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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 아이들로 북적이는 학교가 좋은 학교다.

책상 앞에 큼지막하게 붙여둔 글귀다. 그야말로 '피 말렸던' 학생부장 직을 벗어나 도서관장 업무를 맡게 되면서부터, 아이들을 떠올리며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하는 '좌우명'이기도 하다.

수업시간을 제외하면, 종일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도서관을 즐거운 '놀이터'로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뿐이다. 일단 도서관에 와서 놀다 보면 어떻든 아이들의 손에 책이 들리게 될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도서관 버전이라고나 할까.

정기적으로 작은 음악회를 열기도 하고, 매월 한 차례씩 야간자율학습 시간을 빌려 엄선된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하는 꼭지도 만들었다. 또 한 학기에 한 번씩 장르별로 책을 읽고 직접 저자를 만나는 북 콘서트도 마련했고, 별도로 도서관 주간을 정해 독서 퀴즈대회와 도서 바자회, 명사 초청 특강까지 다채로운 행사를 벌이고 있다. 물론, 이 모두는 아이들의 발길을 도서관으로 이끌려는 '유인책'이다.

도서관 행사에 몰리는 아이들, 책은 왜 읽지 않을까?

한때 학교생활기록부에 '독서 이력'을 기록하고 대학입시에 반영하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던 적도 있었다.
 한때 학교생활기록부에 '독서 이력'을 기록하고 대학입시에 반영하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던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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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교문엔 현수막이 내걸리고, 교내 게시판 곳곳은 안내문으로 도배가 된다. 도서관이 비좁은 걸 걱정해야 할 만큼 꼭지마다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좌석 수에 맞춰 학급별로 몇 장씩 배포한 초대권을 아이들끼리 '거래하는' 부작용이 생겨날 정도다. 도서관 주간 때는 아예 종일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특히 강연과 대담, 음악회로 엮어지는 북 콘서트는 대표 브랜드가 됐다.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을 시작으로, 안도현 시인, 정희준 스포츠 평론가와 하종강 노동문제연구소장, 그리고 얼마 전 곽재구 시인이 차례로 아이들을 만났다. 지방 소재 고등학생들에게는 저자를 직접 만난다는 게 신기해선지 행사가 마치 '저자 사인회'를 방불케 할 정도다.

세 해째 이어지다보니 이제는 도서관 행사를 기억하고 기다리는 아이들도 생겨났고, 학창시절 즐거웠던 추억으로 손꼽는 졸업생들도 있다. 언제든 도서관에 가면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 즐길 거리가 마련돼 있다는 인식을 아이들에게 심어준 것만으로도 어깨가 으쓱해지곤 한다. 그렇게 바랐던 대로 시나브로 도서관은 놀러오는 아이들로 북적이게 됐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들이 아이들의 책 읽는 습관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수년 째 아이들의 도서 대출 권수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행사에 참여한 아이들마다 이구동성 책에 관한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말하지만, 정작 책을 집어 들게 하는 충분한 '자극'은 되지 못한 셈이다. 애초 이는 한낱 도서관의 몸부림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고백하건대, 앞서 말한 '좌우명'과 일련의 행사들도, 도서관의 책임자로서, 어떻게 해서든 도서 대출 권수를 늘려보려는 심산이었다. 몇 해 전 학교별 성과급 제도가 도입된 이후,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지역의 경우 학교 도서관 도서 대출 권수가 학교평가 항목으로 당당히 이름이 올라있다. 오로지 그 계량화된 수치가 '도서관 활성화'의 유일하다시피 한 지표임은 물론이다.

'돈'과 결부되다보니 학교 도서관마다 대출 권수를 늘리려는 편법이 난무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듣자니까, 대출 권수를 학업우수상 등 모든 포상의 기준 자료로 삼는가 하면, 심지어는 학급별로 개인별로 이름하여 '도서 대출 할당제'를 시행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학교평가 결과에 따라 성과급에 차등을 둔다고 하니, 학교별로 아이들 보기 민망할지언정 '대안'은 어렵지 않게 마련되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이 손에서 책을 놔버린 게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인가. 이젠 어떻게든 강제하지 않으면 아예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걸세. 오죽했으면 대출 권수를 학교평가 항목에 넣었겠나. 더욱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온통 시선을 빼앗긴 마당이니,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들에게 책을 한 줄이라도 읽히게만 할 수 있다면, 난 박수 칠 일이라 생각하네."

나이 지긋한 선배교사의 이 말에 대놓고 반론하지는 못했지만, 체한 듯 가슴이 답답해졌다. 학교에 처음 부임한 17년 전부터 지금껏 익히 들어온 이야기라 그렇다. 아이들에게 책 읽기란 늘 수험 준비의 일환이었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대부분의 아이들이 대학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책을 읽지 않도록 '구조화' 돼버렸다. 요즘 아이들에게 '책 읽기의 즐거움'은 모순형용이다.

