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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사(盡人事)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2일 오후 서울중앙지검 13층 브리핑실. '만약 특별검사제도가 도입된다면 수사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냐'는 질문에 구본선 '성완종리스트 특별수사팀' 부팀장이 한 답변이었다. 자평대로, 밤잠 설쳐가며 82일간 수사를 벌여온 검찰수사팀. 그들은 해야 할 일, 도리를 다했을까.

"수사팀 모두가 밤잠을 제대로 못잤다"는 설명이 있었고, 수사 발표에 배석한 몇몇 검사들은 실제로 졸기도 했다. 질의응답 시간이 1시간 30분이 넘어가자 구 부팀장은 "검사들은 자기 업무를 봐야 한다"며 검사들을 퇴장시켰다.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해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겠다"는 말로 시작했던 검찰의 수사가 82일 만에 일단락됐다. 하지만 검찰은 리스트에 오른 친박 실세 6명에 대해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수사팀은 이날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홍준표 경남지사를 불구속 기소했다. 또 김기춘·허태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병기 현 비서실장,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등 친박 핵심 인사 6명은 불기소 처분했다(관련기사: 검찰, 노건평 잡고 '친박 핵심' 다 놔줬다).

[의혹①] 32억 원 비자금 용처, 다 캐냈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원외교 비리 관련 의혹에 대해 부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성 회장은 이명박 정부시절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MB(이명박) 정부의 피해자가 어떻게 MB맨이 되겠냐"며 "일부 언론 보도와 달리 나는 MB맨이 아니다"고 말했다.
▲ 눈물 흘리는 성완종 "나는 MB맨 아니라 MB 정부 피해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원외교 비리 관련 의혹에 대해 부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성 회장은 이명박 정부시절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MB(이명박) 정부의 피해자가 어떻게 MB맨이 되겠냐"며 "일부 언론 보도와 달리 나는 MB맨이 아니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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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일 만에 나온 결과에도 의혹은 여전히 남는다. 먼저 성 전 회장의 비자금은 얼마였으며 이 돈은 다 어디로 흘러갔을까. 이에 대한 검찰의 대답은 명확하지 않다. 당초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임관혁 부장검사)가 경남기업 비리를 수사하면서 밝혀낸 성 전 회장의 비자금 규모는 건설사 현장 전도금(공사현장 지출 편의를 위해 보내는 현금) 명목으로 조성한 32억 원가량이다.

하지만 수사팀의 기소대상이 된 불법 정치자금 규모는 3억~4억여 원에 불과하다. 홍준표 경남도지사 1억 원, 이완구 국무총리 3000만 원, 김근식 새누리당 전 수석부대변인 2억 원, 김한길·이인제 의원이 각각 수천만 원으로 모두 합쳐도 3억~4억 원가량. 그렇다면 나머지 27억~28억여 원의 용도는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것이다.

수사팀은 일단 성 전 회장 비자금의 흐름은 모두 검증했다고 자신하고 있다. 구 부팀장은 이날 "법정에서 공개할 것"이라며 관련 자료를 꺼내보였다. 그는 "경남기업이 조성한 현금인출 내역을 하루 하루 검증했다"라면서 "현금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관련자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더하기 빼기까지 하면서 계산했지만 관련자들의 기억은 제한적이었다"라고 덧붙였다.

또 불법 대선자금 의혹과 관련해서도 대선 당시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경남기업 비자금 흐름과 리스트 인물의 동선을 맞춰본 결과, 새누리당 대선 캠프에 흘러들어간 비자금은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리스트에 나온 홍문종 의원,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 등 새누리당 대선캠프에서 중요 직책을 맡은 이들이 받았다고 적힌 금액은 총 7억 원이다.

구본선 부팀장은 "대선 무렵인 2012년 11∼12월 성 전 회장이 현금으로 인출한 돈은 1억8000만 원에 불과했다"라고 말했다. 이 금액과 리스트 금액이 일치하지고 않아, 대선자금 의혹이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성 회장은 '부산시장 2억 원' '유정복 3억 원'에 대해서는 돈을 준 시기를 밝힌 적이 없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홍문종 2억 원'과 성 전 회장이 인출한 1억8000만 원은 시기와 금액면에서 매우 밀접하다고 볼 수 있다.

[의혹②] 친박 실세는 서면조사... 노건평씨 자금 흐름은 자세하게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장을 맡은 문무일 검사장이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회의실에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검찰 특별수사팀은 '성완종 리스트'에 올라있는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 두 명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다고 발표했다.
▲ 검찰, '성완종 리스트' 8인 중 홍준표·이완구만 기소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장을 맡은 문무일 검사장이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회의실에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검찰 특별수사팀은 '성완종 리스트'에 올라있는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 두 명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다고 발표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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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무혐의 처분된 친박 실세 6명에 대해서는 자세한 수사 결과가 없었다. 오로지 형식적인 서면조사를 통해 공소시효가 끝났다거나, 구체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허태열 전 비서실장에 대해서는 "금품이 전달됐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구체적 증거 없음"처럼 같은 방식으로 무혐의 이유를 설명했다. 홍 지사와 이 전 총리에 대해 자금 흐름을 추적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구 부팀장은 계좌 추적 여부를 묻자 말을 돌려 "다른 단서나 공여 뒷받침 자료가 있을 때 계좌를 열어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계좌추적을 할 만한 상황이 되지 않았다는 말로 계좌추적을 안한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반면,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에 대해서 구체적인 자금 흐름을 파악했다. 검찰은 이날 자세하게 금품수수 혐의를 설명했다. 성 전 회장이 2005년 5월과 2008년 1월 두 차례나 대통령 특사 명단에 포함된 이유가 노씨에 대한 금품로비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검찰은 첫 번째 특사 때는 노씨가 성 전 회장 측근으로부터 3000만 원을 받았고, 두 번째 특사 때는 노씨의 측근이 대표인 토건업체에 경남기업이 공사비를 증액하는 수법으로 5억 원을 줬다고 설명했다. 다만 공소시효가 지나 공소권 없음으로 결론내렸다.

수사 발표 직후 특별검사제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검찰이) 스스로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정치 검찰'임을 자백했다"라면서 "지금 즉시 진실 규명과 부패 청산을 위해 특별검사제를 실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불구속 기소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성완종의 메모 중에서 저에 대한 것만 사실이고 다른 분들 것은 모두 허위였다는 말입니까? 참소(讒訴, 남을 헐뜯어서 죄가 있는 것처럼 꾸며 윗사람에게 고하여 바침)를 밝히지 못하고 정치적 결정을 한 검찰의 수사에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합니다."

홍 지사의 말에 수사팀은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태그:#성완종리스트, #불법 대선자금, #홍준표, #특별검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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