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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핑크가 지난 2014년 11월 20일 오후 서울 삼성동의 한 연회장에서 열린 미니 5집 <핑크 러브> 발표 쇼케이스에서 '러브'와 '시크릿'을 열창하며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에이핑크가 지난 2014년 11월 20일 오후 서울 삼성동의 한 연회장에서 열린 미니 5집 <핑크 러브> 발표 쇼케이스에서 '러브'와 '시크릿'을 열창하며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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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라고 하니까, 우리말만으로 가사를 채워야 한다고 고집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 가요가 케이팝(K-pop)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세상이니, 할 수 있으면 전곡을 영어로 만들어 세계무대에 진출하는 것은 칭찬해 줄 일입니다. 꼭 그렇게 하지는 않더라도, 노래에 따라 영어 가사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영어도 섞어 쓸 수 있겠지요.

하지만 요즘 대중가요를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할 말이 없으면 죄다 "컴온, 베이비" 하며 주절대거나, "난 모든 걸 forget 했어", "무슨 무슨 girl" 뭐, 이런 식입니다. 영어로 하려면 영어로 하고 한국어로 하려면 깔끔하게 한국어로 할 일이지, 대중이 듣는 가요를 이렇게 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영어라고 집어넣은 것이 도대체 말도 안 되는 '문법 파괴'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런 노랫말을 쓰는지, 참 궁금합니다."

대중가요를 듣다가 툭툭 튀어나오는 영어를 듣고 있으면,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한숨이 나옵니다. 하지만 참고 또 참고 또 참고 듣다가도, 엉터리 문법으로 주절주절 뭐라고 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그만 할 말을 잃습니다. 이런 노래를 케이팝이라고 영어 문화권에 가지고 들어가면 그들이 뭐라고 할까 겁이 납니다.

길거리에 나서서 설문조사를 해 보았더니, 답해 주신 99분 중 65분이 영어 가사의 무분별한 사용에 부정적이셨습니다.
▲ 시민들도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어요. 길거리에 나서서 설문조사를 해 보았더니, 답해 주신 99분 중 65분이 영어 가사의 무분별한 사용에 부정적이셨습니다.
ⓒ 김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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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몇 년 전 유행했던 에이핑크(Apink)의 '마이마이'라는 곡을 볼까요.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난 널 부르고 싶어/ MY MY MY You're MY/ 넌 항상 내 마음속에 변치 말고/ 그 자리에 딱 거기 있어주면 돼/ 이렇게 널 사랑해"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말 가사만 보면 깔끔하고, 에이핑크처럼 예쁘지요. 그런데 느닷없이 "MY MY MY You're MY"가 나옵니다. 여기에서, 몰려왔던 감동이 확 날아가지요. 중학교 1학년 영어 시간에 외운 'I(나)-my(나의)-me(나에게, 나를)-mine(나의 것)'만 기억하고 있어도 바로 알 수 있는 문법적 오류입니다. "You're mine"이 맞는 데 계속하여 "You're MY"래요.

물론 에이핑크의 노래가 다 그런 건 아니지요. '새끼손가락'이란 그들의 노래를 들어보면 그 흔한 영어 나부랭이가 한 마디도 없어요.

"그린다 또 그린다 나는 너를 그린다/ 저 달빛에 저 달빛에 부른다/ 흘러나오는 네 이름에 다시 눈물이 흘러/ 돌아온다 약속했잖아 이 손가락 걸고/ 랄라라 라라 라라 라리라 라라 라라"

상큼발랄. 얼마나 좋습니까? 이렇게 하라는 말입니다.

"발음이야 그럴 수 있지요. 하지만 문법은 아니지요."

