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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1일 권선택 대전시장이 취임 1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권 시장은 지난 1년을 '경청'과 '현장'의 한 해 였다고 자평했다.
 지난 1일 권선택 대전시장이 취임 1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권 시장은 지난 1년을 '경청'과 '현장'의 한 해 였다고 자평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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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대전시청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장면 하나] 1일 오전 11시 9층 기자회견장

민선 6기 1주년 기념 기자회견에서 권선택 대전시장은 지난 1년을 '소통'과 '경청'의 한 해였다고 자평했다.

이 자리에서 권 시장은 "지난 1년은 '경청'과 '현장'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다"라면서 "'모든 것은 경청에서부터 시작한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그 결과 이제 더 이상 대전시는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대전시장 후보 시절 권 시장은 '경청'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또 자신의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 '경청'과 '소통'을 강조하면서 '시민행복위원회'를 만들어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 일에 노력했다.

그런데 같은 시각. 기자회견장에 불청객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던 도중 뒤편에서 큰소리가 났다.

"시장님, 제가 기자는 아니지만 질문 하나 드려도 되나요?"

양흥모 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의 목소리다. 그는 분명 기자가 아니기에 불청객이다. 기자회견 진행을 하던 시청 직원은 "이 자리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자리"라면서 양 사무처장을 제지했다. 결국 양 사무처장은 질문을 포기했다. 그는 어떤 질문을 하려는 것이었을까?

이틀 전 도안호수공원 '도안갑천지구친수구역개발사업백지화 시민대책위원회'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대전시청 앞에서 한 뒤, 대책위 대표단은 시장 면담을 위해 시장실을 찾아갔으나 권 시장을 만나지 못했다.

양 사무처장은 '도안갑천지구친수구역개발사업'(도안호수공원 개발사업)과 관련한 질문, 특히 왜 대표단을 만나주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청'과 '소통'을 지난 대전시정 1년의 최대성과로 꼽고 있던 기자회견장에서 마저 그에게 질문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장면 둘] 1일 오후 2시, 시청 엘리베이터

도안호수공원사업 백지화를 요구하는 주민들이 시청 엘리베이터를 탔다. 10층 시장실에 가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엘리베이터가 10층 버튼은 눌렀는데 10층을 지나쳐 11층에서 멈췄다. 다시 10층으로 내려가려고 하자 이번에는 9층에서 멈췄다.

주민들은 계단을 통해 10층으로 가려했지만, 이번에는 계단 문이 열리지 않았다. 주민들은 할 수 없이 사업부서인 도시주택국이 있는 14층으로 갔다. 시장을 만나기는커녕 시장실이 있는 10층에는 접근도 못했다.

1일 밤 11시. 주민들이 대전시청 14층 복도 바닥에 누워 있다.
 1일 밤 11시. 주민들이 대전시청 14층 복도 바닥에 누워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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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셋] 1일 밤 11시, 14층 도시주택국 앞 로비

시장 면담을 요구하면서 14층에 올라왔던 10여 명의 주민들은 그 자리에 눌러앉았다. '왜 시장실에 가지도 못하게 하느냐' '시장 면담 시간을 잡아달라'는 요구를 하며 농성에 들어간 것.

밖이 어두워져도 이들은 14층 로비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직원들의 설득 노력에도 주민들의 요구는 계속됐다. 배고픈 주민들은 김밥을 주문했으나 경비원들의 제지로 밤 11시가 넘도록 14층에 배달되지 못했다.

복도 불도 꺼졌다. 당뇨병이 있는 주민, 팔순을 넘긴 노인들이 저녁을 굶어가며 농성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도시주택국장의 노력으로 밤 11시가 훌쩍 넘긴 시간에서야 권 시장과의 면담 약속을 잡아 통보했다.

이틀 뒤인 3일 오후 구 충남도청사에서 약 10분 동안의 면담을 하겠다고 한 것. 비록 10분이지만 어렵게 어렵게 마련한 자리이니 이제는 농성을 풀고 그만 돌아가라는 시청 직원들의 간청이 이어졌다.

그제야 식어버린 김밥을 먹은 주민들은 겨우 '10분 면담' 약속을 믿고 자정을 넘겨서야 시청에서 나왔다.

권 시장의 '경청'과 '현장', 도안호수공원 사업에도 적용될까

경관생태우수지역 갑천 자연하천구간. 대전시는 이 갑천 옆에 대형 인공호수를 조성할 계획이며, 호수공원 주변에는 4000세대 이상의 대규모 공동주택과 상가를 공급할 예정이다.
 경관생태우수지역 갑천 자연하천구간. 대전시는 이 갑천 옆에 대형 인공호수를 조성할 계획이며, 호수공원 주변에는 4000세대 이상의 대규모 공동주택과 상가를 공급할 예정이다.
ⓒ 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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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호수공원 조성사업은 대전의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신도시 개발로 인한 원도심 공동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고, 생태적으로 매우 우수한 해당 지역의 환경 파괴 문제도 거론되고 있다.

이뿐 아니라 막대한 혈세가 투입되면서도 공공성은 낮다는 우려도 있다. 호수공원 옆 고급주택을 공급하는 문제와 특정 업체에 택지를 공급하는 '특혜'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민선 3기, 4기, 5기를 거치면서 쉽사리 결론짓지 못하고 논란의 논란을 거듭해 온 이유는 단순히 개발할 돈이 없어서가 아닌, 이러한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아는 권 시장도 후보 시절, 이 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현재 대전시는 권 시장 취임 이후 단 한 번의 공청회도 거치지 않고, 제대로된 의견 수렴도 없이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에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과연 권 시장이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라고까지 말한 '경청'과 '현장'이 이번 사업에서도 적용될지 지켜볼 일이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권선택, #도안호수공원, #갑천, #대전시, #경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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