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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사진은 지난 4월 8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기자회견 당시 모습.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사진은 지난 4월 8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기자회견 당시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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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리스트' 수사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하며 지니고 있었던 한 장의 쪽지에서부터 시작됐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허태열 7억, 홍문종 2억, 유정복 3억, 부산시장2억, 김기춘 10만 달러 2006년 9월 26일, 이병기, 이완구."

여기에 성 전 회장이 죽기 전날 <경향신문>과 인터뷰 한 내용이 보태졌다. 정치인에 금품을 건넨 것과 관련된 부분을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다.

'박근혜 당시 의원이 2006년 9월에 벨기에와 독일을 방문할 당시 수행한 김기춘에게 10만 달러를 줬다.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전달했고 당시 수행비서도 따라왔다.'

'2007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경선후보캠프 직능총괄본부장을 맡은 허태열을 만나 박 대통령 위해서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 리베라 호텔에서 만나서 몇 차례에 걸쳐 7억 원을 줬고 사실 그 돈 갖고 경선을 치른 거다.'

'2011년 홍준표가 당 대표 나왔을 때, 윤승모를 시켜서 1억 원을 줬다.'

'2012년 박근혜 대선캠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은 홍문종에게 2억 원을 줬다. 대통령선거에 썼을 것이다.'

'2013년 4·24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 이완구에게 3000만 원 줬다.'

검찰은 성 전 회장 사망 사흘 만에 특별수사팀을 출범시키며 비교적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돈 전달 시점과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도 있어 수사 성과에 대한 기대도 컸다. 하지만 기대는 기대일 뿐, 쪽지의 8명 중 2명만 기소하고 나머지에겐 면죄부를 준 수사결과가 발표됐다. 

물론 검찰 수사에도 어려움은 있었다. 특별수사팀은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공여자가 사망한 사건' 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성 전 회장을 대신해 금품 공여 사실을 증언할 '귀인'도 나타나지 않았으며, 수사팀은 금품 제공 내역이 담긴 소위 '비밀장부'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났다.

그래서 검찰은 성 전 회장의 생전 동선을 복원하고 경남기업의 자금흐름을 추적해 비자금을 조성 시기 등을 수사 단서로 삼았다. 혐의가 없는 걸로 결론난 6명에 대해서는 대체로 성 전 회장이 돈을 줬다고 한 시기가 비자금 조성 시기와 맞지 않는다거나 돈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의 동선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원조 친박'만 쏙 빠진 수사결과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장을 맡은 문무일 검사장이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회의실에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검찰, '성완종 리스트' 8인 중 홍준표·이완구만 기소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장을 맡은 문무일 검사장이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회의실에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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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과물을 살펴보면 쉽게 수긍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만약 수사팀 설명대로 '진인사 대천명' 한 결과물이라면, 억울해도 의혹의 눈길을 탓할 수 없을 정도다. 

검찰이 일찌감치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를 기소하기로 하면서 '쪽지'의 신빙성은 높아졌다. 하지만 80일 넘게 수사한 검찰이 내놓은 결과는 참2, 거짓6. 홍준표·이완구만 돈을 받은 게 맞고 나머지 6명의 혐의는 밝힐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성 전 회장이 남긴 쪽지는 '8 중에 2만 맞는', 즉 25%만 진실인 쪽지가 돼 버렸다.

쪽지와 인터뷰는 성 전 회장이 '죽음으로 남긴 메시지'인데, 그중 일부만 맞고 대부분은 사실이 아니라는 검찰의 수사발표는 일반적인 시각으론 수긍하기 힘들다.

면죄부를 받은 대상자들을 살펴보면 더 그렇다. 쪽지의 8명 중 기소된 2명은 박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별다른 공헌도가 없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대로 기소되지 않은 6인의 공통점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뽑는 경선 이전부터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전력했던 친박근혜게 중에서도 핵심 인사들이란 점이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 홍문종 의원이 '원조 친박'이란 것은 이미 공인된 사실이다. 포털에 이들의 이름과 '친박'이란 단어를 넣고 2006~2007년 기사를 검색해봐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성 전 회장이 인터뷰에서 허태열 의원에게 준 돈은 2007년 대선 경선자금으로 쓰였고, 홍문종 의원에게 준 돈은 2012년 대선자금으로 쓰였을 거라고 한 것처럼, 성 회장이 용처를 밝히지 않은 '부산시장 2억', '유정복 3억'도 어떻게든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쓰였을 거란 추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을 포함한 6인이 면죄부를 받는 수사결과가 발표됐다. 계좌추적도 없었고 압수수색과 같은 강제수사도 없었다. 이들중 소환조사를 받은 이는 홍문종 의원뿐이었다. 결국 검찰의 예리한 칼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캠프에 깊숙이 연관된 이들, 곧 대선자금과 연결될 수 있는 이들을 비켜갔다. 이번 수사발표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자금 의혹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이유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성완종, #특별수사, #원조친박, #대선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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