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큰 재활성취를 얻고 전주에 고향친구들을 초대하다


전주시 공무원에 임용돼 근무하며 적응에 많은 어려움을 겪던 내가 6월이 접어들며 모든 면에서 확연히 여유를 가지게 됐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재활운동을 6월 중순부터 다시 시작했다. 운동시간을 대폭 줄였다가 다시 시작한지 2주째에 접어들면서 나는 비로소 온전한 자세로 걷는게 가능해졌다.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흥분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건강한 사람들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미만성 축삭 손상(Diffuse Axonal Injury)으로 신경전달체계를 재구축해야하는 나에게는 실로 대단한 재활성취다. 정지됐던 신경이 다시 기능을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이제 재구축된 신경조직의 근육들만 단련시키면 내가 목표한 '완전한 재활'이 가능해진다는 것 또한 의미한다.

만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내게는 재활이 모든 일에 우선했기에 귀하게 얻은 재활성취에 그간 미뤄두었던 일중의 하나인 고향친구들을 전주로 초대하기로 했다. 2015년 6월 27일(토요일) 서울과 수원 등지에서 넷, 대전과 고향에서 두 명의 친구가 전주를 찾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는데 있어 큰 힘이 되어준 소중한 친구들이기에 전주한옥마을에 자리한 마지막 황손 이석씨가 운영하는 '승광재'에 숙소를 정했다.

열차로 도착한 친구들과 합류해 고향친구부부가 직접 운영하는 전주에서 유명한 함흥냉면 전문점 '다래'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비가 내려 한옥마을 투어는 포기하고 전주막걸리의 원조격인 삼천동의 한 유명 막걸리집을 찿았다.

 전주의 대표적 술문화인 전주막걸리는 풍성한 안주를 제공하는게 그 특징인데 유명세를 타며 상업성에 물든 모습이 안타까웠다. 주말을 맞아 비가오는데도 밖에까지 길게 줄을 지어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 유명 막걸리집에서 풍성한 전주막걸리를 즐기는 고향친구들 전주의 대표적 술문화인 전주막걸리는 풍성한 안주를 제공하는게 그 특징인데 유명세를 타며 상업성에 물든 모습이 안타까웠다. 주말을 맞아 비가오는데도 밖에까지 길게 줄을 지어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 서치식

관련사진보기


방문소식을 듣고 전주에 사는 여자 친구들 셋이 왔고,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세 차례나 풍성한 안주를 주문했기에 안주가 풍부해서 막걸리만 추가하는데 잔뜩 마뜩찮은 얼굴로 주인이 다가와 술만 시키실 거면 자리를 비워달라고 했다. 밖에 길게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저 사람들 입장을 헤아려 달라는 것이다.

술이 몇 순배 돌기도 했고 좋은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친구들을 추슬러 서둘러 나와서 전주만의 독특한 또 다른 술 문화인 가맥으로 유명한 전일슈퍼로 자리를 옮겼다. 막걸리와 가맥으로 대표되는 전주의 술 문화를 모두 맛보게 하고 술이 얼큰해서 숙소인'승광재'로 향했다.

취해서 잠들었음에도 내게는 너무도 소중한 시간인지라 아침 일찍 일어나 전날 마신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는 친구들을 서둘러 깨워 콩나물국밥으로 유명한 왱이집으로 향했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중에 낯이 익은 주인이 나오기에 인사를 했는데 그때 잠이 덜 깬 친구하나가 테이블에 엎드려 있는 것을 보았던 모양이다.

잠시 후 얼음을 띄운 설탕물을 가져와서는 마시게 하더니 연이어 종업원이 술 깨는 약을 가져다 주었다. 부탁한 바도 없는데 술 취해 힘들어 하는 거라 생각하고 종업원을 시켜 약을 사오게 하고는 자기는 손수 설탕물을 준비해 가져다준 것이다. 친구들 모두가 이 생각지도 않은 호의에 감동을 했으며 나 역시 전주의 푸근한 인간미를 보여준 것이라 생각해 뿌듯했다.

술로 다친 속을 얼큰한 해장국으로 달래고 덤으로 생각지도 않던 호의에 감동한 친구들이 주차장 옆 야외 테라스의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그때 사장님이 나오셔서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후덕한 사장님은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갑자기 종업원에게 전화를 걸어 콩나물을 7개의 검은 봉지에 담아 가져오라고 했다.

잠시 후 일반 비닐봉지에 가져온 콩나물을 보고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가게로 들어가 외국 계 유명 의류회사 쇼핑백을 7개 가져와 '남자들이 열차타고 가는데 검은 비닐로 가져가면 창피하니 이렇게 깔끔한 곳에 가져가야 한다' 하신다. 검은 비닐에 담은 것은 콩나물은 햇빛에 노출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라고 하시며 일일이 새로 포장을 해 건네주었다.

