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남아' 김동광(62)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 표류하던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됐다. 대한농구협회는 오는 9월 중국 후난성에서 열리는 2015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할 대표팀 사령탑으로 지난달 29일 김 감독을 선임했다.

김동광 감독은 송도고와 고려대를 졸업하고 실업 기업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보냈으며, 은퇴 후에는 바레인 국가대표팀-기업은행-SBS-삼성 감독 등을 역임했다. 2000~2001시즌에는 프로농구 삼성 썬더스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며 전성기를 보냈다.

국가 대표팀 지도 경력도 풍부해 1994 캐나다 세계선수권과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등 다수의 국제 대회에서 코치로 활약했으며, 특히 1997년 사우디 아시아선수권에서는 고 정광석 총감독을 보좌하는 수석코치이자 실질적인 감독으로 우승을 이끌었다. 이 대회는 한국의 역대 마지막 아시아선수권 우승 기록으로 남아 있다. 2001년 아시아선수권에서는 감독으로서 지휘봉을 잡기도 했다.

김 감독은 남자다운 성격과 호탕한 리더십을 앞세워 선수들에 대한 장악력이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일선 지도자들과 프로 감독들도 모두 김동광 감독의 제자뻘이다 보니, 자존심과 개성이 강한 프로 선수들도 김 감독의 카리스마 앞에서는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 감독은 2013년 친정팀 삼성의 감독으로 복귀해 약 1년 반 동안 활약했고, 최근에는 방송 중계 해설을 맡으며 거침 없는 돌직구 발언과 상남자 이미지로 신세대 농구 팬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선수나 심판은 물론 농구계 현안에도 눈치 보지 않고 거침 없는 쓴소리를 하며 팬들의 가려운 구석을 대변해줬기 때문이다. 김동광 감독의 작전 타임이나 방송에서의 발언들은 요즘도 인터넷에서 '어록'으로 회자되며 인기를 끌고 있을 정도다.

김동광 국가대표 감독 선임, 팬들도 '긍정적' 반응 

김동광 감독의 선임 소식에 팬들의 반응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김 감독은 프로와 국제 무대를 아우르는 풍부한 경험과 리더십을 겸비하고 있으며, 현재 맡고 있는 팀이 없어 대표팀을 맡는 데 제약이 없다. 불과 1년 전까지 삼성 감독을 역임했고 이후에도 KBL 행정과 방송 해설 등을 통해 현장 상황에도 밝다. 대표팀 사령탑 구인난에 시달려온 농구협회로서는 사실상 마지막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현재 상황에서 최상의 카드였던 셈이다.

한국농구계는 최근 그야말로 '막장'이라는 표현밖에 쓸 수 없을 만큼 총체적 난국에 처해 있다. 프로 농구를 강타한 승부 조작 파문으로 한국 농구계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와 신뢰도는 그야말로 바닥을 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사실상 대표팀 운영이 올스톱되며 올해 아시아선수권을 두 달 앞두고 대표팀에 대한 준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역대 농구 대표팀 감독 중에서도 이 정도로 시작부터 비관적인 분위기는 처음이다. 그만큼 한국 농구와 국가 대표팀 감독의 위상이 얼마나 떨어져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흔히 대표팀 감독을 가리켜 독이 든 성배라고 하지만, 현재의 농구 대표팀 감독은 성스러움도 없는 그냥 독배에 가깝다.

김 감독이 우여곡절 끝에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됐지만, 상황은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올해부터 스포츠토토 지원금 분배 방식이 바뀌면서 종래 토토지원금을 국가 대표팀 예산으로 활용해왔던 농구협회도 직격탄을 맞았다. 수년 전부터 제기돼 왔던 전임 감독제와 대표팀 상설 운영이 미뤄지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 대표팀은 가뜩이나 촉박한 시간에 전지 훈련이나 평가전 등을 개최할 여력도 없다. 아시아선수권 개막 전에 열리는 윌리엄 존스컵 참가 사실상의 유일한 전지 훈련 무대다.

올해 아시아선수권에는 우승팀에게만 2016 리우 올림픽 출전권이 주어진다. 중국, 이란, 필리핀 등은 일찌감치 이번 대회를 앞두고 세대 교체와 귀화 선수 영입 등을 통해 야심차게 준비 중이다. 냉정히 말해 한국의 전력과 준비 상황으로서는 우승은 고사하고 3-4위권 진입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현실이다.

기꺼이 독배 받아든 김동광 감독

그나마 김동광 감독은 엄밀히 말해 반쪽짜리 전임 감독이다. 예산 상의 문제로 제대로 된 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감독 임기에 대한 부분도 일단 이번 대회까지 지휘봉을 맡는다는 것만 결정됐을 뿐 이후의 행보는 미지수다.

당장 성적을 기대하기도, 그렇다고 장기적인 기획을 가지고 대표팀을 운영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노감독 혼자 독박만 뒤집어쓰고 대회가 끝나면 버림받는 '소모품형 단기 알바' 감독으로 끝날 수도 있다. 농구인으로서 평생 쌓아온 노감독의 명예에 오점을 남길 수도 있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대표팀과 한국 농구에 대한 책임감 하나로 기꺼이 독배를 수락한 김동광 감독의 결단은 박수받을 만하다. 상대적으로 이기주의와 매너리즘에 찌든 국내 농구인들에게 자극을 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어렵게 김동광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상 이제부터는 대표팀을 위한 '방향성'을 분명히 정하는 것이 다음 과제다. 김동광 감독은 일단 유재학 전 대표팀 감독이 구축해 놓은 선수 구성과 전술의 기본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쳤지만, 대표팀은 세대 교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김주성, 문태종 등 아시안게임까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노장들이 사실상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고 새로운 귀화 선수 영입도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현재의 전력으로 100%를 쏟아붓는다고 해도 중국이나 이란, 필리핀을 이긴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어차피 이번 대회 우승이나 올림픽에 출전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을 때, 차라리 중국처럼 2~3년 뒤를 대비한 리빌딩에 돌입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중국은 2013년 아시아선수권에서 8강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은 이후, 30대 이상 노장 선수들을 대거 배제하는 강도 높은 세대 교체에 돌입했다.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성적이 좋지 못했던 이유도 국제 경험이 부족한 신예들로 대표팀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한국 농구에서 대표팀 운영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연속성의 부재였다. 다행히도 현재 한국 농구에는 젊고 가능성있는 자원들이 꾸준히 배출되고 있다. 문제는 이 선수들이 꾸준히 경험을 쌓고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장의 성적을 포기하더라도 양동근-김주성 등 대표팀에서 오래 뛰었던 선수들은 배제하고 젊고 유망한 선수들을 과감하게 기용해 미래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특출한 개인 능력이 없는 한국 농구로서는 한 발이라도 더 많이 뛰고 움직이는 수비 농구를 중시할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젊고 역동적인 선수들이 필요하다. 김동광 감독이 내년 이후에도 계속 전임 감독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새로운 대표팀은 더 이상 눈앞의 대회만을 위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4년~5년 뒤까지 감안해 확실한 색깔과 연속성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대표팀이 돼야 한다. 어려운 시기에 어려운 역할을 맡게 된 김동광 감독의 어깨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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