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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기자) =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가 쉽게 전염되는 병이 아니라는 것을 가장 잘 알 만한 병원에서조차 아직도 에이즈 환자의 치료와 입원을 거부하는 일이 많습니다."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인과 에이즈 환자들의 모임인 '한국 HIV/AIDS 감염인 연합회 KNP+'(이하 연합회) 대표 손철민(가명·52)씨는 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감염인을 대표해 이런 답답함을 전했다.

손씨는 "대다수 감염인이 약물치료를 통해 별다른 증상 없이 일상을 살고 있지만 오래전 굳어진 에이즈에 대한 나쁜 이미지 때문에 지금도 오해와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손씨는 1995년 헌혈을 하고 나서 혈액검사 결과를 통보받고 HIV 감염 사실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청천벽력과 같은 감염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지만 지난 20년간 별다른 증상없이 건강하게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20년 전 보건소 직원이 집으로 찾아와 HIV 양성반응이 나왔다고 통보했을 땐 믿기지도 않았고 무서운 느낌만 들었습니다. 에이즈가 소문과 달리 쉽게 전염되지 않고 특별히 위험하지 않으니 몸 관리를 잘하면 된다고 설명하는 보건소 직원 말에 반신반의했는데 지나고 보니 사실이었습니다."

감염 확인 이후 3개월마다 대학병원에서 종합검사를 받으며 10년 동안 특별한 증세가 없던 손씨는 2005년 서울로 직장을 옮긴 이후 가끔 피로하고 열이 나 약물을 처방받기 시작했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이젠 에이즈가 당뇨나 고혈압처럼 관리만 잘하면 위험하지 않은 질병인 시대가 됐습니다. 서너 개의 약물을 동시에 투여하는 칵테일 요법을 통해 저처럼 20년간, 30년까지도 건강하게 사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에이즈 환자도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몸 안의 바이러스가 급감해 다른 사람에게 혈액이나 정액을 통해 전염시킬 가능성도 현저히 낮아진다는 게 의학계의 설명이다.

의학 발달로 에이즈가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 취급을 받게 됐지만, 아직도 에이즈 환자들을 보는 사회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환자들은 이런 편견에 함께 견디고 대응하기 위해 2012년 연합회를 조직했다.

연합회는 2011년 국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에이즈 대회'(ICAAP)를 계기로 당시 지역과 온라인에서 활동하던 감염인 모임 대표들이 모여 만들었다.

손씨는 "에이즈가 처음 발견됐을 때 워낙 무서운 질병으로 알려져 이런 고정관념이 아직도 옅어지지 않는 것 같다"며 "우리나라 최고의 의사들이 언론에 나와 에이즈는 전염성이 낮고 위험하지 않은 질병이 됐다고 강조해도 고정관념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 감염인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약물치료를 통해 건강을 관리하며 무리 없이 평범한 생활을 하는 감염인들이지만 다른 질환으로 병원을 찾아야 할 때는 아직도 긴장된다고 한다.

손씨는 "에이즈가 호흡기로 옮는 병도 아닌데 단지 기분이 꺼림칙하다는 이유로 진료와 입원을 거부하는 병원들이 있다"며 "감염인들이 가장 힘든 순간에 병원이 손을 뿌리쳤다는 소식이 들리면 깊은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고 아쉬워했다.

지방 중소 병원은 물론 서울의 유명 대형병원에서도 에이즈 환자를 거부하는 일이 아직도 있다는 게 손씨의 지적이다.

2011년 7월에는 HIV 감염인이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고관절전치환술(인공관절 시술)을 요청했지만 병원 측이 '특수장갑이 없다'며 수술을 거부한 사례가 있다.

작년 8월에도 감염인이 강원도 원주의 한 종합병원에서 중이염 수술을 받으려 했지만 병원 측이 '수술방에 환자 피가 튀는 것을 가릴 막이 설치돼 있지 않다'며 수술을 거부해 3개월 뒤에야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손씨는 "젊은 부부가 HIV에 함께 감염된 뒤 약물치료를 잘 받으며 에이즈에 걸리지 않은 건강한 아기를 순산한 사례가 있을 정도로 이 병은 이제 관리가 가능한 질병이 됐다"며 "이런 사실들이 제대로 알려져 오해와 편견이 없어지고 환자들의 치료 받을 권리가 확보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태그:#에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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