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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 거부권 행사 이후 청와대와 친박근혜계 의원들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3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 '버티기' 들어간 유승민 국회법 거부권 행사 이후 청와대와 친박근혜계 의원들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3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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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친박(친박근혜)의 '유승민 찍어내기'가 소강상태에 빠졌다.

앞서 이들은 지난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발언 이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사퇴시키기 위해 총공세를 펼쳤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처럼 입법취지를 위배한 정부시행령에 대한 수정·변경을 요청할 수 있게 한 국회법 개정안을 거부하면서 사실상 유 원내대표에 대한 '불신임'을 표했다. '심판론'까지 거론한 날선 '박심(朴心)'에 친박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라며 유 원내대표를 흔들었다.

청와대와 친박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유 원내대표가 지난 29일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위원 전원의 사퇴 주장에도 "잘 생각해보겠다"라며 즉각적인 사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마감시한'조차 정하지 않은 답변이었다. 오히려 유 원내대표는 30일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자신의 '명예퇴진설'에 대해 "그런 말한 적 없다"라고 밝혔다. 즉, '버티기'다.

그간 거친 공세를 퍼부었던 청와대와 친박 입장에서는 답답한 상황이 됐다. 무엇보다 당장 그를 꺾을 '카드'가 그리 많지 않다. 

'유승민 버티기' 진압할 수단은 여론전 뿐

사실 당 지도부 차원에서 유 원내대표를 자진사퇴시킨다는 계획이 무산됐을 때부터 청와대와 친박의 구상은 헝클어진 셈이나 다름없다.

유 원내대표는 지난 25일 박 대통령의 공개 비난 후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재신임'을 얻었다. 친박 측이 이번 사태에 대한 '세 대결'에서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또 유 원내대표가 다시 소집한 의원총회에서도 재신임을 얻게 된다면 '사퇴 공세'를 펼쳤던 청와대와 친박 입장에서는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친박 측도 이 같은 시나리오를 우려하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 의원들의 서명을 받아 의총 소집을 준비했던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 출연, "이 정도의 사태라면 표 대결보다는 유 원내대표가 스스로 결자해지 차원에서 결단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며 "또한 지금까지 표 대결을 통해서 재신임을 물은 사례도 없다"라고 주장했다.

서청원 최고위원도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자칫 그게(의총 소집) 또 엄청난 다른 파장으로 오는 것을 의원들도 원치 않을 것"이라며 "최고위원들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 문제는 어제 (안 열기로) 결론 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앞서 자신들이 의총 소집 요건을 갖춘 것이 사실 유 원내대표의 자진사퇴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이는 당내 여론 상황이 결코 청와대와 친박 쪽에 유리하지 않다는 것도 방증한다. 새누리당 재선 의원 20명은 전날(29일) 최고위원회의 직전 성명서를 내고 "최고위원회 논의과정에서 우리가 키워왔던 의회민주주의와 당내 민주주의는 결코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라며 '유승민 구하기'에 나섰다. 새누리당 원내부대표단 의원 14명 역시 유 원내대표에게 '사퇴 불가'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비박(비박근혜) 역시 본격적으로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에 출연, "(당청 관계는) 일방적으로 한쪽이 한쪽을 지배하고 한쪽이 (다른 쪽에) 종속되는 관계가 아니다"라며 "이 사람(유 원내대표)이 혼자 사퇴한다고 그 이후 당청관계가 원만히 진행된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서청원·이정현 최고위원 등이 '최고위원직 집단사퇴'라는 초강수를 둘 수도 없는 형편이다. 최고위원 3명 이상이 동반 사퇴하면서 현 지도부를 와해시키는 방법이긴 하나, 당헌·당규상 대표최고위원 궐위 시 즉각 구성될 비상대책위원장은 바로 당시 원내대표다. 오히려 끌어내리려 했던 유 원내대표에게 당의 전권을 맡기는 '역설'이 발생하는 셈이다.

청와대의 '무시' 전략까지... 국회법 개정안 재의안 부결 이후 사퇴?

결국 청와대와 친박은 유 원내대표의 '선택'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또 그를 위해 유 원내대표를 당청관계의 갈등원인으로 지목하면서 계속 흔드는 '여론전'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청와대가 더 이상 유 원내대표와 함께 일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점도 이 같은 여론전을 든든히 뒷받침하고 있다.

