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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휴 화백이 지난 24일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 포구에서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 최 화백은 청각장애를 겪고 있어 마음의 귀로 듣는다고 했다.
 최주휴 화백이 지난 24일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 포구에서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 최 화백은 청각장애를 겪고 있어 마음의 귀로 듣는다고 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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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이는 바다 물결하고 이야기합니다. 갯바위에 부딪히는 파도를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하얀 구름이나 지나가는 배를 보며 상념에 젖기도 해요.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꿈과 희망을 떠올려보기도 해요."

고향에서 자연을 벗삼아 지내며 섬과 바다 풍광을 화폭에 담고 있는 최주휴(75) 화백의 말이다. 청각장애를 겪고 있는 최 화백은 나로우주센터가 자리한 고흥 외나로도의 포구에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벌써 50여 년이 됐다.

그는 날마다 바다에 떠있는 크고 작은 배와 갯바위, 파도와 바람, 하늘과 구름, 바다 위를 나는 새를 그린다. 포구의 나무와 풀, 꽃과 나비, 산과 바위도 화폭에 담는다.

최주휴 화백이 살고 있는 고흥 외나로도 항구 풍경. 한반도의 최남단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전라남도 고흥에 자리하고 있다.
 최주휴 화백이 살고 있는 고흥 외나로도 항구 풍경. 한반도의 최남단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전라남도 고흥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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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바람과 햇볕에 생선이 꼬들꼬들 말려지고 있는 고흥 외나로도 항구 풍경. 최주휴 화백이 날마다 나와서 그림을 그리는 항구다.
 바닷바람과 햇볕에 생선이 꼬들꼬들 말려지고 있는 고흥 외나로도 항구 풍경. 최주휴 화백이 날마다 나와서 그림을 그리는 항구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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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보이는 것을 스케치합니다. 일부러 아름답게 표현하려 하지 않고요. 그냥 보이는 그대로 진솔하게 담고 있습니다. 자연도 담고, 어촌 풍경도 담습니다. 빛이 들어오면 그 빛도 표현합니다."

날마다 포구에서 그림을 그리는 최 화백의 모습이 애틋하다. 잔잔한 감동까지 선사한다. 그림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향에 대한 향수도 떠올리게 해준다. 그의 그림은 현대인들의 향토적 감성을 자극하면서 공감을 이끌어낸다.

별칭을 얻었다. 지난 24일 고흥 외나로도에서 최 화백을 만났다. 그는 이날도 축정항에서 바닷가 풍경을 캔버스에 담고 있었다. 바닷가 사람들에 의하면 그는 날마다 바닷가에 나와서 그림을 그린단다. 하여, '거리화가', '해양화가'로 통했다. 저간의 사정이 궁금했다. 종이에 글씨로 써서 묻고, 대답을 듣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최주휴 화백이 자신의 지난 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 화백과의 대화는 바닷가와 화실에서 글씨로 써서 묻고 대답을 듣는 식으로 했다.
 최주휴 화백이 자신의 지난 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 화백과의 대화는 바닷가와 화실에서 글씨로 써서 묻고 대답을 듣는 식으로 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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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여덟 살 때였어요. 뇌막염을 앓았는데, 그게 청각장애로 이어졌습니다. 얼마나 답답했는지 몰라요. 누구와도 대화를 못하니 외로울 수밖에요."

청각장애인이 된 그에게 친구로 다가선 게 바다였다. 그때부터 바다와 가깝게 지냈다. 바다가 출렁이며 반겨주고,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히며 환하게 맞아주었다. 그 모습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때로는 하얀 구름을 보고 지나가는 배를 보며 상념에도 젖었다. 수평선 너머를 보며 꿈과 희망도 키웠다. 하지만 또래들이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우울해졌다.

"도시에 있는 농아학교를 가야 하는데. 내 나이가 너무 어리고, 경제적인 부담도 커서 아버지가 망설였습니다. 나도 집을 떠난다는 게 무서웠지요. 날마다 바닷가에서 지내는 게 일상이 됐습니다."

바닷가에 나온 그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과 어울렸다. 때로는 어른들의 윷놀이를 구경하고 또래들의 동전치기 놀이를 보며 놀았다.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건 행운이었다. 아버지의 간청을 교장선생님이 받아준 덕분이었다.

최주휴 화백이 지난 24일 캔버스와 이젤 등 그림도구를 들고 외나로도 바닷가를 거닐고 있다. 최 화백은 많은 비나 눈만 내리지 않으면 캔버스를 들고 야외로 나간다.
 최주휴 화백이 지난 24일 캔버스와 이젤 등 그림도구를 들고 외나로도 바닷가를 거닐고 있다. 최 화백은 많은 비나 눈만 내리지 않으면 캔버스를 들고 야외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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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휴 화백이 지난 24일 고흥 외나로도 항에서 바다 풍광을 색칠하기에 앞서 이젤에 캔버스를 고정시키고 있다.
 최주휴 화백이 지난 24일 고흥 외나로도 항에서 바다 풍광을 색칠하기에 앞서 이젤에 캔버스를 고정시키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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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가서 교실에 들어갔는데,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벽에 붙어있는 종이와 글씨를 보면서 비애감이 들었습니다. 저는 글자를 몰랐거든요. 3학년 때까지 줄곧 '꼴등'을 도맡아서 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삼촌의 입 모양을 보며 글자를 익히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삼촌은 글자와 말이 맞아떨어지면 손바닥으로 맞장구를 쳐주었다. 글자를 하나씩 익힐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 그에게 글자를 익히는 일은 수많은 반복과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4학년이 되면서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더듬더듬 책도 읽기 시작했다. 맨 뒷자리를 독차지했던 성적도 조금씩 향상됐다. 초등학교 졸업생 60여 명 가운데 2등으로 졸업을 했다. 졸업식장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그해 외나로도에 중학교가 생기면서 1회 입학과 졸업생이 됐다.

