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일주일 따라 다녀보면 어떨까', 이 질문으로부터 '팔로우'는 시작됐습니다. 이왕이면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던 남자 연예인을 뒤쫓고 싶은 바람이 개인적으로 없지 않지만, 코너 이름이 '스토커'로 변질되는 일이 없도록 사람, 사물, 현상을 가리지 않고 '팔로우'하겠습니다. [편집자말]
방송국을 구경하면서 돈도 번다. 심지어 시원한 곳에 앉아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앉아있는 것은 예상 외로 힘든 일이고, 앉아'만' 있어서도 안 된다. 게다가 이렇게 번 돈은 생각보다 액수가 크지 않다.

지난 6월 중순, 방청객 아르바이트를 신청하고 나간 현장에는 약 서른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이날 방청하게 된 건 책을 소개하는 A라는 교양 프로그램. 부끄럽게도 일평생 책을 가까이 두지 않고 살아온 내게 어울리지 않는 방송이지만, 예능 프로그램 방청보다 일찍 끝난다는 게 장점이었다. 1시간여의 대기 끝에 스튜디오로 입장했다.

앉아서 방청만?...혼신의 '연기'가 필요하다

 <나는가수다> 방청객들

MBC <나는 가수다> 방청객 자료사진.(위 사진은 본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MBC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인데,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는 게 힘들다. 부동자세로 인한 통증은 몇 분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허리가 저리더니, 시선보다 높은 무대 때문에 목이 뻐근했다. '뉴페이스'인 나는 카메라가 잘 찍는 곳에 앉도록 간택 당했다. 갑자기 코 옆이 간지러웠지만, 긁는 건 사치였다. 그렇다고 로봇처럼 무표정해서도 안 된다. 웃거나 고개를 끄덕거리는 '연기'가 필요했다.

함정은 이날 책의 주제가 '과학'이었다는 것. 문과 출신인 나는 잠이 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패널로 출연한 물리학자의 목소리는 발라드의 황제처럼 감미로웠다. "졸면 죽음"이라는 담당자의 사전 경고가 생각나 눈을 부라렸다. 그나마 뿌듯한 건, 출연자들이 카메라보다는 우리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비록 연기가 섞였지만) 경청하고, 웃기도 하고, 끄덕끄덕 맞장구치며 분위기를 이끌어주는 힘이랄까. 

비교적 빨리 끝나는 이 스케줄은 기본금액을 받는다. 기다리는 시간까지 약 3시간 만에 방송국에서 나와 손에 쥔 일당은 8천원. 어렵게 모신 퇴계이황 선생님 여덟 분과 함께 지하철역에 서 있는데 초코과자가 눈에 들어왔다. 1200원이면 약 20분간 목통증과 입가 경련을 참아야 하는 돈이라는 생각이 들자 허기가 가셨다. 그마저도 왕복 교통비 4천원을 빼고 나니 절반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이날 예능 프로그램 B 방청 스케줄까지 두 탕을 뛸 수 있었지만, 밤에 끝나는데 9천원 준다는 말에 가지 않기로 했다.

다음날 나간 현장에서 비보를 접했다. 밤 10시까지라던 B의 녹화가 새벽 3시에 끝났다고. 미리 신청해 놓은 스케줄을 펑크 낼 수 없어 눈곱만 떼고 왔다는 방청객들은 피곤에 절어 있었다. 전날 A 현장에 있다가 인원이 부족한 B 현장으로 차출됐던 한 방청객은 녹화 1부가 끝난 오후 6시에 나오는 바람에 받지 못한 일당을 받으러 왔다. 중간에 이동하며 추가로 차비가 발생했지만, 이 바닥 '선배'들은 "그런 건 거의 챙겨주지 않는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기계음인 줄 알았던 웃음소리, 진짜 사람이라니

 애니메이션 <시간탐험대> 캐릭터 램프의 바바.

애니메이션 <시간탐험대> 캐릭터 램프의 바바. ⓒ 후지TV


그나마 이날은 방청 알바 중에서는 '꿀'이라고 할 수 있는 더빙 스케줄이다. 편집까지 마친 방송(대개 예능)에 방청객들의 목소리를 입히는 작업이기 때문에 카메라에 대한 부담이 없고, 무엇보다 1시간 정도면 끝난다는 게 매력적이다. 리액션은 세 가지, '하하하(웃김)' '오오오(감탄 혹은 환호)!' '아~(깨달음)'. 20여명의 여자들이 골방에 쭈그려 앉아 A4 용지만한 TV를 보며 웃어대는 괴이한 광경에, 초보 방청객들은 당황했지만 '선배'들은 무표정으로도 박장대소 사운드를 뽑아내는 어느 경지에 올라 있었다.

평소 즐겨보던 예능 프로그램 C라서 리액션쯤이야 저절로 나올 거라는 생각은 20분 만에 고이 접혔다. 담당자의 손이 올라갈 때마다 "하하하하하하하"를 연발하는 내 모습은 딱, 추억의 만화 <시간탐험대> 속 램프의 바바(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친구). 그 상태로 30분이 지나니 힘이 달려 복식호흡을 하듯 웃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웃었다. 왜냐하면 진짜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집에 돌아와 내가 더빙에 참여한 프로그램의 본방송을 시청했는데, 마치 처음 보는 듯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웃음의 포인트를 짚어주는 것처럼 녹음된 소리에 따라 웃게 되는 효과가 새삼스러웠다. 기계음이나 녹음된 웃음을 적당히 삽입하는 간단한 작업인 줄 알았던 방송의 뒤편에 진짜 '사람'들이 숨어 있을 줄이야.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는 생각에 우쭐해져서 함께 TV를 보던 엄마에게 자랑했다. "저 웃음소리 중에 나 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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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이정환 기자


방청 알바 보조출연 엑스트라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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