실제로 유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의 메르스·가뭄 추가경정예산안 심의 및 신임 법무부장관 인사청문회 등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7월 1일 예정된 추경 편성 관련 당정협의를 참석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러나 이는 반나절 만에 뒤집혔다. 원유철 정책위의장이 유 원내대표 대신 회의를 주재하기로 한 것이다. 청와대가 유 원내대표를 '비토'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즉각 나왔다.

물론, 유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불편한 당청관계의 반영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게 아니다"라며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보고하기로 했다"라고 답했다. 실무적 차원의 '교통정리'였을 뿐, 어떤 정치적 함의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를 100% 신뢰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동안 '사퇴공세'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했던 김무성 당대표마저 이날 "유 원내대표가 명예회복을 하면서 본인 스스로 결단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라며 유 원내대표의 자진사퇴 쪽으로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결국, 청와대와 친박의 공세가 계속될수록 유 원내대표는 고립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유 원내대표가 7월 6일 본회의에 상정될 국회법 개정안 재의안 부결 직후 사퇴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인 국회법 개정안 문제를 스스로 매듭짓는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수혜' 입었던 당 혁신 포기한 꼴... "대통령 심기 따질 때 아냐"

2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한나라당 비상대책위 회의에 박근혜 위원장과 김종인, 이상돈 위원이 참석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비대위 활동 1주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많은 변화를 만들고 계신 비대위원께 감사드린다"며 "초심을 잃지 말고 앞으로도 쇄신 작업에 박차를 가해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2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한나라당 비상대책위 회의에 박근혜 위원장과 김종인, 이상돈 위원이 참석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비대위 활동 1주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많은 변화를 만들고 계신 비대위원께 감사드린다"며 "초심을 잃지 말고 앞으로도 쇄신 작업에 박차를 가해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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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의 의도가 성공하더라도 이는 9개월 남짓 남은 총선을 앞둔 정권으로서는 소탐대실에 가깝다. 새누리당은 그동안 내부 경쟁을 통해 선거에 승리할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해왔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수혜자가 바로 박 대통령이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과 차떼기 후폭풍에 직면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변화를 시도했다. 남경필·원희룡·정병국 당시 소장파 의원들은 최병렬 당시 당대표의 퇴진을 관철시키면서 비주류였던 박 대통령을 당대표로 밀었다. 이 같은 당권 교체는 이후 '천막당사' 행보와 맞물리면서 침몰 직전이던 한나라당을 '구조'해냈다.

2011년 구성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도 같은 과정이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중앙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 등 악재로 허덕이던 홍준표 지도부를 유승민·원희룡·남경필 당시 최고위원이 동반사퇴하며 와해시켰다. 이후 박 대통령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조기 등판'했고 김종인·이상돈·이준석 등 외부인사들을 영입해 총선 승리를 견인해냈다.

그런데 현 상황은 영 거꾸로 가는 모양새다. '청와대 거수기'란 오명에서 벗어나 혁신을 선전해야 할 여당이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유권자 입장에서 좋은 평가를 얻기 힘든 셈이다. 오히려 박 대통령이 질타했던 '구태정치'로 지목될 가능성이 더 크다.

실제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앤리서치'의 배종찬 본부장은 이날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에 출연, "대통령과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일견 대통령이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 원내대표에 대한 동정론이 증가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지난 27, 28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에게 자동응답 방식으로 조사한 '조원씨앤아이'의 여론조사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 '유 원내대표 사퇴하지 마라'는 여론이 10명 중 6명에 가까운 58.5%로 나타났다"라며 이 같이 말했다. 

특히 그는 "이 결과를 분석하면 대통령의 지지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TK(대구·경북), PK(부산·경남) 지역에서도 대통령이 집권여당의 원내대표와 지나친 대립각을 세우는 것에 대해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라며 여권 지지층의 분열 가능성도 시사했다.

즉, 청와대와 친박이 '유승민 찍어내기'를 관철시키더라도 당장 차기 총선에서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이와 관련,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과 한 인터뷰에서 "우리 당이 압도적으로 재신임했다가 대통령 한 마디로 결론을 바꾼다면 이 당은 아마 국민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되고 민심이 떠나 총선도 패배할 것"이라며 "그런 걸 봐야지 대통령의 심기, 지도부의 안위 이런 걸 따질 때가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국회법 개정안, #박근혜, #유승민, #친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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