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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28일 서울광장을 출발해 을지로 일대에서 축제 참가자들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28일 서울광장을 출발해 을지로 일대에서 축제 참가자들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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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26일, 미국이 무지개로 물들었다. 이날 연방대법원은 5대 4로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주(州)법과 다른 주에서 이뤄진 동성결혼을 승인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선고 직후 기자들은 속보를 쓰기 위해 눈썹 휘날리게 달렸고, 성소수자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백악관도 성소수자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갯빛 조명을 비추며 대법원 판결을 반겼다.

미국의 변화는 한국도 흥분시켰다. 국내 트위터·페이스북 사용자들은 저마다 프로필 사진에 무지개색을 넣어 동성결혼 합법화를 지지한다는 뜻을 표시했다. 2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퍼레이드에선 그 환호가 정점에 달했다. 하지만 한국의 성소수자들과 그 지지자들이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이들이 가야할 길은 아직 멀다.

미국 '동성결혼 합헌' 환호했지만... 갈 길 먼 한국

한국 법원은 2000년대 중반에서야 성소수자 문제를 두고 처음으로 의미 있는 판단을 내놨다. 2006년 6월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성전환자 A씨가 호적상 성별을 여자에서 남자로 바꿔달라며 낸 호적정정 신청 재항고 사건에서 성별 변경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원심을 깨고 사건을 청주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사법부가 처음으로 "성전환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며 행복 추구권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고, 이 권리들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고 선언한 사건이었다(☞ 대법원 판결 바로가기).

그런데 당시 대법원은 성별 정정 허가의 조건으로 '성기 성형'을 내세웠다. 또 그 성에 맞춘 의복, 두발 등 외관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법 제정을 위한 공동연대'는 대법원 판결 자체를 환영하지만, 이 대목만큼은 수술 자체가 위험한 데다 수천만 원이 들어가는 탓에 성기 성형을 하기 어려운 성전환자들의 현실을 고려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5년 뒤 대법원은 한 발짝 더 뒤로 물러났다. 2011년 9월 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성전환자가 혼인관계를 유지하고 있거나 미성년자 자녀가 있다면 성별정정을 허가할 수 없다고 했다. 2006년 전원합의체에서 '달라진 성을 인정하더라도 다른 사람들과의 신분관계에 중대한 변동을 초래하지 말아야 한다'고 정한 만큼, 혼인 중이거나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의 성별을 정정하면 이들의 법적지위나 사회적 인식이 곤란해진다는 이유였다(☞ 대법원 판결 바로가기).

반면 대법원보다 한 발짝 나아간 하급심 판결도 있다. 2013년 3월 15일 서울서부지방법원(재판장 강영호 법원장)은 여성에서 남성이 되기 위해 유방과 자궁절제수술 등은 했지만 성기 성형수술을 받지 못한 B씨 등 성전환자 5명의 성별 정정 신청을 받아들였다. 7년 전 대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 "성전환자들에게 성기 성형수술의 막대한 비용과 위험성까지 홀로 감수할 것을 요구한다"던 시민단체들의 지적을 법원이 마침내 받아들인 셈이었다.

그나마 진전을 이룬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문제와 달리 동성결혼은 이제 걸음마를 떼는 수준이다.

동성부부인 김조광수 청년필름 대표와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씨와 변호인단이 21일 오전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동성부부 혼인신고 불수리 불복 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변호인단은 "편견과 차별이 가해지는 성소수자에 대한 보호는 법원의 책무"라며 "법원은 혼인의 예식을 올렸고, 혼인 의사의 합치가 있는 이들 부부의 혼인신고를 수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는 2013년 9월 7일 청계광장에서 양가 가족과 하객들이 모인 가운데 공개결혼식을 치뤘고, 12월 10일 서대문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했으나, 12월 13일 서대문구청장은 불수리처분을 내렸다.
▲ '혼인신고 불수리' 착잡한 동성부부 동성부부인 김조광수 청년필름 대표와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씨와 변호인단이 21일 오전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동성부부 혼인신고 불수리 불복 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변호인단은 "편견과 차별이 가해지는 성소수자에 대한 보호는 법원의 책무"라며 "법원은 혼인의 예식을 올렸고, 혼인 의사의 합치가 있는 이들 부부의 혼인신고를 수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는 2013년 9월 7일 청계광장에서 양가 가족과 하객들이 모인 가운데 공개결혼식을 치뤘고, 12월 10일 서대문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했으나, 12월 13일 서대문구청장은 불수리처분을 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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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발을 내딛은 주인공은 영화감독 김조광수씨와 영화사 레인보우팩토리 대표 김승환씨 부부다. 부부는 2013년 9월 7일 청계광장에서 공개결혼식을 올렸고, 12월 10일 서대문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서대문구청장은 민법상 동성혼은 혼인이 아니므로 두 사람은 혼인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며 그들의 혼인신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는 여기에 불복, 지난해 5월 21일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민법이 정한 혼인의 조건은 ▲ 만 18세 이상에 ▲ 중혼이 아닌 경우일 뿐이며 자신들의 혼인신고서에는 두 사람과 증인 2명의 서명까지 들어갔으므로 법적 근거를 갖췄다고 반박했다. 또 헌법 36조 1항이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정한 것은 동성혼을 배제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했다. '혼인과 가족생활'이란 문구를 '양성'에만 적용한다면 부자 또는 모녀로만 이뤄진 가족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죽기 전에는 인정받지 못할 것 같아서..."

두 사람의 재판은 7월 6일 첫 심문기일이 열린다. 김조광수 감독은 지난 29일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로 우리 부부의 결혼소송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다"며 "대한민국 법원도 헌법에 명시된 평등권을 보장하는 판결을 해주길 바란다"고 썼다. 하지만 "내가 죽기 전에는 (동성결혼 합법화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며 심란한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이 소송을 대리하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류민희 변호사도 30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사법부에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최원식 의원이 각각 발의한 차별금지법을 보수기독교단체 반대 탓에 철회한 일을 언급하며 "입법부가 소수자 인권을 제대로 보장 못 하는데, 사법부의 의무가 소수자 인권 보호 아니냐"고 했다. 이어 "법원은 문헌에 너무 얽매이거나 선례를 좁게 해석하기보다는 헌법의 평등권이 현재 어떤 의미인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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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성소수자, #동성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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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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