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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VS 판결> 표지사진.
 <판결 VS 판결> 표지사진.
ⓒ 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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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내용이 실린 기사에서 흔히 "말도 안 된다"는 댓글을 읽을 수 있다. 흉악 범죄인데도 형량이 대중의 예상보다 낮거나,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음주'를 이유로 감형된 사례를 보면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선명하지 않은 듯한 법의 잣대에 때로 어리둥절해지는 순간도 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판결 VS 판결>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책은 <오마이뉴스>에서 지난해 2월부터 최근까지 연재된 판결 기사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다양한 판결 사례 모음집

<판결 VS 판결>의 저자 김용국씨는 법조계 전문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서울가정법원, 서울중앙지법, 서울동부지법 등에서 15년째 법원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는 활동을 하고 있다. 본업에서 얻은 정보를 글쓰기로 잘 살려낸 셈이다.

40개의 판결을 둘 씩 묶어서, 20개의 테마로 풀어내는 구성도 흥미롭다.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을 다룬 1991년 판결은 2015년 재심 판결과 대비되는 내용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군부 독재 정권에서 유죄였던 사건은 20년이 넘게 흘러 무죄로 뒤집힌다. 본문은 이를 통해 정치적 목적이 판결에 개입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짚어본다.

무직자의 15만 원 절도와 재벌 회장의 1500억 원 배임 판결을 다룬 부분도 살펴보자. 2013년에 어느 60대 노인이 결혼식장에서 축의금 봉투 2개를 훔쳤다. 총 15만 원이 들어있었는데, 그는 현장에서 제지당하고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체포당한다. 구속 열흘 만에 기소되고, 20일 만에 첫 공판이 열려 징역 3년형을 선고 받았다. 15만 원을 훔쳤는데 3년형을 받은 것은 '장발장법' 때문이었다. 전과가 있는데다 누범기간에 다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사건을 재벌 A회장의 사건과 비교한다. A회장은 업무상 배임, 횡령, 탈세로 회사와 주주에게 1500억 원대의 피해를 입혔다. 그리하여 2012년 8월, 1심에서 징역 4년과 벌금 51억 원을 선고받는다. 그는 법무법인 두 군데와 검사장급 출신 변호사 등 거물급 변호인단을 꾸려서 항소한다. 고등법원에 대법원까지 거친 결과, 결국 최종 형량은 3년형에 집행유예 5년이었다. 흔히 유죄 판결을 받는 재벌 회장에게 공식처럼 내려지는 형량,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그대로였다.

형사사건의 양형을 범죄액수에 따라 단순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빈자와 부자를 상징할 만한 두 사람의 재판결과는 너무도 달랐다. 한 사람은 수십만 원 정도의 절도를 반복해서 14년간 징역을 산 반면, 또 한 사람은 사회적 물의를 빚은 큰 죄를 거듭 저지르고도 실형을 피해갔으니 말이다. 이를 두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하면 과장일까?

아니, 최소한 '유전집유, 무전실형'이라는 비난은 피하기 어려우리라. 무직자의 15만 원 절도에는 징역 3년이, 재벌회장의 1500억대 배임에는 집행유예가 내려지는 현실을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본문 160~161쪽 중에서)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들을 돌아보다

<판결 VS 판결>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들을 돌아본다. 이를 통해서 한국 사회가 걸어가는 방향을 되짚거나, 혹은 사법부의 현실을 꼬집는다. 또한 지나치게 보수적인 판결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판결 내용에 따라 법원에 대한 신뢰도가 고무줄처럼 오르내리는 상황도 언급된다. 사법부의 문제를 비판하되, 판결의 유불리에 따라 법과 제도를 비난하지는 말자는 뜻이다. 실제로 본문에 수록된 사례와 판결 과정을 따라 읽다보면, 독자들도 쉽게 결론내릴 수 없는 사안들을 만나게 된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결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사건들이 많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국민참여재판'의 사례를 두고서는 "법원에 대한 불신 해소와 공정한 형사 재판의 정착을 위해서는 앞으로 국민참여재판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때로 전문가가 아니라도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건이 있으며, 국민의 참여를 통해 법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사법부가 "판사들의 선발부터 재판까지,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고도 덧붙이는데, 읽다 보면 어느새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다.

크게 논란이 된 사안들 중에서 '종북 낙인' 관련 판결도 있다. 아나운서 출신 정씨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 지자체장을 두고 "종북 성향"이라 글을 SNS에 적은 것이다. 당사자들은 정씨의 발언에 민사 소송을 걸었고, 법원의 판결은 다음과 같았다. "'종북 성향의 지자체장'이라는 표현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것. 법원이 근거 없는 종북 낙인 찍기에 제동을 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타살이 된 자살까지 살펴본 판례

<판결 VS 판결>에 실린 사례들 중에는 자살이지만 사회적 타살로 봐야 할 사건들도 있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던 서씨가 자살한 경우는 최저임금도 안되는 급여에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온갖 욕설과 구타를 겪은 이후였다. 유족들이 진행한 민사 재판은 그를 폭행한 오씨가 서씨의 자살에 책임이 있음을 일부 인정했다. 또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민(가명, 14)군의 자살 사건도 이어진다.

정민군이 자살을 결심한 계기는 학교폭력이었다. 온라인게임을 하다가 알게된 친구들이 정민군에게 "내 케릭터 레벨 올려놔"라고 요구하며 구타한 것이다. 결국 법원은 가해 학생의 부모와 학교의 교장, 담임에게 책임을 물었다. 저자는 "사회가 좀 더 나은 노동환경을 제공했더라면, 학교가 좀 더 세심하게 학생을 배려하고 학교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더라면 안타까운 죽음은 막을 수 있었으리라"고 썼다. 이처럼 <판결 VS 판결>은 다양한 사건을 다룬 판결을 통해서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본문은 3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법의 잣대만으로 완벽하게 판단하기 힘든 사안들, 같은 사건을 놓고도 판사끼리 유·무죄 의견이 갈리는 사건들을 모았다. 정당방위의 범위, 성범죄 판결 사례 등이 담겼다.

2부는 유서대필 조작 의혹 판결, 벤츠 여검사 사건 등 사회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던 사안을 다룬다. 황제 노역 등의 사안에서 판결이 내려지는 과정을 차분하게 따라가면서 그 의미를 짚어낸다. 3부는 국가의 폭력과 세월호 참사, 종북 낙인, 정리해고 반대 파업 등 한국의 오늘날을 보여주는 척도를 소재로 삼았다.

<판결 VS 판결>은 독특한 구성으로 읽는 재미를 더한다. 폭넓은 사안을 다룬 판례를 통해서 사건과 판결이 가져다주는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한다. 법의 잣대에 대해서 의문을 갖거나 법원의 판결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판결 VS 판결>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궁금한 부분의 해결과 더불어 사법부의 과거와 현재, 재판 과정도 엿볼 수 있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덧붙이는 글 | <판결 VS 판결>(김용국 지음/ 개마고원/ 2015. 6. 15./ 1만 4000원)



판결 VS 판결 - 법대로 하는데 왜 판결은 다를까?

김용국 지음, 개마고원(2015)


태그:#판결 VS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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