원어민 영어교사인 Keith Bourque 선생님(여수 한영고 원어민 교사)을 만났습니다. 한국에 오신 지 10년이 다 되는 선생님께서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거침없이 답변해 주셨습니다.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인터뷰는 그분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과 뛰어난 한국어 실력으로 이내 부드러워졌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노래를 가리키며, “Just rhyme! That is commercial music. I think this music is garbage.(라임일 뿐이에요. 상업적인 음악인 거죠. 이런 음악은 쓰레기로밖에 여겨지지 않아요.)”라고 혹평하셨어요.
▲ 외국인은 뭐라고 하실까요? 선생님은 어떤 노래를 가리키며, “Just rhyme! That is commercial music. I think this music is garbage.(라임일 뿐이에요. 상업적인 음악인 거죠. 이런 음악은 쓰레기로밖에 여겨지지 않아요.)”라고 혹평하셨어요.
ⓒ 박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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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해 간 노래의 녹음을 다 듣고 나서, 선생님은 먼저 영어 발음을 지적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발음 문제에 대해서는 의외로 너그러웠습니다. 한국인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겁니다. "제대로 발음 지도할 거 아니면 아이돌한테 영어 가사를 주지 않으면 좋겠어요"라고 조금 창피해 하던 우리들을 다독여 주려는 의도였을까요?

- 한국의 대중가요 많이 들으시죠?
"네. 한국 노래 많이 들어요."

- 노래를 듣다가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신 가사가 있었나요?
"많죠. 한국 노래에 영어 가사 되게 많이 나오는데, 어떤 가사는 이상해요. 특히 코러스? 후렴? 그 부분에 의미도 안 통하는 영어가 진짜 많아요."

- 기억나는 노래가 있으세요?
"네, 샤이니의 'Ring Ding Dong' 알아요? 그 노래도 후렴 부분에 'Ring Ding Dong, Ring Ding Dong, Ring Diggy Ding Diggy Ding Ding Ding' 이러면서 말도 안 되는 운(rhyme) 넣고 있지요. 많이 이상하고, 그 부분에서 진짜 많이 웃었어요."

5인조 그룹 샤이니가 5월 17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네 번째 단독 콘서트  <샤이니 월드 4 인 서울>(SHINee WORLD Ⅳ in SEOUL)을 열었다.
 5인조 그룹 샤이니가 5월 17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네 번째 단독 콘서트 <샤이니 월드 4 인 서울>(SHINee WORLD Ⅳ in SEOUL)을 열었다.
ⓒ 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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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노래를 들으실 때 외국인으로서 어떤 기분이 드세요?
"그런 노래들 들으면, 기분 안 좋아요. 이상해요. 뭐라고 하는지 이해도 잘 안 되고요. 그럴 때마다 가사(lyrics)를 보면서 이해하려고 하지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해 안 되는 가사가 정말 많아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아무 의미 없는 영어들…."

- 왜 그런 가사를 대중가요에 사용하는 것 같으세요?
"유명한 노래, 돈 많이 벌잖아요. 그래서 돈 벌려고 그렇게 중독성 있는 후크송(hook song : 같은 가사를 여러 번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만든 노래를 가리키는 말로, 국립국어원은 이를 '맴돌이곡'을 다듬어 쓸 것을 권유함)을 만드는 것 같아요. 영어 가사까지 마구 쓰면서요."

특히, "you're my"와 "if you wanna pretty"라는 가사를 보고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박장대소하시며, 이 정도는 한국 중학생도 알 수 있는 기초적인 문법이 아니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도 우리들이 들고 온 대중가요 가사를 읽어보고는, 틀린 영문법을 일일이 고쳐 주셨습니다. 몇 개만 예를 들어 볼게요.

* so you never dream my heart. (더크로스, 'Don't Cry'에서)
→ so you never dream of my heart.
→ so never feel my heart.
(해설) 'dream'은 자동사이니까 그 뒤에 목적어가 오면 전치사 'of'나 'about'가 와야 합니다. "so you never dream of my heart"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my heart'를 목적어로 갖는다면 '~을 꿈꾸다, 상상하다'라는 의미의 'dream of'보다는 'feel'을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이 문장은 명령의 의미로 읽힐 수 있으니 "so never feel my heart"로 하면 더욱 자연스러울 겁니다. "내 (아픈) 마음을 느끼지 말아요." 정도로 해석하면 될 거고요.

