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4일 개봉한 연평해전과 소수의견

지난 6월 24일 개봉한 연평해전과 소수의견 ⓒ 로제타시네마, 하리마오픽쳐스


지난 4월 개봉해 1049만 관객을 기록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가장 인위적인 흥행으로 기록될 만한 영화다.

최대 1800개를 넘는 스크린과 1만 회가 넘는 상영 횟수 등 대부분의 극장들을 전세 내다시피 하며 스크린을 독과점 했으나 간신히 천만을 넘겼기 때문이다. 스크린 독과점이 아니었다면 천만 도달이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았다. 자연스런 천만이라기보다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천만 영화였던 셈이다.

<소수의견>에 대한 '다수의 홀대'

<연평해전>은 개봉 5일 만인 28일 처음으로 스크린 1000개를 돌파하며 1013개를 차지했다. 일각에선 지나친 밀어주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객관적 수치인 좌석점유율이나 관객 수가 특별히 급증한 것도 아닌데, 상영관이 1000개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일요일 스크린이 토요일보다 늘어난 것도 이례적이다. 시장 상황보다는 다른 외적 요인에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생기는 이유다. 군인들의 단체관람도 계속되고 있다.

<소수의견>은 최대 398개의 스크린에 1500회 정도의 상영 횟수를 기록하며 상영조건에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홀대를 받고 있다. 개봉 전부터 상영관 수가 적게 잡힐 것 같다는 우려도 있었다. 평단의 호평을 얻고 있고 재미까지 곁들였다는 평가를 받지만, 개봉 첫 주 일부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는 오전과 심야 시간에 배정돼 있을 뿐 오후나 저녁 시간대 상영이 없기도 했다.

한 멀티플렉스 극장 관계자는 <연평해전> 우대와 <소수의견> 홀대에 대해 "우리야 위에서 배정하는 대로 상영할 수밖에 없는데, 뭔가 눈치를 보는 인상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최광희 영화평론가는 <뉴스타파> 블로그에 올린 칼럼에서 "대기업 계열의 멀티플렉스들이 <소수의견>에 스크린을 배정하기를 꺼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영화계 안팎에서는 이 역시 '몸 사리기'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 평론가는 영화가 개봉하기 직전 한 극장주가 보내온 메시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대기업) 직영점들이야 눈치 보지만 위탁점(멀티플렉스 체인에게 극장 운영을 위탁한 지역 극장)들은 눈치 보지 말고 시원하게 자기 상권 관객들에게 개운함을 줘야 하는데 눈치를 보니..."라는 내용이었다.

한국영화에 권력과 자본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요즘 흥행은 관객이 좌우하기보다는 권력과 자본이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특정 작품이 스크린 독과점이나 스크린 밀어주기 형태로 통해 도움을 받는가하면 반대로 적은 상영 회차로 인해 흥행이 가로막히는 일이 생겨나고 있다. 대기업이 영화산업을 수직계열화 하면서 '보이지 않는 손'의 힘이 그만큼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 '입맛'에 맞는 영화만 튼다? 의혹은 있지만...

 상영차별 논란을 빚은 <또 하나의 약속>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상영차별 논란을 빚은 <또 하나의 약속>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 삼거리픽쳐스, 에이트볼픽쳐스


사실 이런 일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비슷한 일이 자주 발생하면서 정치·사회적으로 예민한 소재의 영화들은 제작보다는 상영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커지고 있다. 지난 2013년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 이틀만에 갑자기 영화가 내려졌던 <천안함 프로젝트>가 시작이었다면 이후 비슷한 상황들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해 개봉했던 삼성반도체 피해자들을 소재로 한 <또 하나의 약속>은 예매율과 좌석점유율 등 객관적인 수치가 높게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극장들로부터 노골적인 차별을 받았던 경우다. 같은 내용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탐욕의 제국>은 한 대기업 멀티플렉스가 시사회 대관을 거부하기도 했다.

