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일주일 따라 다녀보면 어떨까', 이 질문으로부터 '팔로우'는 시작됐습니다. 이왕이면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던 남자 연예인을 뒤쫓고 싶은 바람이 개인적으로 없지 않지만, 코너 이름이 '스토커'로 변질되는 일이 없도록 사람, 사물, 현상을 가리지 않고 '팔로우'하겠습니다. [편집자말]
* 1편 '후미진 골방에서 죽어라 웃는 여자들'에서 이어집니다.

알바몬 광고 걸스데이 혜리가 출연한 알바몬 광고. 이 광고로 혜리는 알바돌, 개념돌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걸스데이 혜리가 출연한 알바몬 광고. ⓒ 알바몬 광고 캡처


이틀간 방청 알바로 번 돈 16000원, 왕복 교통비 8천 원 빼니 8천 원. 이래서는 거지꼴을 면치 못 한다. 조금 힘들더라도 더 벌 수 있는, 비슷한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일용직이 있다. 엑스트라,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다.

3년 전 취재 차 한 번 경험해 본 사극 드라마 현장에서는 12시간 정도 일하고 53000원을 받았다.(관련기사: 12시간 혼신의 엉덩이 연기 후 5만원을 받았다) 당시, 자정에 집합해 촬영장으로 이동하는 버스와 분장실에서 쪽잠을 자며 버틴 시간은 노동으로 치지 않았기에 스무 시간을 내어주고 받은 돈으로 치면 많이 벌었다고 할 수도 없다. 물론 임금은 그때보다 올랐다. 드라마는 시급제로 바뀌어 시간당 최저임금 5580원을 받고, 영화는 2014년 5월 1일자로 기본 3만 5천 원에서 4만 원으로 인상됐다. 쬐끔 올랐어, 쬐끔.

30대 중반, 보조출연하기엔 애매한 나이

 2012년 사극 보조 출연 체험 당시 사진. 보조출연자들의 일 중 팔 할은 '대기'다

2012년 사극 보조 출연 체험 당시 사진. 보조출연자들의 일 중 팔 할은 '대기'다 ⓒ 이현진


6월 17일, 한 미디어 인력관리 업체에 가서 일용직 보조출연자 표준근로계약서를 쓰고 왔다. 이른바 소속사가 생긴 셈인데, 계약기간이 없이 갑의 출연요청에 응할 수 있을 때 일을 하면 되는 식이다.

한 번 출연 경험이 있었던 나는 작품 선정에 꽤 까다로운 배우였다. 무엇보다 사극은 하고 싶지 않았다. '머리발'에 가린 내 얼굴의 실체를 낱낱이 드러내는 공포의 5:5 가르마, 한겨울의 냉기를 오롯이 전해주는 고무신 등이 고된 기억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현대극에서, 웬만하면 정장이 아닌 준비하기 편한 캐주얼 복장으로, 행인보다는 카페에 앉아 있는 실내 촬영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락을 기다렸다. 하지만 'FA시장의 대어'가 될 줄 알았던 내 꿈과 달리, 2주 넘게 '콜'이 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직접 일거리를 찾아보니, 30대 중반 여성인 내게 맞는 역할이 많지 않았다. 대개 20대~30대 초반까지를 원하는 젊은 여자 역도, 아줌마도 할 수 없는 애매한 나이인 것. 나름 어려보이는 사진을 첨부해 여러 곳에 지원했지만, 어디서도 날 써주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니 사극이면 어떠하리, 고무신이면 황송하고 짚신 신는 노비 역할이라도 달갑게 할 수 있다는 각오가 생길 즈음 무려 두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영화 현장이었다.

먼저 투입된 A라는 작품은 지방 공항에서 촬영을 했다. 미리 전달받은 대로 정장과 캐주얼 2벌, 공항 분위기를 내기 위한 선글라스와 캐리어를 챙겼다. 오전 7시에 신사역에 집합해 고속버스를 타고 4시간 정도 달렸다.

도착하자마자 관리업체 팀장들이 승무원, 공항직원 등 특수역할을 맡을 보조출연자를 매의 눈으로 골라냈다. 원피스를 곱게 차려 입고 온 한 중년 여성은 청소부복을 받았고, 20대 초중반의 아가씨들은 승무원이 됐다. 감읍하게도(?) 나 역시 승무원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 하이힐을 신어야 하는 고충이 있지만 내심 긍정적인 검토를 하고 있었는데, 그만 예선에서 떨어졌다. "머리색이 너무 밝다"는 게 이유였지만, 왠지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건 기분 탓이겠지.

하염없이 걷기...직립보행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SBS <너를 사랑한 시간>의 한 장면.(위 사진은 본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SBS <너를 사랑한 시간>의 한 장면.(위 사진은 본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SBS


노장투혼 끝에 행인이 된 나는 100여 명의 사람들과 일명 '와리가리', 그러니까 왔다 갔다 했다. 그냥 걷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으려면 규칙과 기술이 필요하다. 팀장의 손짓에 따라 사방에서 출연자들이 오고가는데, 이쪽과 저쪽으로 적절히 방향을 분배하면서 자연스러운 그림을 만들어낸다. 비슷한 옷 색깔이나 같은 성별이 뭉쳐져 있지 않도록 세밀하게 조절한다. 그러니까 100명으로 300명은 있어 보이는 풍성한 배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기에 화룡점정은, 특별한 지시 없이도 연기를 해내는 보조출연자들이다. 다정하게 팔짱을 낀 40대 여자 출연자 두 사람은 진짜 여행길에 들뜬 친구처럼 담소를 나누며 지나갔고, 서류가방을 든 남자 출연자는 출장길이 늦지 않았는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내 아버지뻘로 보이는 연세 지긋한 남자 출연자는 "내 노란 겉옷이 너무 튀어서 돌아 걸어올 때는 알아서 벗었잖아"라며 "내가 배우지"라고 껄껄 웃었다. 카메라는 주연 배우들을 찍고 있었지만, 우리는 비록 앵글에서 벗어나있을 때도 각자 주인공이고 연출자이며, 스타일리스트였다.

셀 수 없는 와리가리에 지쳐 쓰러질 때쯤 감독의 마지막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아마 짝사랑하던 남자에게 고백하고 받아낸 '오케이'도 그보다 반갑지는 않을 것 같다. 오후 6시 반이었고 서울에 올라갈 일이 까마득했기에, 이날 저녁식사는 식대를 지급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있을 때, 각자 집에서 바리바리 싸온 고구마며 방울토마토가 가방에서 나왔다. 45인승 관광버스를 꽉 채운 사람 모두에게 돌아갈 만큼 많은 양이다. 고구마를 먹은 누군가는 과자로 화답했다. 옆에 앉은 언니는 볶은 서리태 한 줌을 쥐어줬다. 어느 톱스타의 벤이, 달리는 대기실이자 분장실인 이 버스보다 훈훈할까.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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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출연 엑스트라 알바 캐스팅 558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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