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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자발성·창의성·공공성·지역성'이라는 기본정신을 통해 학교혁신 실천이라는 목표를 갖고 출발한 혁신학교는 강원도에서는 '행복더하기학교'라는 이름으로 현재 54개교가 운영되고 있다. <강원희망신문>에서는 혁신학교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사례 등을 제공하고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연중특별기획으로 '혁신학교에서 희망찾기'를 연재한다. '특별좌담회'를 시작으로, 학교현장 방문 취재 등 총 9회 연재할 계획이다. <오마이뉴스>는 <강원희망신문>의 동의를 얻어 이 기사를 함께 게재한다. [편집자말]
호반초 전경
 호반초 전경
ⓒ 전흥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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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 후평동 아파트 단지 뒤로 좁은 주택가 골목을 따라 들어서면 동쪽 야산 아래 고즈넉이 자리 잡은 호반초등학교를 만날 수 있다. 학교는 텃밭을 사이에 두고 야산을 등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도시를 막 벗어나자마자 바로 자연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호반초를 처음 찾은 것은 6월 11일 아침, 1교시 시작하기 전이었다. 6학년 2반 교실은 책상과 의자가 전부 옆으로 밀쳐져 있고 아이들은 교실 한가운데 모여 앉았다. '뒤뚜르도서관' 이순애 관장이 읽어주는 그림책을 듣기 위해서다.

어릴 때 엄마, 아빠가 읽어주던 그림책을 다 큰 아이들이 귀를 쫑긋거리며 듣고 있다. 이보다 먼저 8시 30분부터는 학교 도서관에서 또 다른 어머니들이 저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림책을 읽어 주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닌 어머니들이 읽어주는 그림책이 아이들은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다. 매주 목요일 호반초등학교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된다.

선생님은 힘들지만 아이들은 행복한 학교

그림책 읽기가 끝나고 어머니들을 만났다. 어머니들은 한결같이 아이들을 만나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림책을 통해 많은 것을, 새로운 눈으로 다시 배우게 된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더 읽어달라고 조를 때면 더 신이 나지만, 시간이 부족한 것을 아쉬워하며 다시 1주일을 기다린다.

호반초에는 독서동아리 외에 텃밭동아리 등 다양한 동아리가 있다. 학부모동아리는 해마다 봄에는 '단오제', 가을에는 '책축제'와 같은 큰 행사를 직접 주관한다.

호반초는 올해 '강원행복더하기 학교' 5년 차에 접어들었다. 혁신학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초학력에 대해 우려하는데 학부모 강영일씨는 아이들이 협력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한다. 또 일반학교에서는 구조적으로 어려운 시도들이 혁신학교에서는 가능하기 때문에 변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호반초 학부모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조성미씨, 김동화씨, 김자향씨, 강영일씨, 이순애 관장.
 호반초 학부모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조성미씨, 김동화씨, 김자향씨, 강영일씨, 이순애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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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향씨는 관계에 대해서 말한다. 선생님과 아이들, 부모와 아이들, 아이들과 아이들 사이에 변화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순애 '뒤뚜르' 관장의 아이도 혁신학교 지정 이후 4년 동안 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했다. 이순애씨는 혁신학교에서 선생님들은 무척 힘이 들지만 아이들은 행복한 것 같다고 말한다.

올해 1학년에 입학한 지호 어머니 조성미씨는 혁신학교에 대해 잘 몰랐다. 주변에서는 걱정 반, 부러움 반이었다고 한다. 걱정은 혁신학교라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불안감 내지는 학력문제에 대한 우려감 등이다. 경쟁사회에서 아이들이 뒤처질 것에 대한 본능적 감정일 것이다.

반면에 부러움은 경쟁에서 밀려 소외되거나 위축될까 봐 안쓰러운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엄마들에게서 나온다. 혁신학교를 경험하면서 경쟁이 아닌 협력으로 모두가 일등인 아이들이 너무 좋다고 한다. 받아쓰기나 달리기 등도 경쟁이 아니라 놀이로서 자연스럽게 학습을 유도한다고 한다.

김동화씨는 혁신학교에 다른 점을 주문한다. 그동안 혁신학교가 추구한 가치나 취지는 좋지만 기존에 전통적으로 했던 것들을 모두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혁신학교가 한곳에 머무르지 말고 지속적으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서로 친구인 학교에서 폭력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

6월 15일, 다시 학교를 찾았다. 메르스 탓에 학교에서 지난 주말(13∼14일)에 하기로 했던 '아빠와 함께하는 1박2일 캠프', 이날 예정되었던 '방과 후 공개수업'이 모두 취소되었다.

사실 혁신학교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이 같기 때문에 혁신학교들 사이에 차이점은 별로 없다. 민주적 교사회의, 다양한 체험학습과 동아리 활동, 학부모 및 지역사회를 연계한 공동체 지향 등에서부터 계절학기제(봄, 여름, 가을, 겨울의 4학기로 운영하는 학교), 블럭수업(80분 수업, 30분 휴식으로 운영하는 수업) 등에 이르기까지 혁신학교라면 그리 낯설지 않은 용어들이다.