<또 하나의 약속>에 참여했던 영화 관계자는 "당시 멀티플렉스 상영관끼리 서로 연락해 스크린 수 축소 배정을 협의하는 과정을 확인했었다"면서 이후 공정거래위원회 제소와 영진위 중재 등을 거쳐 상영관들이 스크린을 추가로 열어주기로 하면서 더 이상 문제제기를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영화계에서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가 극장에 지불하는 VPF(디지털 영사기 사용료) 문제 등으로 대기업 극장들과 소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1심에서 패소하는 등 녹록치가 않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 상영관들이 보이지 않게 보복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생겨나고 있다.

지난 연말 개봉해 좋은 평가에도 상영 조건이 열악해 논란을 일으켰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대표적인 경우였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배급사는 제협이 세운 리틀빅픽쳐스였다. 리틀빅픽쳐스의 한 관계자는 "설마 그렇기야 하겠냐고 생각하지만 그런 전혀 의심이 안 드는 것은 아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에 대해 대기업 상영관들은 "시기적 환경이나 상영관의 여건, 프로그램 선정 기준 등"을 들며 제기되는 의혹들에 대해 대부분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

무기력한 영화계 "10년 째 같은 이야기"

 지난 5월 3일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중에 개최된 한국영화 배급시장 독과점 실태와 개선방안 관련 컨퍼런스

지난 5월 3일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중에 개최된 한국영화 배급시장 독과점 실태와 개선방안 관련 컨퍼런스 ⓒ 전주국제영화제


한국 영화계의 무기력함도 권력과 자본의 영향력을 확장시키고 있는 한 원인이다. 대표적인 스크린독과점 문제는 10년째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음에도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 자본이 수직계열화를 활용해 흥행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은 사안이지만 사실상 해결책이 없는 것이다.

2006년 8월 5일 647개 스크린을 차지한 <괴물>로 시작된 독과점 논란은 다음해 <트랜스포머>가 863개로 기록을 깨더니 이어지는 <트랜스포머> 시리즈들이 2009년 1154개, 2011년 1409개, 2014년 1602개로 스크린 수를 더 늘렸다. 비판 여론이 강하게 형성됐지만 아랑곳 않는 다는 듯 성수기에는 늘 되풀이 됐다.

지난해는 한국영화 <명량>이 1587개, <군도:민란의 시대>가 1394개를 차지하며 수입 영화들과 경쟁하는 양상을 나타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이를 비웃듯 1843개로 정점을 찍었는데, 앞으로 2000개가 넘는 스크린을 장악하는 영화도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제 스크린 1000개 이상 장악은 대수롭지 않은 시대가 될 만큼 스크린 독과점은 만성화되고 있다. 2006년 이후 스크린 독과점이 3배 가까이 늘어났음에도 속수무책이다.

해법을 놓고 제작 투자와 상영, 배급, 평론 진영들이 각각 생각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게 무기력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이다. 큰 틀에서 법적 규제와 자율해결이 맞서고 있지만 합의점이 없다보니 늘 각자의 주장을 강조하는 선에서 끝날 뿐이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가 논의 테이블을 구성해 해법을 찾아보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지만 별 관심을 받지 못하면서 유야무야됐다. 

지난 5월 전주영화제 기간 중에도 '한국영화 배급시장 독과점 실태와 개선방안'을 주제로 토론이 열렸지만 역시나 늘 나오던 주장들만 되풀이 됐다. 영화평론가협회장를 역임한 동국대 민병록 교수는 "10년 간 같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해결방안이나 대안이 나오고 있지 않다"며 답답해했다. 토론회를 지켜본 국내 유명 제작자 역시 "스크린독과점 문제는 사실상 해법이 없다"며 "나도 할 말이 없기에 아무 소리 안 하고 토론자들 이야기만 경청했던 것"이라고 체념하듯 말했다. 

한 제작배급사 관계자는 "모두 다 독과점은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막상 배급시기가 되면 감독이나 제작자들 모두 스크린에 대한 욕심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없어 해결이 어려운 것 같다"고 진단했다. 강제적인 입법을 통해 해결해야 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으나, 역시나 구체적인 실행 방안 마련은 진척되지 못하면서 겉도는 모습이다. 

○ 편집ㅣ이선필 기자


스크린독과점 연평해전 소수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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