술 깨는 약과 설탕물에 감동받은 친구들은 "콩나물국밥 먹으러 왔다가 덤으로 전주의 인심을 맛보았으며 멋지게 포장된 사랑을 선물로 가져가게 되었다"라고 즐거워 한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이런 넉넉함이 전주의 모습이고 내 소중한 친구들이 이번 방문을 통해 그 정수를 맛본다는 생각에 흐뭇했다.

그러는 중에 숙소인 승광재에서 전화가 마지막 황손 이석님과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기에 서둘러 승광재로 향하였다. 승광재에 가니 깔끔한 한복차림의 (사)황실문화재단의 이석총재님(75, 전주시 풍남동)이 일단의 사람들과 마당에서 토스트, 감자, 음료 등을 나누며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1960년대 궁에서 쫓겨나면서 생활고에 시달려'비둘기집'이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자원해 월남전에 파병된 적도 있다고 한다.

 마지막 황손 이석(75, 전주시 풍남동)과 함께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앞으로 그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생각을 했다.
▲ 마지막 황손과 함께 마지막 황손 이석(75, 전주시 풍남동)과 함께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앞으로 그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생각을 했다.
ⓒ 서치식

관련사진보기


황손이라는 귀한 신분으로 망국과 5·16 군사정권으로 이어진 질곡의 현대사를 헤쳐 나오며 겪었을 그의 고단했던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귀한 신분으로 섬김에 익숙했던 분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하는 처지로 전락했을 때 그가 느꼈을 고독과 외로움, 무력감이 어떠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처지에 처한 수많은 황손들과 달리 가수로, 월남전 참전 용사로 세상에 당당히 맞서 살아온 분이시기에 진정한 이 시대의 마지막 황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우리나라엔 정신적 지도자가 없어 갈등과 반목을 조정하고 중재할 어른이 없다고들 한다. 

전통문화의 도시 전주한옥마을을 찾는 수많은 탐방객들에게 늘 고운 한복차림으로 전통과 국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진정한 이 시대의 황손인 그가 우리사회의 원로로, 큰 어른으로의 역할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며 내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를 살아오는데 큰 힘이 되어준 고향친구들과 함께 승광재를 떠났다.

 풍성한 전주 막걸리와 가맥이라는 독특한 전주의 술문화, 콩나물 해장국집에서는 덤으로 풍성한 인심까지 덤으로 선물받았으며 승광재에서 마지막 황손 이석(75, 전주시 풍남동)님과 함께한 시간까지 고향친구들과 흐뭇한 마음으로 헤어질 수 있었다.
▲ 전주에서 1박2일을 하고 떠나는 고향친구들의 전주역 모습 풍성한 전주 막걸리와 가맥이라는 독특한 전주의 술문화, 콩나물 해장국집에서는 덤으로 풍성한 인심까지 덤으로 선물받았으며 승광재에서 마지막 황손 이석(75, 전주시 풍남동)님과 함께한 시간까지 고향친구들과 흐뭇한 마음으로 헤어질 수 있었다.
ⓒ 서치식

관련사진보기


 막걸리와 가맥을 마시고 한옥마을 인근에서 지인이 운영하는 문화가 있는 커피숍 "더 써드웰"에서 환담하는 고향친구들
▲ 전주의 술문화를 체험한 첫날 문화가 있는 커피숍에서의 마무리 막걸리와 가맥을 마시고 한옥마을 인근에서 지인이 운영하는 문화가 있는 커피숍 "더 써드웰"에서 환담하는 고향친구들
ⓒ 서치식

관련사진보기


보통 사람들과 많이 다른 경험을 해야 했던 나는 일상에서 큰 생각차이를 느낄 때가 많다. 장애를 얻고 스스로 병원치료를 마치고 이른바 '자가 재활'을 통해 완전한 재활을 이루겠다는 고집스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엄하게 몰아온 10여년의 생활. 그 끝에 재활의 최종목표인 하프 마라톤 완주가 저만큼 보이는 시점이라고 확신한다.

그러한 때에 그 외롭고 지난했던 시간동안 끝없는 관심과 성원으로 날 응원해준 소중한 내 고향친구들(관련기사:  4년 재활끝에 고향 친구 모임에 참석하다) 중 일부를 공무원의 신분으로 전통문화의 도시인 이곳 전주에서 보낸 1박2일은 참으로 축복된 시간이었다.


태그:#서치식, #완전한 재활, #마라톤하는 장애자, #휠체어에서 마라톤까지, #전주한옥마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뇌병변2급 장애를 가진 전주시 공무원으로 하프마라톤 완주를 재활의 목표로 만18년째 가열찬 재활 중. 이번 휠체어 사이클 국토종단애 이어 장애를 얻고 '무섭고 외로워'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휠체어에서 마라톤까지"시즌Ⅱ로 필자의 마라톤을 마치려 함.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