

"강제 징용 시설 유네스코 등재 소식에 깜짝 놀라"

독일 경찰 관계자를 상대로 본에 사는 파독 간호사 출신 김현진씨가 홍보부스 설치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뒤로는 제39회 유네스코 산업유산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독일 본 국제컨퍼런스센터의 모습.
 독일 경찰 관계자를 상대로 본에 사는 파독 간호사 출신 김현진씨가 홍보부스 설치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뒤로는 제39회 유네스코 산업유산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독일 본 국제컨퍼런스센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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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IRA문화재환수연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등은 지난 2일(현지 시각) 오전 10시부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독일 본 세계콘퍼런스센터 회의장 앞에서 본격적인 캠페인 활동에 돌입했다. 현지 활동단은 세계콘퍼런스센터 맞은편 50m 거리에 홍보 캠프를 설치하고, 방문 활동단 첫 일정을 시작했다.

시작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파독 본 간호사협회 이름으로 관할 경찰 당국에 미리 집회 신고를 해 허가를 얻었지만, 총회장 경비를 맡은 경찰은 기대와 달리 처음부터 엄격한 기준을 요구해왔다. 스피커 사용과 현수막 게시를 불허하는 것은 물론, 회의장 안팎을 오가는 각국 위원에게 홍보 전단을 배포하는 것까지 금지했다.

또 다른 어려움은 때 이른 가마솥 폭염이었다. 지난 2일 낮 기온은 무려 36℃를 육박했고, 공교롭게도 홍보 부스가 차려진 회의장 앞 광장은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이 없었다. 독일 교민조차 "이맘때 이런 날씨는 없었는데, 어제부터 더위가 몰려왔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날 현장을 찾은 교민들은 재독 한일총연합회 회장을 비롯해, 재독 본 한인회 회장 등 임원까지 50여 명. 이들은 현지 사정에 낯선 방문단을 대신해 수고로움을 보탰다. 파독 광부, 파독 간호사 등이 중심을 이룬 한인 교민들은 다시 경찰을 설득해,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도록 허락을 얻는가 하면, 무더위를 피하기 위한 야외용 천막 2동을 손수 현장에 설치했다. 이어 직접 어깨띠를 메고, 김밥으로 점심을 대신하면서 현장 활동에 직접 나섰다.

제39회 유네스코 산업유산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는 독일 본 국제컨퍼런스센터 앞에 2일 한국시민단체의 홍보 부스가 차려지고 있다.
 제39회 유네스코 산업유산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는 독일 본 국제컨퍼런스센터 앞에 2일 한국시민단체의 홍보 부스가 차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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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인근 비스바덴에서 왔다는 교민 최완(74)씨는 "일제 징용 시설을 유네스코 산업 유산으로 등재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누구나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이해를 구하다 보면 상대 측에서 용서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는데, 일본만 왜 유독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파독 간호사 출신으로 40여 년 전 독일을 처음 밟았다는 김현진(68) 전 재독 본 한인회 회장은 "본 시내에는 교민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어서 걱정이 많았는데, 오늘 보니 알 만한 교민 분들은 모두 다 와 주신 것 같다"며 "소식을 듣고 먼 곳에 계신 분들까지 내 일같이 달려와줘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이날 현지 활동단은 회의장 안팎을 오가는 참가국 대표들에게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 하시마 탄광 등에 강제 징용된 피해자의 목소리를 담은 전단을 전달하는 한편, 취재에 나선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유네스코 산업 유산 등재의 부당성을 알렸다.

이들은 "광복 70년이 되도록 일본 정부는 제대로된 배상은 물론 사죄 한 마디 없다"며 "식민지 백성에게 강제 노역을 시켰던 참혹한 현장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면, 이는 일본 정부의 침략주의를 미화하는 것뿐 아니라 보편적 상식을 가진 세계인을 농락하는 것이다"라고 호소했다.

4일쯤 다뤄질 것으로 예상

유네스코 산업유산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독일 본 국제컨퍼런스센터 입구에서 한국 시민단체들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는 참가국 관계자들의 모습.
 유네스코 산업유산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독일 본 국제컨퍼런스센터 입구에서 한국 시민단체들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는 참가국 관계자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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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세계 기록유산 등재 추진단장을 맡은바 있는 안종철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자문위원장이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한 관계자를 붙들고 얘기를 나누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세계 기록유산 등재 추진단장을 맡은바 있는 안종철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자문위원장이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한 관계자를 붙들고 얘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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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난달 28일부터 현지 활동에 들어간 민족문제연구소의 기획 전시전에도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부정적 세계 유산과 미래 가치'라는 제목으로 지난달 30일부터 3일까지 독일 본 마리팀 호텔에서 일본정부가 등재를 신청한 산업유산 대상지에 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분석한 전시전을 펼쳐 오고 있다.

이번 39차 유네스코 세계위원회에 부의된 안건 중 일본 정부의 산업유산 등재 안건은 14번째 순서로, 오는 4일쯤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등재 여부가 막판으로 다가오면서 일본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분위기다. 아베 총리가 지난 2일 세계유산위원회 의장국인 독일 상원의장과 총리 관저에서 만나 등재에 협조를 요청했으며, 유네스코 산업유산위원회 취재에 나선 일본 특파원들도 한국 시민단체 활동 현장을 찾아 분위기를 살피는 등 반응을 보였다.

민족문제연구소, CAIRA문화재환수국제연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등은 등재 여부가 끝날 때까지 현지에서 계속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한편, 이번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는 일본이 신청한 산업화 유산 이외에도 한국이 신청한 백제역사유적지구도 등재 추천 대상이다. 사실상 등재가 임박한 가운데, 3일 안희정 충남도지사, 송하진 전북도지사를 비롯해 충남·전북지역 자치단체장들이 속속 독일 현지를 찾을 예정이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유네스코 , #독일 본, #일제 징용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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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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