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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바로 이 맛이에요! 최고예요!"

골목길이 만든 꿀 피자를 맛본 꽃사슴 선생님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어.

"야호, 성공이다!"

꽃사슴 선생님이 합격사인을 보내자 골목길은 환호성을 질렀어.

"어떻게 이렇게 맛있는 꿀 피자를 만드셨어요?"

꽃사슴 선생님이 놀랍다는 듯 물었어.

"막내를 생각하며 만들었거든요. 막내가 먹을 피자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골목길이 쑥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어.

"응, 그러니까 막내를 위하는 아빠의 마음으로 정성껏 만들었군요."

꽃사슴 선생님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어. 골목길도 꽃사슴 선생님을 바라보며 그렇다는 표정으로 가볍게 웃었어.

골목길은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도와주시는 꽃사슴 선생님께 늘 감사하고 있었어. 그래서 오늘은 꽃사슴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냥 하지 않았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꽃사슴 선생님이 자신의 마음을 잘 아실 것 같았거든.

"잘했어. 그 동안 수고했어."

아빠 사슴도 기뻐하며 골목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어.

"그런데 피자 이름을 뭐라고 할까요?"

골목길이 아빠 사슴에게 물었어.

"막내를 위하는 아빠의 마음으로 만들었으니까 '아빠의 마음'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꽃사슴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어.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그럼 꿀 피자 이름은 '아빠의 마음'으로 정하겠습니다."
"그리고 꿀 피자를 사가는 소비자에게 하루 한 가지씩 좋은 일이 생기도록 기도하는 건 어때요? 막내를 위하는 아빠의 마음으로 말이에요."
"좋은 생각입니다. 그리고 소비자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칭찬도 한 마디씩 하고요."
"좋아요."

따뜻한 가게에는 막내를 위하는 아빠의 따뜻한 마음이 가득차고 있었어.

"그런데 가격은 얼마를 받으면 좋을까요?"

골목길이 화제를 딴 데로 돌리며 아빠 사슴에게 물었어.

"가격 결정은 우선 제조원가를 따져봐야지. 다시 말해서 꿀 피자 하나를 만드는 데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를 계산해 봐야 해."
"그럼, 제조원가를 계산할 때는 어떤 것들을 살펴봐야 하는데요?"

골목길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어.

"우선 꿀 피자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재료비를 넣어야지"
"꿀값과 피자값 말인가요?"
"그래. 맞아."
"또 다른 건 없어요?
"여기다가 꿀 피자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노동력을 계산해야 해. 즉, 인건비를 계산해야지. 그리고 기타 꿀 피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들어간 여러 비용들을 더하면 돼."
"그럼 다 끝난 거예요? 이게 전부에요?"

골목길이 이렇게 간단한 것이었냐는 듯 물었어.

"아니야, 제조원가를 구했으면 거기에 이윤을 더해야지. 본전만 받고 팔 수는 없잖아."
"그렇군요."

골목길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어.

"그럼 이익은 얼마나 남기는 게 좋을까요?"
"무리한 욕심은 버려야 해. 너무 큰 이익을 남기려 하면 소비자에게 부담이 돼. 소비자에게 부담을 주는 건 옳지 않아. 특히나 지금 마을 가족들은 형편이 다들 어렵잖아."
"그럼 이윤은 낮게 정하도록 하죠. 피자 한 개의 이익이 적은 대신 피자를 많이 팔면 되잖아요. 그러면 충분한 이익이 날 거예요."

"좋은 생각이야. 제품 한 개당 이익은 적지만 많은 제품을 팔아 이익을 얻는 박리다매(薄利多賣) 전략이 소비자에게 주는 부담도 적고, 우리 따뜻한 가게 입장에서도 마음 편하고 좋아."
"박리다매(薄利多賣) 방식으로 갈 경우, 꿀 피자를 많이 팔아야 하는데 자신 있으세요?"

꽃사슴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어.

"네. 물론입니다. 꿀 피자 시장이 블루오션(blue ocean)인데다, 우리 따뜻한 가게의 꿀 피자는 맛도 좋으니까요."

아빠 사슴이 자신 있다는 듯 씩씩하게 말했어.

"게다가 꿀 피자는 먹는 음식이라 매일 사게 되잖아요."

