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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둘 갑작스러운 갑상샘암 선고와 투병 생활로 망가진 몸. 그로 인해 바뀌어 버린 삶의 가치와 행복의 조건. "갑상샘암은 암도 아니잖아"라며, 가족조차도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았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란 것을. 꿈이 있다면 당장 시작하라! '내일'이면 늦을지도 모른다. - 기자 말

인사발령으로 부서를 옮기게 되었을 때 팀원들에게 받은 선물
▲ 선물 인사발령으로 부서를 옮기게 되었을 때 팀원들에게 받은 선물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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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샘암 치료를 위해 3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직장에 병가를 내고 쉬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복귀한 직장에는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연말에서 연초까지는 한해의 마무리가 되는 시점이라 연간 고과평가가 이루어진다. 한 해 중에 가장 눈치를 많이 보고 몸을 사리는 기간이다. 또한 조직개편이나 인사발령이 이루어지는 시기이기도 해 대체적으로 어수선한 시기다. 딱 이 시기에 자리를 비웠으니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변화가 있는 게 당연했다.

2014년 2월초 설날 연휴를 끝내고 직장에 복귀했다. 복귀한 팀에는 팀장이 바뀌어 있었고 지역을 기반으로 한 담당자들의 지역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나는 팀의 전반적인 운영을 담당하는 내근직 스태프였다.

영업부서에 1명뿐인 스태프가 병가를 내는 바람에 외근 사원들이 내 업무를 나누어 진행했다. 일부 업무들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해 본부 차원에서 다른 방법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기도 했다.

2013년 내가 영업부서로 옮긴 그 해부터 시장 경쟁이 심화된 탓에 회사는 '비상경영'을 선포했고, 모든 원인과 대책을 지역별 영업팀에서 내놔야 했다. 또한 본사나 관리부서에서도 실적부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다는 이유로 현장부서에 엄청난 자료를 요구했다.

하지만 분야별로 담당자가 분리되어 있는 본사와 달리 현장에서는 그 'Paper Working'(서류업무)을 할 사람은 오로지 나 혼자였다. 현장상황이 고려되지 않은 무분별한 업무 하달이 '위에서 지시한거다'라는 꼬리표를 달고 막무가내로 쏟아졌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매일 야근을 반복했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인터넷 뉴스 한번 찾아볼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회의 도중에도 회의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업무와 '멀티태스킹'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한 영업부서의 스태프이다보니 매일 저녁마다 각 지역별 실적을 마감해서 종합보고를 해야했으므로 내 업무가 일찍 끝났다고 해서 퇴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복직을 할 때가 다가오면서 생각했다. '다시 이런 스트레스 속에서 살다간 내 몸 챙기기는 힘들겠다'고. 그래서 복직 전 회사에 원래 근무하던 부서로 이동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그렇게 복직한 지 한달이 지나서 나는 다시 예전 부서로 돌아가게 되었다. 나를 키워줄 요량으로 발탁 승진까지 시키며 영업팀으로 보내준 본부장님께는 면목 없지만 지금 내 상황은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고과점수를 포기하고 선택한 '정시 퇴근'

오랫만에 외과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 진료실 오랫만에 외과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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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돌아간 부서는 '기술' 부서였는데 영업으로 갔다가 다시 기술로 돌아오는 사례는 찾기 힘들 정도로 드물다. 그만큼 내 건강 상태를 고려해 회사에서는 내 의견을 받아들여 준 거다.

기술 부서는 부서의 특성상 자기가 맡은 분야의 업무를 자기가 책임지고 수행하면 되기 때문에 나혼자 많은 사람들의 일정을 조율해가면서 움직여야 했던 이전 업무보다는 시간 조율이 자유로웠다. 그 덕에 중간에 병원을 가거나 해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었다.

회사의 공식적인 퇴근 시간은 오후 5시 30분이다. 하지만 5시 30분이 되었다고 해서 퇴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본사에서 매월 둘째주 수요일은 5시 30분에 정시 퇴근을 하라는 '패밀리 데이'를 만들어 놓을 정도니 정시 퇴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다.

갑상샘암을 겪으면서 금연에 성공한 나는 이제 담배를 피지 않으니 그만큼 업무시간에 밖에 나가 동료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노닥거리는 시간이 줄어 들었다. 자연스럽게 휴식시간이 줄어들어 웬만해서는 내 업무를 제 시간 안에 종결지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그럴 수 있었지만 어차피 업무시간에 일을 다 끝낸다고 해서 정시에 퇴근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낮에 밖에 나가서 노닥거렸던 것이다.

나는 '암 환자'라는 무기 아닌 무기를 가지고 6시가 조금 넘으면 퇴근을 했다. 처음엔 다들 이해한다며 얼른 집에 가라고들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배려'에도 '불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에게 닥친 일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는 동물이다. 자기는 눈치 본다고 일찍 퇴근하지 못하고 잡혀 있는데, 옆에서 매일 일찍 퇴근하는 나를 보면서 배가 아팠던 모양이다.

나는 이번 병을 겪으면서 내 인생의 우선순위가 '직장에서의 성공'에서 '건강'과 '나의 삶'으로 바뀐 것뿐이다. 눈치 보지 않고 퇴근을 하면서 이른바 고과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못 받을 거라는 것을 각오했다. 하지만 내가 일찍 퇴근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을 포기하지 못하면서 배아파 하는 것이니 그런 불만들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수술 흉터는 내 마음을 다 잡는 '동기'

갑상샘암 수술 7개월 후 수술 흉터
▲ 흉터 갑상샘암 수술 7개월 후 수술 흉터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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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받고 퇴원을 한 뒤 3개월이 지난 3월에 외래 진료를 갔다. 오늘은 '핵의학과'가 아닌 '외과' 진료를 받는 날이다. 오랜만에 나를 수술했던 교수님을 만나서 잠깐의 면담을 한 뒤 신지로이드를 처방 받아서 돌아왔다.

7월에는 방사성 요오드 치료가 잘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핵의학과 진료가 예약되어 있다. 이번에 외과진료를 받으면서 다음 진료일을 핵의학과 진료일과 같은 날로 맞춰서 예약을 했다. 복직 후 병원을 오기 위해서는 무조건 휴가를 써야 하는데 쓸 수 있는 휴가의 개수가 정해져 있으니 날짜를 맞춰서 병원에 오는 게 좋다.

이번에도 잔뜩 받아온 약봉지를 서랍장 안에 차곡 차곡 정리를 하면서 씻기 전 거울 앞에 섰다. 이제 흉터는 많이 희미해졌다. 메피폼도 이제 붙이지 않는다. 지금 남은 흉터는 이제 평생 이 상태로 남을 듯하다. 이 흉터 때문에 V넥 셔츠는 입지 않게 되었다. 가끔씩 거울앞에서 이 흉터를 바라보며 나는 마음을 다 잡는다. 그리고 '욕심'을 내려 놓는다.


태그:#갑상샘암, #수술, #흉터, #외래, #복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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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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