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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아직도 통화 중? 아, 어떡해 우리 못 가겠다…."

2001년 어느 날.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공중전화에 매달렸다. 우리 뒤로 누군가 줄을 서도 본체만체. 초등학교의 실세, '6학년'이라는 막강한 지위를 이용해 공중전화를 사유화했으나 결과는 실패였다. 쉬는 시간 10분 내내 이어졌던 통화 중 소리는 내가 god 첫 단독콘서트라는 역사적 현장에 있을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일깨워줬다.

그래도 전화 예매 실패는 양호한 편이었다. 적어도 판매처 은행 앞에서 덜덜 떨며 밤을 새우는 일은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2세대 아이돌 팬으로서 내가 겪지 못했던 1세대 팬들의 티켓팅은 육체적인 피로까지 가중된 험난한 일이었다.

본격적으로 한국 사회에 복고 열풍을 불러일으킨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이를 완벽히 재현해낸 바 있다. H.O.T. 열성팬, 일명 '빠순이' 여주인공 성시원은 제일은행 앞에서 남자친구들과 담요까지 동원하며 콘서트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선다. 드라마는 예매 대기줄을 전두 지휘하는 팬클럽 회장의 모습까지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 큰 공감을 샀다.

어찌 됐든 콘서트 표 전화 예매는 직접예매에서 진화된 형태의 티켓팅 방법이었던 셈이다. 비록 인터넷이 지금처럼 보급되지 않아 텔레비전에서 콘서트 광고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전화번호를 받아적어야 했지만.

'21세기 티켓팅 전략'을 공개합니다

좋아하는 대상이 계속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 티켓팅은 '빠순이'가 안고 가야 하는 숙명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대상이 계속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 티켓팅은 '빠순이'가 안고 가야 하는 숙명이기도 하다.
ⓒ fil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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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1세기 티켓팅은 20세기 티켓팅과 많이 달라졌다. 이젠 온라인 예매만 가능하다. 수능 직후의 일이다. 고등학교 1학년 당시 god의 잠정적 은퇴선언과 동시에 '빠순이' 은퇴선언을 했던 나는 '빠순이' 그 특유의 DNA를 버리지 못하고, 다시 동방신기 팬미팅 티켓팅에 도전했다.

사실 팬미팅 티켓팅이 뭐 대수인가 싶었다. 팬클럽에게만 주어지는 기회인 데다가, '고작 팬미팅'이라며 안일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1년 이후엔 예매 실패 확률이 낮을 수밖에 없던 god의 100회 콘서트만 접했던 터라 티켓팅의 위력을 체감하지 못했다. 아무 생각 없이 다른 볼일을 보다가 정각이 된 것을 보고서야 로그인을 시도했다.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라는 메시지만 몇 번째…, 초조함과 불안감이 엄습했다. 7년 전의 통화 중 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넘어가지지 않는 페이지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겨우 좌석을 클릭…. 어김없이 그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었다. 다행히 나보다 빨리 '21세기 팬질'에 익숙해졌던 친구의 도움으로 팬미팅은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 창이 멈춰버리고 눈앞에서 표가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 나니 '티켓팅 트라우마'까지 생겼다.

21세기 티켓팅의 특징은 콘서트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향력이 큰 팬덤을 보유한 가수들이 여러 분야에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가수의 배우 전향이 가장 파격적인 행보였고, 그룹 내 멤버의 개인 활동이 금기시됐다.

하지만 이제는 그룹 내의 개인 활동이 두드러져 개인 팬미팅을 열거나 일부는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한다. 팬들은 그 다양한 행보에 맞춰 티켓팅을 해야 한다. 가수들의 활동범위 확대가 다른 분야 팬덤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행여 아이돌이 뮤지컬에 원캐스팅 되는 경우, 티켓팅 비무장지대에 있던 뮤지컬 팬들도 티켓팅 전쟁에 강제로 소환된다.

좋아하는 대상이 계속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 티켓팅은 '빠순이'가 안고 가야 하는 숙명이기도 하다. 그러니 전쟁 같은 상황에 알아서 적응할 수밖에 없다. 나름의 매뉴얼을 만들게 된다.

우선 이전 티켓팅 경험과 대학교 수강신청이라는 부수적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성공률이 높은 PC방을 선정해야 한다. 그리고 '작전' 당일, 티켓 오픈 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하는 게 중요하다. 시뮬레이션을 시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착하자마자 마우스 그립감을 확인하고 예매사이트에 접속한다. 티켓예매는 대개 옥션, 인터파크, 지마켓과 같은 오픈마켓에서 이뤄진다. 본인에게 익숙한 사이트를 사전에 정하는 것이 좋지만, 페이지 접속이 불가능할 것을 대비해 예매가 가능한 모든 사이트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미리 체크해야 한다.