골목길도 문제없다는 표정으로 거들었어.

"꿀 피자는 스마트폰처럼 한 번 사면 두고두고 오래 쓰는 내구성이 있는 물건이 아니에요. 한 번 구매하면 한 번밖에 쓰지 못하는 일회성 제품이죠. 먹는 음식이니까요. 그러니까 소비자들은 자주 살 수밖에 없어요."

아빠 사슴이 웃으면서 말했어.

"그렇군요."

꽃사슴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어.

꽃사슴 선생님은 이제 안심이 됐어. 꿀 피자는 소비자들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소비에 따른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니까. 그래서 꿀 피자는 소비자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을 것이니까. 그 결과 꿀 피자는 따뜻한 가게를 지금의 어려움에서 건져내줄 것이니까. 숲속 마을 동물가족과 아랫마을 가족들을 지금의 어려움에서 건져내줄 것이니까.

꽃사슴 선생님은 이제 알았어.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배려하다보면 그 안에서 내가 살 길을 찾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수요자와 공급자가 서로를 배려하면 둘 다 모두 살 수 있다는 것을.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 행복해 진다는 것을, 그리고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바로 따뜻한 자본주의가 꿈꾸는 세상이라는 것을.

"상대방을 배려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군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불행해진 것은 서로를 배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꽃사슴 선생님과 아빠 사슴이 서로를 마주보며 말했어.

이야기가 길어졌나봐. 꽃사슴 선생님이 창밖을 보니 어느 덧 날이 저물고 있었어. 길모퉁이 쪽에서 어둠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어. 어둠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자 길가에 핀 민들레들은 앞 다퉈 잠자리로 몸을 숨겼어.

'서둘러야겠다.'

꽃사슴 선생님은 아기 민들레가 벌써 잠자리에 들었나 싶어 걱정이 되었어.

"저는 이만 가볼게요."

꽃사슴 선생님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어.

"조심히 가세요."

아빠 사슴과 골목길은 문밖까지 꽃사슴 선생님을 배웅했어.

꽃사슴 선생님을 배웅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온 골목길은 탁자위에 놓인 꿀 피자 조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어. 이 작은 꿀 피자 조각이 따뜻한 가게를 구하고, 또 숲속 마을 가족들과 아랫마을 가족들을 구할 거라 생각하니 무척이나 소중하게 느껴졌어. 그리고 그런 소중한 꿀 피자를 만들어낸 자신이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

'자만하면 안 돼. 이제 시작일 뿐이거든. 이제 완전경쟁시장으로 가는 첫 걸음을 내디딘 것뿐이야.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아 있다구. 하지만 난 모두 잘해낼 거야. 난 내 운명을 믿어. 나에게는 자신감 가득 반지가 있잖아.'

벅차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스스로를 타이르고 격려한 골목길은 탁자 위에 앉아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 하늘나라에 계시는 아버지에게 쓰는 편지야.

하늘나라에 계시는 아버님께 드리는 편지

이 편지를 받으실 아버님은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저는 오늘 기억속의 아버님께 편지를 씁니다.

올해 제 나이 쉰하나. 아버님께서 제가 봉숭아 학당 6학년 때 돌아가셨으니까 벌써 40여 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막내인 저를 유난히 아끼셨던 아버님은 건장한 체격에 훤칠한 미남이셨습니다.

아버님께서 하늘나라로 가시던 날, 큰 병을 앓으셨던 아버님은 마지막 숨을 거칠게 몰아쉬셨습니다. 아버님은 틀니가 빠져 잇몸이 다 드러난 채로 거친 숨을 반복하시면서 막내를 찾으셨습니다. 아버님은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까지도 막내의 손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셨습니다.

그로부터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 때의 막내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저의 막내는 봉숭아 학당 4학년입니다. 저는 막내에게 늘 다짐합니다.

'막내야, 아빠가 너의 곁에 오래오래 있어줄게. 그래서 너의 이야기도 많이 들어주고 같이 놀아주기도 할게.'

아버님.

지난 세월 동안 많이 그리웠습니다. 보고 싶을 때, 꼭 필요할 때, 옆에 계셔주시지 않는 아버님이 많이도 원망스러웠습니다. 커 오는 동안 아버님이 절실히 그리웠습니다. 뭐가 급해서 그리 빨리 가셨는지 참으로 야속했습니다.