* Dear boy, I'm fell in love on a snowy day. (에이핑크, 'My My'에서)
→ Dear boy, I fell in love with you on the snowy day.
(해설) 이 문장에서는 주어가 사랑에 빠지는 대상은 앞에 있는 'Dear boy'이므로 전치사 'with'가 필요합니다. '~와 사랑에 빠지다'라는 표현은 'fall in love with'이거든요. 그리고 이 문장의 주어는 'I'로, 주어인 내가 직접 사랑에 빠지는 것이므로 'I am fell'이라는 수동태 표현은 문법상 오류입니다.
또한, 이 문장에서 '눈 내리는 날(snowy day)'은 화자는 물론 청자도 알고 있는 특정한 날입니다. 따라서 '어떤'의 뜻으로 상대방이 알지 못하는 대상을 나타낼 때 쓰이는 'a'가 아니라, '그'의 뜻으로 상대방이 알고 있는 대상을 나타낼 때 쓰이는 'the'로 바꾸어 주어야 자연스럽습니다. "Dear boy, I fell in love with you on the snowy day."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눈 내리던 그 날, 나는 당신과 사랑에 빠졌어요."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네요.

* if you wanna pretty (카라, 'pretty girl'에서)
→ if you want to be pretty
(해설) 'wanna'는 'want to'의 줄임말입니다. 이때 'to'는 뒤에 동사원형의 형태를 취해서 'want'의 목적어 역할을 하게 해야 합니다. 따라서 'want to(wanna)' 다음에 'pretty'라는 형용사만 나오면 안 됩니다. 'pretty' 앞에 서술동사 'be'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if you want to be pretty"로 바로잡고, "만약 당신이 예뻐지고 싶다면"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네요.

 카라(허영지, 박규리, 한승연, 구하라) 가 5월 26일 오후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7번째 미니앨범 <인 러브> 발표 쇼케이스에서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총 6곡이 수록되어 있는 7번째 미니앨범 <인 러브>의 타이틀곡 '큐피드'는 프로듀싱팀 e.one(최현준, 정호현)과 작곡가 EJ SHOW의 작품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저격하듯 당당하게 다가가는 여자들의 마음을 표현했다.
▲ 카라, 좀 더 당당하게! 카라(허영지, 박규리, 한승연, 구하라) 가 5월 26일 오후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7번째 미니앨범 <인 러브> 발표 쇼케이스에서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총 6곡이 수록되어 있는 7번째 미니앨범 <인 러브>의 타이틀곡 '큐피드'는 프로듀싱팀 e.one(최현준, 정호현)과 작곡가 EJ SHOW의 작품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저격하듯 당당하게 다가가는 여자들의 마음을 표현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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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한문 혼용체는 있어도 국영문 혼용체는 아직 없는데, 우리의 대중가요가 왜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요? 그것도 엉터리 영어로 말이지요. 외국인들조차도 알아듣기 힘든 어처구니없는 외계어로 우리 노래가 망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따라 부르기만 하면 될까요?

외국인들조차 비웃는 한국의 '돈 많이 버는 노래'(원어민 선생님은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들이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음악 하는 사람들만 질타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라임'과 '소통'이라는 이유를 들어 한국어 문법뿐만 아니라 영어 문법마저 파괴하는 그 문법 파괴 현상을 부추긴 건 바로 우리들이었거든요.아, 참!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저희에게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 계십니다. 여수고등학교 박혜영 선생님이십니다. 의심스러운 대목만 있으면 찾아가 힘들게 했는데도 늘 밝게 웃으면서 맞아주신 것은, 보통 내공이 아니신 것 같았습니다. "일동 차렷! 선생님, 감사합니다." (여수지역고등학생연합동아리 사랑해여수6기, 팀장 : 박진형)

인사드립니다. 박진형, 김명지, 추관식, 하지우 기자입니다.
▲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랑해여수 6기! 인사드립니다. 박진형, 김명지, 추관식, 하지우 기자입니다.
ⓒ 하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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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사랑해여수 , #대중가요, #영어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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