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습기에 힘든 장마가 찾아오는 데다 덥기까지 한 7월은 내게 최악의 달이다. 하지만 올해 장마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에는 반가움이 앞섰다. 메르스와 가뭄으로 힘들었던 6월을 씻어 보내버리고 새로운 칠월을 맞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더위와 습기쯤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이게 뭐람. 장마전선이 남부지방에서 정체되어 있단다. 6월 내내 비 한 번 제대로 뿌리지 않아놓고, 이제는 엄한 곳에 비를 쏟아내는 하늘이 야속하기만 하다. 바라건대 뒤늦게라도 중부지방을 넉넉히 적셔주길, 농부들의 타들어 가는 마음을 미약하게나마 식혀주길. 비록 전국을 뒤덮었던 6월의 고통을 보상받을 수는 없겠지만, 메르스든 가뭄이든 싹 다 물러나길.

더불어 6월 한 달 동안 근심 걱정으로 영화관을 찾지 못했던 이들이 7월에는 이전처럼 마음껏 영화관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어쨌든 7월에도 기대작들은 계속되니까.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7월 2일 개봉)


유년시절에 <터미네이터>는 사이보그에 대한 이미지 그 자체였으며,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터미네이터 그 자체였다. 나는 분명 1, 2, 3편을 다, 그것도 여러 번 봤지만 그 중 어느 한 편도 또렷이 기억하지 못한다. 1편인 줄 알았던 이야기는 사실 2편이었고, 2편에 등장했다고 여겼던 인물이 사실 3편에서 출연했다.

그렇다고 내게 <터미네이터>가 그만큼 인상 깊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이나 내러티브는 희미할지라도, 1~3편을 통틀어 수많은 이미지가 뇌리에 깊숙이 박혀있다. 똥 누는 자세로 똥 폼 잡던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나체라든지, 용암인지 불구덩이 속인지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추어올린 '따봉'같은 것들 말이다.

주관적 관람 포인트 1. 일단은 CG!


당시 어린 나의 눈에 이미지들이 각인될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 CG덕택이었다. 눈앞의 모든 걸 사실로 믿었던 그때였지만, 사람의 형체 속에 기계가 들어가 있고, 총에 맞은 상처가 저절로 치유되고, 쪼개진 몸뚱아리가 수은으로 변한 뒤, 한데 모여 다시 하나로 합체하는 등. 현실적이고 위화감이 들지 않는 CG는 <터미네이터>의 강점이었다.

그러므로 자연히 CG에 기대를 걸게 된다. 예고편을 보니, 이전 시리즈에서 나왔던 장치들이 어느 정도 반복되는 것 같다. 훨씬 사실적이고 진보한 CG를 유사한 이미지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주관적 관람 포인트 2. 아놀드 슈워제네거


참 대단한 사람이다.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 '몸짱' 사이보그로 출연하니 말이다. 거기다 30여 년 전에 맡았던 역할을 다시 맡았으니 시간이 참 무색하다. 그토록 넘쳐나는 자신감에 경외감이 들기도 한다. 30년 뒤의 나는 지금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을지. 비록 정치의 길로 빠져들었던 것과 이후 행보는 아쉬웠지만, 결국 이렇게 돌아왔으니 두 팔 벌려 환영한다. 그가 무슨 행보를 보였든, 앞으로 또 어떤 길을 걷게 되든, 내게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터미네이터이며, 터미네이터는 곧 아놀드 슈워제네거다. 

<손님> (7월 9일 개봉)


어릴 적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또렷이 기억하는 이도 드물 것이다. <손님>은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어렴풋한 기억에 <손님>의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피리 부는 사나이'가 잘 맞물리지 않았다. 그래서 '피리 부는 사나이'를 다시 찾아봤는데, 이야기가 그렇게 섬뜩하고 스산할 수가 없었다. 

축약하면 다음과 같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어느 마을에 도착한다. 그 마을에는 쥐가 들끓고 있었다. 촌장은 사나이에게 쥐를 쫓아주면 보상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피리부는 사나이는 피리 소리로 쥐들을 유혹해서 쥐를 마을에서 내쫓는다. 하지만 촌장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피리 부는 사나이는 피리로 마을의 모든 아이를 유혹해 마을 밖으로 사라진다.

