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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수 시집 <진뫼로 간다> 표지
 김도수 시집 <진뫼로 간다> 표지
ⓒ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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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남준은 "지독하다"고 했고, 소설가 공선옥은 "사무친다"고 했다. "가난해서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라면서 "지독하다"니... "가난해서 오히려 부유할 수 있는 것의 비밀을 아는 사람"인데 "사무친다"니... 김도수의 시집 <진뫼로 간다>를 편다.

"벽장에서 내린 찬 이불/선뜻 파고들 수 없어/올망졸망한 자식들 머뭇거리는데/차디찬 이불 속 먼저 파고들어/온기 불어넣는 어머니//옆으로 쏘오옥 파고들어/따뜻한 젖 만지면/세상은 다 내 것이었다//새벽녘 눈 비비자마자/젖 만지려 앞가슴 더듬는데/두툼한 손이 덥석 잡힌다//어!/어매 젖은 내 것인디/이게 누 손이다냐//자식들에게 나누어주느라 식어버린/어머니의 온기를 채워주려는/아버지 손" - 김도수 '손' 전문

시인이 보내온 전자편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단순히 책상머리에 앉아 쓴 그런 시집이 아니"라는 수줍은 고백의 편지.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안타깝게도 요즘은 많은 시가 책상머리에서 만들어진다. 책상머리에서 만들어진 시들은 다 다른 듯 보이지만 다 똑같다. 공장에서 찍어낸 통조림이 겉포장을 달리해봤자 그 내용물이 그 내용물인 것처럼.

대개 그런 시들은 '지도 교수님'께 알현하러 가거나 무슨 문학공모판 '심사위원들 나리들'께 굽신거리며 간택을 기다린다. 이미 교수님의 입맛에 맞게 시는 포장돼 있고, 벌써 심사위원들의 구색에 맞춰 시는 만들어졌다. 이게 시인가.

김도수의 시는 거칠다. 그가 나고 자란 섬진강 진뫼마을 흙처럼. 그래서 김도수의 시는 부드럽다. 서럽게 몸을 끌어당기던 흙처럼, 강물처럼. 살과 살로 만나보지 못한 자들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거친 호흡, 거친 슬픔이 짠하다.

"어머니, 꽃상여 타고 떠나던 날/상급배미 갈아놓은 보리들/뾰족뾰족 올라와 눈물 받아 적시고/막둥이 자식 상여 붙들더니/기어이 보리밭에 눕히고 만다//두 다리 쭉 뻗고/가지 마세요, 왜 벌써 가요/발 비벼대며 보리 짓이겨대자/배웅하던 마을 사람들 강가로 눈 돌리고//새끼줄에 덕지덕지 붙은 노자/팔락거리며 어서 가자 재촉하는데//꿈 이룬 월국떡 잘 가시오/굳은 살 박인 손 흔들어대는데//여린 보리싹 바람에 흔들흔들/떠나가는 주인 붙드는데//어머니의 꿈 이루어져/너울너울 춤추며/선산으로 황망히 떠나고 있다" - 김도수 '보리' 전문    

그렇게 황망하게 어머니를 떠나보낸 진뫼마을에서 시인은, 50만 원에 팔려버린 고향집을 12년 만에 650만 원을 들여 기어코 되찾았다. 김도수에게 시는 그런 고향집 같은 것이다. "밤새도록 설사만 주르륵주르륵" 하게 만들지만 "입 안 달짝지근 얼얼해 뱃속까지 시원한" '사까리 물'같은 집...

치기어린 글쟁이들에게 아무 까닭없이 쪼갬과 해체를 강요당하며 시는, 시어는 학대받고 있다. 서사에 깃든 서정의 위대함을 예찬하는 것이, 서정에 깃든 서사의 웅혼함을 과시하는 것이 문단의 유행을 모르는 촌스런 짓거리라면, 김도수는 이미 촌스러울 만큼 촌스럽다. 그럼 됐지 아니한가.

"점심상 가지고 왔는데/숟가락 들길 망설이는 아버지//푸생가리 뜯어다/밥 비벼 묵으면 좋겄다//아부지, 푸생가리가 뭐다요/빚내서 학교 보내놨더니 고것도 모르냐//사전에 안 나오는 말이어라우/뭐셔, 맥없이 돈만 갖다 내부렀는갑다" - 김도수 '말과 사전' 전문  



진뫼로 간다

김도수 지음, 푸른사상(2015)


태그:#김도수, #섬진강, #공선옥, #박남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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