아버님은 기분이 좋으실 때 제 궁둥이를 두들기곤 하셨습니다. 아버님 얼굴 앞으로 궁둥이를 들이 대는 게 그때는 그렇게 귀찮았는데, 아버님이 떠나가신 후 그 사랑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아버님의 그 사랑이 그리울 때면 그냥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버님.

저는 요즘 아빠노릇 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습니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데 생각대로 잘 안됩니다. 그래도 막내는 저를 좋아합니다. 저를 믿어줍니다. 힘없는 아빠를 믿어주는 막내가 참 고맙습니다.

비록 좋은 아빠는 아닐지라도 저는 막내 곁에 오래오래 있어주려고 합니다. 제가 커오는 동안 느꼈던 외로움과 어려움을 우리 막내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가진 것 없고 힘도 없지만, 막내 곁에 오래도록 있으면서 친구가 되어주려고 합니다. 우리 막내가 아빠를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할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막내를 '막둥아!'라고 부르려고 합니다. 그 옛날 아버님이 저에게 하셨던 것처럼.

한편, 골목길이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 그 시각.

꽃사슴 선생님은 길가 담벼락 아래에서 아기 민들레를 만나고 있었어. 꽃사슴 선생님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기 민들레 옆에 나란히 쭈그리고 앉았어. 그리고 자신의 손가방 위에 아기 민들레의 얼굴을 올려놓고는 손으로 턱을 괸 채 아기 민들레와 눈을 맞추었어.

"아기 민들레야, 뭐하고 있었어?"
"응, 숙제하고 있었어."
"어둠이 다가오는데 무섭지 않았어?"
"당연히 무서웠지. 세상에 어둠이 무섭지 않은 민들레는 없어. 하지만 어둠이 다가와도 숙제는 해야지. 무서워도 할 일은 해야 하잖아."
"그래, 맞는 말이야."

꽃사슴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어.

"그런데 이 늦은 시간에 웬일이야?"
"응, 너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왔어."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너 '따뜻한 자본주의'란 말 들어봤어?"
"따뜻한 자본주의? 글쎄... 처음 들어보는데? 그게 뭔데?"

아기 민들레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어. 꽃사슴 선생님은 따뜻한 자본주의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어.

"에이, 재미없다. 시시해. 별나라 어린 왕자님 얘기나 들려줘."

꽃사슴 선생님의 말을 다 듣고 난 아기 민들레가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말했어.

"나도 처음에는 지루하고 따분했는데, 생각할수록 따뜻한 자본주의가 재미있는 것이더라구."

꽃사슴 선생님이 민들레 쪽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말했어.

"지금도 이렇게 행복한데 왜 따뜻한 자본주의가 필요하다는 거야?"

아기 민들레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어.

"세상에는 행복하지 않은 가족들도 많아."
"내가 보기에는 모두 행복해 보이던데?"
"그건 너의 행복한 시선으로 그들을 보기 때문이야. 그들의 지친 시선으로 그들을 봐. 그러면 그들의 힘겨운 모습이 보일거야."

"일부러 불행한 사람들을 볼 필요는 없잖아. 행복한 사람들도 많은데."
"우리는 불행한 사람들을 봐야해.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친구가 없으니까. 그들에게는 손 내밀어 일으켜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일부러 불행한 모습을 볼 필요는 없잖아. 행복한 모습도 많은데."
"우리는 불행한 모습을 봐야해. 왜냐하면 그래야 문제를 알 수 있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모든 문제가 감춰져서 속에서 곪아 터질 테니까."

"일부러 불행을 기억할 필요는 없잖아. 행복한 때도 많았는데."
"우리는 불행을 기억해야 해. 불행을 기억하지 않으면 보다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될 테니까. 그러는 사이에 불행은 몰래몰래 늘어날 테니까."

덧붙이는 글 | 그 동안 '아빠가 들려주는 경제 동화'를 애독해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회로 2부를 마감합니다. 조만간 3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태그:#박리다매, #아빠의 마음, #막둥아, #제조원가 , #아버님께 드리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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