강제할 수 없는 책 읽기... 아이들에게 독서할 시간을 주자

지금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지만, 한때 학교생활기록부에 '독서 이력'을 기록하고 대학입시에 반영하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던 적도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지원한 전공과 관련된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확인하겠다는 것인데, 이 또한 편법만 부추기는 결과만 낳았다. 여기저기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달인'들만 양산됐고, 그럴수록 아이들은 책과 더욱 멀어져만 갔다.

책 읽기조차 전가의 보도처럼 강고한 학벌구조에 편승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이 책을 읽게 될 거라는 발상 자체가 한심하기도 하지만, 그 몇 권의 책 읽기 경험으로 아이들의 자질과 적성을 판단하겠다는 인식은 어이없기까지 하다. 설마 그들이 대학별 필독서조차 요점 정리된 참고서로 공부하는 아이들의 현실을 몰랐을 리 없는데 말이다.

오늘도 도서관에 앉아 수백 명 아이들의 독서 수행평가 과제를 읽으며 채점을 하고 있다. 언뜻 봐도 태반은 천편일률적인 내용이다. 어디서 베꼈는지 굳이 짬을 내 뒤져보면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필요를 느끼지는 못한다. '독서의 생활화'라는 학교의 방침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무의미한 짓이다. 대출 권수를 학교평가에 반영하고, 독서 이력을 대학입시에 연계시키는 방식과 하등 다를 바 없어서다.

과제도 없고, 결과도 묻지 않는 '전용 독서 시간'을 교과 수업처럼 못 박아 두는 건 어떨까.
 과제도 없고, 결과도 묻지 않는 '전용 독서 시간'을 교과 수업처럼 못 박아 두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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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초 아이들로부터 희망도서 구입 신청을 받을 때면, 예전엔 '판타지 소설'이라도 사달라고 이름을 적어 냈는데, 요즘엔 그마저도 귀찮다는 듯 거의 없다시피 한 상태다. 그러는 사이 책 읽기는 가정과 학교, 나아가 우리 사회가 어찌 손써 볼 수 없는 '목표'이자 다다를 수 없는 '이상'이 돼버렸다. 과거 대학입시 성적을 올리기 위해 학교에서 체벌이 묵인되던 시절처럼, 책 읽히기 위해 매질을 해댈 게 아니라면 백약이 무효인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제 낡은 틀을 깰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대학입시 운운하며 겁박하거나 교과 성적에 반영하겠다는 등의 방식을 답습한다면, 아이들은 더욱 책과 멀어지게 될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아이들 스스로 책 읽기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재미있는 놀이이기는커녕 '학습 노동'으로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조급함을 버리고 아이들에게 책 읽을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 어릴 적 독후감 숙제가 책 읽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듯, 계량화된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책 읽기를 '일'로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아예 교실이나 도서관도 좋고, 운동장 스탠드나 잔디밭도 좋으니, 하루 일과 중 자유롭게 책 읽는 시간을 '강제' 배정하는 것도 대안일 수 있다.

과제도 없고, 결과도 묻지 않는 '전용 독서 시간'을 교과 수업처럼 못 박아 두는 것이다. 무슨 책을 집어 들든 신경 쓰지 말고, 그 시간만큼은 교사도 아이들 곁에서 뒹굴 거리며 함께 책을 읽도록 하는 것이다. 교육의 본령이 '사제동행'일진대,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 확신한다.

며칠 전 통계 조사하듯 도서관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수십 명 아이들을 붙잡고 물어봤다. 요즘 아이들이 책을 잘 읽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를. 어른들이야 인터넷 게임이나 스마트폰 때문이라고 여길 테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사뭇 달랐다. 책을 읽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는 대답이 훨씬 많았다. 책 읽기는 '시간'의 문제일 수 있다.

사족 하나.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렇듯 둘로 확연히 갈렸지만, 곱씹어볼 만한 대답도 있어 잠깐 소개한다. '책 읽기를 통해 쌓은 교양이 전혀 대화에 끼지 못하는 분위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자기 형의 말을 빌려, 또래 고등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요즘 대학생들조차 공자와 맹자, 칸트와 헤겔 등을 언급하는 걸 '금기시'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잘난 체 한다며 왕따 당하기 십상이라는 거다. 그 아이 앞에서 말은 못 꺼냈지만, 명색이 교사들 사이에서도 사실 별반 다르지 않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태그:#독서 이력, #학교평가,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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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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