그중에서 특별히 호반초가 자랑하는 것은 '작은학교제'라고 할 수 있다. '작은학교'란 교육과정을 학년이 아니라 학년군(學年群)으로 묶어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1·2학년은 '잎싹학교', 3·4학년은 '초록학교', 5·6학년은 '열매학교'로 부르는데, 학교 안의 또 다른 학교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잎싹학교'에 해당하는 1·2학년의 모든 담임교사들이 함께 모여 공동의 교육과정과 제반 프로그램을 논의하고 결정한다. 교육과정의 연속성과 일관성의 바탕 위에 좀 더 세밀하고 창의적인 생각들이 모아지고, 그렇게 결정된 사항들은 바로 실행된다. 그럼으로써 교사들은 자발성과 참여의식이 높아지고 스스로 성장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학년군 별 교육과정 속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또 학년이라는 경계를 넘어 친화적 관계가 형성되고 아이들 스스로 형(또는 언니)과 동생의 위치를 번갈아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위치에 맞는 행동과 자세를 저절로 체득하게 된다. 학교폭력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6학년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뒤뜨르도서관 이순애 관장
 6학년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뒤뜨르도서관 이순애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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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

호반초는 혁신학교 1기를 마치고 새로운 실험대 위에 서 있다. 그동안 지원됐던 예산이 거의 반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예산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자생력을 갖춰야 한다. 지속가능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제부터는 교육과정의 재구성을 통해 수업을 더욱 혁신할 계획이다. 지난 4년의 시간을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 등 관계의 인프라에 투자했다면, 이제는 그야말로 철학의 공유라는 주춧돌 위에 교육과정이라는 튼튼하고 세밀한 구조물을 세워나가야 한다.

'작은학교'를 이끌고 있는 네 명의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 명의 선생님들은 똑같이 호반초에 와서 4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다. 피로감이 없느냐는 물음에 이구동성으로 전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정리가 되어가고 여유가 생겼다고 말한다.

학교의 혁신은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 초등학교에서 중등학교로 이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장민희 교사는 진짜 혁신학교가 성공하려면 일정한 지역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연계될 수 있는 혁신지구가 생겨나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지난 4년의 시간은 교사 개개인에게도 소중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간의 소회를 물었다. 장민희 교사는 거침이 없다. "주변인에서 주인으로, 교사로서의 제자리를 찾았다"고 말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오수진 교사.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고민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것"을 큰 보람으로 느꼈다는 이지연 교사. "위에서 시켜서 바쁘거나 스스로 일을 만들어 바쁘거나 바쁘기는 다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켜서 바쁜 것은 스트레스를 주지만 자발적으로 바쁜 것은 기쁨을 준다"고 말하는 고순득 교사.

이렇게 위풍당당한 선생님들이 있는 한 우리 교육의 희망이 호반초등학교 뒷동산에 떠오르는 태양만큼이나 밝겠구나 싶었다.

"행복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꿈을 이루는 것"
혁신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지난 4년 동안의 혁신학교 생활을 고스란히 경험했던 6학년 학생 4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먼저 호반초가 강원행복더하기 학교 또는 혁신학교인 것을 아는지 물었다. 2/3 넘는 아이들이 안다고 대답했고 모른다는 아이들도 30% 정도 되었다.

다음으로 혁신학교가 어떤 학교인지 서술형으로 물었다.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절반에 해당하는 24명이 뭔가 '새롭고, 즐겁고, 좋은 학교'라고 대답한 반면, 1/3 넘는 아이들은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이어서 학교에 오는 것이 신나는지 아니면 오기 싫은데 억지로 오는지를 물었다. 억지로 온다고 대답한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절반의 아이들이 '그저 그렇다'고 답했다. 아마도 6학년이라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학력에 대한 부담이 큰 탓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신난다고 대답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다.

다음으로는 학교생활에서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무엇이었는지 세 가지를 말해 보라고 했다. 역시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가장 선호한 것은 동아리 활동이었다. 다음으로 제일 많은 답변이 나온 것은 야영이었다. 동아리 활동과 야영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다.

이어서 학교생활 중 힘든 일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힘든 것이 없다고 응답하였고, 몇 명의 아이들만이 공부나 친구 관계가 힘들었다고 대답하였다. 혁신학교라고 해서 공부가 마냥 즐겁기만 하고 친구 관계가 전혀 문제가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물었는데,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꿈을 이루는 것이라고 답했다.

아이들에게 혁신학교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역시 친구들과 즐겁게 놀면서 배울 수 있다면 그 이상 행복한 것이 없을 것이다. 공부에 짓눌려 꿈조차 꿀 수 없는 아이들보다 신나게 놀고 즐겁게 공부하며 자유롭게 꿈 꿀 수 있는 아이들의 미래가 눈에 선하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덧붙이는 글 | 전흥우 기자는 <강원희망신문> 편집위원입니다.



태그:#호반초, #행복더하기학교, #혁신학교, #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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