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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선언 기자회견을 생중계하는 백악관 공식 누리집 갈무리.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선언 기자회견을 생중계하는 백악관 공식 누리집 갈무리.
ⓒ 백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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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쿠바가 반세기 만에 국교 정상화를 공식 선언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쿠바와 양국 대사관 재개설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지난해 12월 국교 정상화 추진을 선언하고 6개월 만이다.

이로써 양국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이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공산 혁명을 이유로 1961년 1월 쿠바와 국교를 단절한 이후 54년 만에 정식 수교 관계를 복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는 여름 양국 대사관이 공식적으로 문을 열 것"이라며 "존 케리 국무장관이 쿠바의 미국 대사관 개소식에 참석해 직접 성조기를 게양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스트로 의장도 이날 국영방송 연설에서 "이르면 7월 20일 양국 대사관이 재개설될 것"이라며 "양국이 평등한 관계를 바탕으로 서로의 관계가 발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1961년 쿠바의 미국 대사관이 문을 닫았을 때, 다시 문을 열기까지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고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양국의 대사관 재개설은) 미국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며 "양국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고 미래로 나아가는 역사적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세기의 악연, 1년 만에 풀었다

수교 복권을 위해 비밀 협상을 벌여온 양국은 지난해 12월 쿠바 정부가 간첩 혐의로 수감해온 미국인 앨런 그로스를 전격 석방한 것에 대한 화답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공식 선언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봉쇄정책이 쿠바의 민주화와 번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오히려 미국이 중남미를 비롯한 쿠바의 파트너 국가들로부터 고립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시인했다.

양국의 협상은 오바마 대통령과 카스트로 의장이 지난 4월 파나마에서 열린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서 역사적인 정상 회담을 열면서 급물살을 탔다. 미국과 쿠바의 정상이 마주 앉은 것은 쿠바의 공산 혁명이 일어나기 3년 전인 1956년 이후 59년 만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역사적인 만남"이라며 "서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강조했고, 카스트로 의장도 "양국 간의 체제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면서도 "쿠바의 인권과 언론의 자유를 놓고 미국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화답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마치고 쿠바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33년 만에 해제하며 무기수출 금지, 대외원조 금지, 무역 제재 등 각종 제재를 풀면서 국교 정상화 작업을 빠르게 추진했다.

미국-쿠바 '국교 정상화'의 의미는?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는 미국이 앞으로 대(對)중남미 정책을 근본적으로 개혁할 것이라는 신호탄으로 여겨진다. 그동안 미국은 쿠바,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등 반미 정권으로 뭉친 중남미 국가들과 대립각을 세웠다.

그러나 미국의 압박에도 이들의 공산 체제는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중국과 유럽이 중남미 진출을 선점하면서 미국이 고립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결국 미국이 봉쇄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쿠바에 손을 내밀면서 국교 정상화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빈곤 퇴치를 위해 미국의 제재 해제가 절실한 쿠바도 형인 피델 카스트로 전 의장보다 개혁적인 라울 카스트로 의장이 정권을 잡으면서 미국과 손을 잡았다. 미국과 쿠바가 마침내 국교 정상화에 성공하면서 그동안 반미를 고집해온 베네수엘라도 대미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물론 미국과 쿠바가 진정한 국교 정상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인 방문 확대, 금융거래 완화, 인도적 지원, 테러지원국 해제 등 쿠바를 위한 선물을 풀어놓았다.

그러나 쿠바가 원하는 전면적인 금수조치 해제와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는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도 "미국인과 쿠바인들은 이미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의회도 함께해야 한다"고 쿠바에 대한 경제 제재 해제를 촉구했다.

공화당의 강경 보수 의원들은 쿠바가 내놓은 인권 개선, 외국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 보장 등의 약속이 명확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적 업적을 세우기 위해 무리하게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성명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는 잔인한 공산주의 독재에 억압받았던 쿠바인들을 위한 조치 없이 카스트로 형제의 정권에 정통성만 부여했다"며 "쿠바와의 관계는 쿠바인들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때까지 정상화하면 안 된다"고 맞섰다.

하지만 미국 대선에서 소수 이민자들의 힘이 갈수록 커지고 있고, 쿠바 진출을 원하는 미국 기업들도 공화당을 압박하고 있어 양국의 관계 개선이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이다.

이로써 미국과 수교를 하지 않는 곳은 북한, 이란, 부탄 세 국가만 남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대선을 앞두고 북한, 이란, 쿠바를 직접 거론하며 '적과의 악수'를 하겠다고 공약을 내건 바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와 국교 정상화를 선언했고, 이란 핵 협상도 펼치고 있지만 북한과의 관계만 진전되지 않고 있다.


태그:#미국, #쿠바, #버락 오바마, #라울 카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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