액티브 엑스·결제모듈 선 설치... 핵심은 여기에 있다

'네 이놈, 액티브 엑스'... 이 녀석부터 처리하면 티켓 선점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네 이놈, 액티브 엑스'... 이 녀석부터 처리하면 티켓 선점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 fil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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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진짜 시뮬레이션은 아이디 체크 이후에 시작된다. 당장 예매 가능한 공연을 미리 무통장 입금으로 예매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실전 예매의 원활함을 위해서다. 날짜 선정과 시간 선정, 좌석 선택, 매수 확인, 주민번호 뒷자리 입력, 각종 동의버튼 체크, 결제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좌석의 분포도와 위치를 파악하는 것과 결제에 필요한 액티브 엑스(Active X)나 결제모듈을 미리 설치하는 것이다. 생각해둔 좌석이 있어야만 시간 낭비를 덜 할 수 있다. 결제에 막힘이 없어야 예매 초기 단계로 되돌아가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지피지기여도 백전백패일 수 있는 게 티켓팅이다. 이용자 폭주로 예매 페이지가 열리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내 눈엔 안 보이는데, 누군가의 눈에만 예매 페이지가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 서버가 진정될 즈음 예매를 시도하면 웬만한 좌석은 매진이다. 행여 운이 좋게 처음부터 페이지가 열려도 안심할 수 없다. 누르는 좌석마다 누군가 결제 중이라는 메시지가 뜬다면 그 티켓팅은 실패다. 이미 내가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자 지체하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애초 마음을 비우고 처음부터 등급이 낮은 좌석을 노렸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티켓팅은 고도의 심리싸움이다.

물론 패자부활전도 있다. 예매 성공자들이 무통장입금의 시한을 지키지 않아 표가 풀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제2차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1차 때보다 상대적으로 치열함을 덜하지만, 취소표를 노리는 이들은 여전히 많기 때문에 경쟁률은 꽤 높다.

남들이 잘 접속하지 않는 새벽 시간대마다 좌석을 비정기적으로 확인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취소표를 건지지 못했다면 각종 중고거래가 오가는 커뮤니티 페이지나 게시판을 이용해볼 수도 있다. 다만 프리미엄은 불법이기 때문에 꼭 그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페이지나 게시판에 상주한다면 운 좋게 당일 날에도 표를 구할 수 있다.

"빠순이가 어때서?"

<응답하라 1997>의 한 장면.
 <응답하라 1997>의 한 장면.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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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보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사실 어떻게든 공연은 볼 수 있다. 티켓팅이 유일한 수단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티켓팅 성공은 좋아함의 깊이를 드러낼 수 있는 척도이자, 열정을 보여주는 지표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상당하다.

때론 점점 치열해져 가는 경쟁에서 살아남았다는 희열을 주고, 진정한 팬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성공한 자는 중고표 조차 구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과 불확실성에 매몰될 필요 없이 공연을 보기 위한 준비를 할 수도 있다. 굳이 불필요한 감정낭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최근엔 티켓팅을 위한 게임까지 생겼다. 빠르게 클릭해 모니터 화면에 뜬 도형을 지워나가는 간단한 게임이다. 빠른 클릭은 티켓팅의 기본적 소양이기 때문에 연습이 필요할 법도 하다. 이렇게 공연 하나에 울고 웃으며 매달리고, 실생활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단순한 게임에 몰두하는 이들을 혹자는 한심하게 쳐다볼 수 있고, 맹목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이처럼 '빠순이'의 행위를 비생산적인 일로 치부하는 이들에게 <응답하라 1997> 여주인공 성시원은 시원하게 대답한다.

"빠순이가 어때서? 얼마나 건전한데. 계산하지 않고. 빠순이의 기본은 열정이야. 이걸로 사회에 나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아나?"

성시원은 '빠순이'의 사회적 순기능을 역설했다. '빠순이'의 열정과 적극성이 삶의 동기부여가 되고 이는 결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거다. 티켓팅을 향한 집념이 개인 혹은 집단의 목표를 위해 긍정적으로 발현될 수도 있는 일이다.

은행 앞에서 기다리던 팬이나 전화기를 붙잡던 팬 그리고 마우스로 총알 장전을 하는 팬의 열정의 크기는 같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을 표현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나 그 의욕만큼은 꺾이지 않는다. 뜻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날 때도 있지만 쟁취했을 경우 기쁨이 더 큰 '빠순이'의 티켓팅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고 있다. 이 맛에 자꾸 티켓팅에 도전하는지도 모른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D-day를 위해 '빠순이'는 오늘을 산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티켓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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