<손님>은 '피리 부는 사나이'의 전반적인 줄거리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배경은 우리나라의 토속적인 마을에 가까우며, 짐작건대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따온 큰 줄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들이 중층적으로 깔렸을 것이다.

주관적 관람 포인트 1. 마을의 비밀, 즉 반전


예고편을 보면 알 수 있듯, 이 영화가 역점을 두는 것은 반전이다. 반전을 향해 가는 전개가 크게 유별날 것 같진 않다. 손님 우룡(류승룡 분)이 우연히 마을의 금기시되는 비밀을 건드리고, 그게 점차 산더미처럼 불어나다 결국 반전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손님>의 반전은 보다 미묘하고 복합적으로 얽히고설켜 있으리라 기대한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다들 쉬쉬하고 감추다가 마침내 폭발적으로 밝혀질 때, 모든 인물들의 권력, 암투, 억압이 그곳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길.

주관적 관람 포인트 2. 화려한 캐스팅!


<손님>에는 류승룡, 이성민, 천우희, 이준. 등 요새 핫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특히 류승룡과 천우희를 한 영화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렌다. 이번에 둘이 맡은 캐릭터는 지금껏 맡아온 캐릭터와 양상이 다르다. 재밌게도 상대에겐 낯익지만 본인에겐 낯선 캐릭터를 바꿔 맡은 것 같다.

예컨대 류승룡이 맡은 우룡은 세상을 떠도는 절름발이 악사다. 그에게는 폐병에 걸린 자식이 한 명 있다. 그는 우연이 들어간 마을에서 혹하는 제안을 받게 된다. 성공하면 자식의 폐병을 고칠 수 있다. 이렇게 우룡은 과거와 현재의 음울함 위에서 미래로의 도약을 꿈꾸는 자다. 이런 면모는 <한공주>에서 천우희가 맡았던 캐릭터와 유사하다.

천우희가 맡은 미숙은 어떤가. 미숙은 신 내림을 받지 못한 선무당이다. 영화 전반부에 그녀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품은 채 살아간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녀의 행동, 몸짓, 눈빛은 바뀐다. 짐작건대 그녀는 신 내림을 받고 '진짜' 무당이 되어간다. '진짜' 무당으로서의 미숙.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미숙은 류승룡이 맡았던 <명량>의 구루지마나 <최종병기 활>의 쥬신타와 닮았다. 둘이 비교적 낯선 역할을 어떻게 소화해낼지 궁금하지만, 결코 실망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더 디너> (7월 16일 개봉)


막장, 막장 하지만 또 그만큼 재미있는 얘기도 없다. 사실성이나 개연성은 잃을지라도, 어쨌든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막장이 그저 재미있기만 한 것도 아니다. 토론 거리나 생각 거리를 던지기 위해서도 막장적인 상황은 유용하다.

한창 열풍이었던 마이클 센델의 <정의론>도 사실상 막장적 상황을 계속해서 던지는 게 (사실상) 전부 아닌가. 예시는 가면 갈수록 막장이다. 그러한 예들은 현실적으로 발생할 수 없거나 그렇게 되기 어렵지만,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철학적 사고를 확장시키는데 탁월한 수단인 것도 분명하다.

<더 디너>에도 막장적 요소가 포함되어있다. 두 형제가 나온다. 소아과 의사인 동생은 이상과 정의를 추구하지만, 변호사인 형은 물질적인 충족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그런데 '우연히' 동생의 자식과 형의 자식이 범죄를 저지른다. 이후 신념이 전혀 다른 두 형제는 어떻게 대처할까.

주관적 관람 포인트 1. 진실의 고통 vs. 거짓의 평안


어렵고 답답한 문제다. 진실을 대면하는 것은 불쾌하고 고통스럽지만, 거짓으로 치장한다면 고통은 사라지고 평화로워진다. 하지만 누구나 진실이 옳고 추구해야 하는 가치임을 알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선(진실/평안)과 악(고통/거짓)이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쉽사리 전자를 지향하거나 후자를 비난하지 못한다.

<더 디너>에서도 마찬가지다. 형은 모든 권력과 재력을 동원하여 자식을 범죄에서 빼내려 하겠지만, 동생은 진실을 끝까지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진실의 고통과 거짓의 평안이 대결하는 막장적 상황에서 나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 영화관에 가기 전에 미리 생각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