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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소연(가명)이가 자꾸 뒷담 까는 것 같아요."

재민(가명)이가 나에게 소연이가 자꾸 뒷담화를 하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아이들은 '뒷담화 한다'는 말보다 '뒷담 깐다'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평소에 친하게 지냈던 재민이와 소연이라 이게 무슨 상황인지 참 난감했다. 학교가 끝난 후에 소연이를 조용히 불러 세웠다.

"소연아, 재민이랑 요즘 무슨 일 있어? 선생님이 보기엔 좀 멀어진 것 같아서."
"그냥... 음... 재민이가 싫어요."
"왜? 둘이 친하게 지냈었잖아."
"모르겠어요. 그냥 싫어졌어요."

소연이는 재민이가 싫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뚜렷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싸늘한 말투 속에서 소연이가 재민이를 싫어하고 있다는 것은 금방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일단 알겠다고 하고서는 소연이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나름대로 정리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난 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머릿속이 하얗다. 지난해 5학년 체육 전담을 맡으면서도 많이 경험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직접 이 문제를 마주한 지금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아이들의 생활을 '직접' 지도해야하는 담임으로서 느끼는 이 문제에 대한 부담감이 컸기 때문이었다. 

"뒷담화 하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기분이 좋아요"

사실, 초등학교 고학년 여자 아이들은 자신의 친구와 그렇지 않은 친구에 대한 경계를 설정하고 자신의 무리를 만들어 간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무리들이 서로 헐뜯고 해한다면 그때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더 이상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 심각한 갈등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 반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이런 문제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듯했다. 분명, 소연이와 재민이 둘만의 문제도 아닐 것이라.

내가 아이들에게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를 싫어하는 감정까지 강요할 수는 없지만, 서로를 상처 내는 일은 나서서 막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우선적으로, 여자 아이들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뒷담화에 대한 생각을 모두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갈등의 시작은 '뒷담화'였기 때문이다.

"너희들에게 친구란 어떤 의미이니?"
"우정을 나누는 것이요.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요. 행복을 주는 사람이요."
"같이 놀아주는 사람이요. 곁에 있는 사람이요."

26명이 가진 친구의 의미를 하나씩 모두 들었다. 모두 긍정적인 이야기뿐이었다. 그래, 친구란 이렇게 긍정적인 것이야. 그럼, 친구를 상대로 하는 뒷담화는 어떤 느낌이야? 여기저기 불만 가득한 입모양에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그럼, 왜 그렇게 긍정적인 힘을 주는 친구들끼리 부정적인 느낌으로 가득한 뒷담화를 하게 되는 걸까? 뒷담화를 하면 뭐가 좋은데?"
"스트레스가 풀려요. 기분이 좋아져요."
"뒷담화 하는 우리끼리 더 친해지는 것 같아요."
"어차피 그 친구도 뒷담화 할 테니까 쌤쌤이에요."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들이었지만,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뒷담화라는 것을 통해 비뚤어진 행복을 찾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래, 뒷담화를 하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뒷담화를 하는 사람들끼리는 더 친해지기도 하지. 그리고 남을 뒷담화 하면서 상대적으로 나의 자신감은 더 올라가기도 해. 이렇게 좋은 뒷담화, 정말 좋기만 한 걸까? 여러분들이 말한 뒷담화의 장점에는 숨겨진 말이 있어. 어쩌면, 그것이 가장 중요한 말인지도 몰라. 숨겨진 말을 찾아보자."

아이들은 '스트레스가 풀린다', '뒷담화를 하는 친구들끼리 더 친해진다', '뒷담화를 하면서 자신감이 올라간다'라는 세 가지 장점에 숨겨진 말을 찾기 시작했다. 어떤 숨겨진 말들을 찾아냈을까?

- (아주 잠깐) 스트레스가 풀린다.
- 스트레스가 풀린다. (그리고 또 다른 스트레스가 쌓인다.)
-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착각한다).

- 뒷담화를 하는 친구들끼리 더 친해진다. (그리고 한 명은 왕따가 된다.)
- 뒷담화를 하는 친구들끼리 더 친해진다. (나도 언젠간 뒷담화를 당한다.)
- 뒷담화를 하는 친구들끼리 더 친해진다. (하지만, 나머지랑은 멀어진다.)

- 뒷담화를 하면서 자신감이 (아주 잠깐) 올라간다. (그리고 다시 떨어진다.)
- 뒷담화를 하면서 자신감이 올라간다. (그러나 거짓말이다.)
- 뒷담화를 하면서 자신감이 올라간다. (잘난 척하는 거니까 내가 뒷담화 당한다.)

아직은 희망이 있어 보였다. 뒷담화가 가진 수많은 문제들을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결국 뒷담화는 아무런 해결책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뒷담화의 장점 속에 숨겨진 가장 중요한 말들을 아이들은 쉽게 찾아내고 있었다.

"누군가를 검지로 손가락질 한다면, 나머지 세 손가락은 나를 향할 수밖에 없답니다. 부디, 친구의 단점을 찾기 보다는 장점을 찾아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6반 친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날, 음악시간. 우리 반에서 음악시간마다 진행하는 '6반 음악 라디오'에 익명의 사연이 들어왔다.

"뒷담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원래 뒤따마인 줄 알았는데, 뒷담화였다. 친구들 뒷담화한 적이 많다. 그런데 한 번도 친구들 기분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냥 내 스트레스 풀리는 것이 좋았다. 이제라도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다. 신청곡은 이제라도 친구의 마음을 되돌리고 싶다는 의미에서 이승기의 되돌리다!"

내 책상 위에 반이 접힌 노트 한 장짜리의 이 고백에서 나는 뿌듯함을 느꼈다. 익명이었지만, 나는 이 고백이 소연이의 것이라는 것도 글씨를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소연이와 재민이 사이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흐르고 있는 중이다. 모든 것을 한 번에 되돌릴 수는 결코 없지만, 천천히라도 되돌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아름다운 마음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이지는 않을까?

덧붙이는 글 | 2015년 3월 2일부터 시작된 신규 교사의 생존기를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태그:#초등학교,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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