최주휴 화백이 지난 24일 고흥 외나로도 항구에서 섬과 바다 풍경을 담은 그림을 마무리하고 있다. 최 화백은 섬과 바다, 어촌 풍경을 주로 그리고 있다.
 최주휴 화백이 지난 24일 고흥 외나로도 항구에서 섬과 바다 풍경을 담은 그림을 마무리하고 있다. 최 화백은 섬과 바다, 어촌 풍경을 주로 그리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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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색칠을 하던 최주휴 화백이 자신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말끝에 고향과 작품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
 캔버스에 색칠을 하던 최주휴 화백이 자신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말끝에 고향과 작품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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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림을 접하게 된 건 중학교를 졸업한 뒤였다. 광주의 한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지고 방황을 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오지호(1905∼1982) 화백을 만났다.

오 화백이 그의 미술재능을 발견하고 그림을 권했다. 오 화백으로부터 수채화, 유화를 배웠다. 서양화가였던 오 화백은 당시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포기하고 곧바로 대학 편입시험을 봤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합격을 했다. 그의 인생에서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은 것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추상미술의 거목인 김환기(1913∼1974) 화백과 인사를 나눴다. 김 화백은 미술대학장을 맡고 있었다. 김기창(1913∼2001)·천경자(1924∼ ) 화백도 교수와 학생으로 만났다.

최주휴 화백의 파레트. 색색의 물감이 더해져 또 하나의 작품을 보는 듯 하다.
 최주휴 화백의 파레트. 색색의 물감이 더해져 또 하나의 작품을 보는 듯 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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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휴 화백의 화실에서 본 붓들. 그의 화실은 고흥 외나로도 바닷가에 자리하고 있다.
 최주휴 화백의 화실에서 본 붓들. 그의 화실은 고흥 외나로도 바닷가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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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화백은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졸업 후엔 프랑스 파리 유학을 준비했다. 프랑스어를 배우고 영어와 일본어를 공부한 것도 이런 연유였다. 서울에서 첫 개인전도 열었다. 유학의 꿈은 어려워진 가정형편이 발목을 잡았다. 서울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집안일을 도우며 바닷가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50여 년 전이다.

최 화백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섬과 바닷가 풍경을 캔버스에 담고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폭으로 옮기는 데는 두 눈과 마음의 귀로도 충분했다. 그 사이 가족들은 모두 떠나고 혼자 남게 됐다. 곡절도 많았다. 지금은 유산으로 받은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 20만 원과 노령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최주휴 화백의 화실에 널려있는 물감들. 그림에 대한 그의 애착을 느낄 수 있다.
 최주휴 화백의 화실에 널려있는 물감들. 그림에 대한 그의 애착을 느낄 수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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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휴 화백의 화실 풍경.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갖가지 미술 재료와 캔버스로 가득 차 있다.
 최주휴 화백의 화실 풍경.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갖가지 미술 재료와 캔버스로 가득 차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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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는 풍경화가 맞는 것 같습니다. 자연과 대화도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탁 트인 바다하고 친구로 지낼 수 있어서 좋습니다. 가끔은 산에 올라가 바다를 내려다보기도 합니다. 산에서 보면 풍경의 원근감이 살아나서 좋습니다."

최 화백의 말이다. 그는 화실보다는 바닷가에서 그림을 그린다. 살고 있는 곳이 외진 데다 장애까지 겪는 몸이어서 버겁지만, 그는 현장을 중시한다. 한 점의 가식도 없이 진솔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자연의 빛까지도 고스란히 다 담을 수 있다. 타고 난 색채 감각으로 빛의 두께까지도 구분을 해낸다.

그림의 깊이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한다. 원색의 강렬한 색감과 두터운 물감층을 써서 그림의 깊이와 무게를 살리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표현했다며 감탄을 한다. 그의 삶의 깊이가 그림을 통해 묻어나면서도 밝고, 강렬하고, 활달하다는 평을 받는다.

4년 전 최 화백의 초대전을 연 곽형수 고흥 남포미술관장은 "최주휴 화백의 그림은 빛의 방향에 따라 변화하는 바다와 산의 모습까지도 표현해서 그림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면서 "아직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머지않아 화단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화백은 오늘도 바닷가에서 파도와 갈매기 소리를 벗삼아 붓을 들고 있다. 그의 붓끝에서 외나로도의 섬과 바다 풍광이 발효·숙성되면서 그만의 예술작품으로 정제되고 있다.

고향 외나로도 바닷가에 선 최주휴 화백. 그는 늘 바다와 섬을 친구 삼아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고향 외나로도 바닷가에 선 최주휴 화백. 그는 늘 바다와 섬을 친구 삼아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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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최주휴, #외나로도, #청각장애화가, #거리화가, #해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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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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