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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둑길에서 바라 본 풍경. 한라산이 물에 비칠 듯하다.
 저수지 둑길에서 바라 본 풍경. 한라산이 물에 비칠 듯하다.
ⓒ 정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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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판 에버랜드로 90년대 초 아이들이 있던 집에서는 한번쯤 가봐야 어디가서 어깨 한번 피며 말할 수 있는 유원지가 있었다. 지난 앨범을 들춰보면 어디서 많이 본 여자(남자)아이가 한 손엔 솜사탕을 들고, 입가 가득 아이스크림을 묻히고 해맑게 웃었던 사진 한장은 꼭 있던 그런 곳 말이다.

제주시에서 서쪽, 중산간서로를 타고 30분 정도 달리면 애월읍 구엄리와 신엄리 사이 중산간에 수산리가 있다. 옛 지명은 물메라 해 '물메마을'로도 불리는 500년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마을이다. 우뚝 솟은 수산봉에서 남쪽으로 넓게 자리하고 있는 수산리는 수산봉 정상에 물이 있어 물메라 불렸다 .그래서 수산봉도 물메오름이라 불리며 현재 한자로 표기되면서 수산리(水山里), 수산봉으로 부르게 되었다.

수산리는 한마디로 3만 여 평의 저수지 위에 수산봉과 천연기념물 곰솔이 비춰지는 풍경이 한 편이 수묵화처럼 고요하고 정적인 마을이다.

수산봉 산책로는 올레 16코스 중 한 곳이다.
 수산봉 산책로는 올레 16코스 중 한 곳이다.
ⓒ 정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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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봉 정상에서 바라 본 마을 모습
 수산봉 정상에서 바라 본 마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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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봉우리 정상의 물자리는 메워지고, 운동시설이 들어섰다.
 수산봉우리 정상의 물자리는 메워지고, 운동시설이 들어섰다.
ⓒ 정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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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들은 수산봉에 영험한 기운이 있다고 믿어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제주목사가 수산봉을 찾아 기우제를 지냈다. 또한 오름 정상에는 주변에 소식을 전하던 봉수대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전경부대가 자리했다. 또한 정상의 물자리도 메워져 작은 연못만이 옛 물메의 기억을 남길 뿐이다.

수산봉은 오름치곤 야트막한 고지에 정상까지는 15분이면 뚝딱 올라가며, 돌아 내려오는 길은 굽이굽이 이어진 낮은 숲 오솔길을 따라 총총 걸어 내려올 수 있으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잠시 마실 나와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인위적이지 않은 산책로는 무성한 풀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있다. 새벽녘 내린 비에 나뭇잎마다 초록이 숨 쉬고 드문드문 피어진 야생화들이 걸음을 내딛는 곳마다 함께 하니 작은 곶자왈에 들어온 신선함을 느낀다.

거기다 수산봉 바로 아래는 제주에서 두 번째 큰 면적의 저수지가 있어 과연 물과 산이 함께하는 수산리를 눈 안 한가득 담을 수 있다.

천연기념물 제441호 <수산 곰솔>
 천연기념물 제441호 <수산 곰솔>
ⓒ 정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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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수산 저수지에 있는 400년 된 곰솔은 10m 높이에 4m 둘레를 가진 노목으로 그 웅장함과 독특한 모양새가 천연기념물이 되기 부족함이 없다. 수산마을 사람들은 눈이 많이 내려 나무의 온 몸이 덮일 때 백곰이 물을 먹는 형상이라 해 곰솔이라 불렀다.

하지만 저 많은 물이 담긴 저수지, 저 넒은 땅이 과거 하동지역으로 불렸다는 것을 과연 얼마의 사람들이 기억할까. 고즈넉한 정취에 낚시대를 드리워야 할 것 같은 이 곳은 1950년대에 논농사를 짓기 위한 물을 대기 위해 정부의 이주정책으로 수몰(水沒)된 곳이다. 이렇게 조성된 저수지는 하동을 대대로 터를 잡아 살았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으로의 이주, 아니면 강제적 이주로 터전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는 양극의 기억을 잔잔한 수면 깊은 곳에 묻고 있다.

사실 수산리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저수지를 활용한 제주도내 유일한 유원지로서 도민의 사랑을 받던 곳이다. 보트장, 야외풀장, 식당 등을 설치하여 가족 휴양지의 기능을 담당했지만 1996년 사업부진으로 운영을 중단한 이후 수산유원지였던 당시의 폐기물들에 의해 비판을 받으며 다시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조용한 마을로 남겨졌다.

가까운 과거 수산유원지의 기억부터, 잃어버린 마을 하동과 함께 4.3사건의 비극도 이 마을의 역사 속에 숨겨져 있다.

수산봉 한 자락에 여여(如如)히 서 있는 대원정사의 법당.
 수산봉 한 자락에 여여(如如)히 서 있는 대원정사의 법당.
ⓒ 정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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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정사
 대원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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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봉을 마주하면 동남쪽 방향 중턱에 나무들 사이로 산새만 울어 재끼는 청량한 절이 하나 보인다. 대한불교 법화종에 소속된 이 절은 대원정사로 4.3사건 때 토벌대에 의해 사찰이 철거당하고 주지인 고정선이 총살을 당하는 질곡의 시간을 거치면서 지금도 고즈넉한 수산봉 한자락에서 부처의 자애로움을 전하고 있다.

제주 올레16코스이기도 한 수산봉은 불교 순례길 중 '보시의 길'을 시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중생의 구제를 목표로 삼는 이타(利他) 정신의 극치를 말하는 '보시'라는 이름으로 신자들의 순례길로 지정한 이유도 수산리의 역사가 함께 하는 때문이다.

수산봉이 굽어보는 저수지 위에 늙은 나무 곰솔이 세월의 무게를 담은 나뭇가지를 물가에 드리운다. 몇 백 년의 세월동안 곰솔은  수산마을 사람들을 지켜 온 수호신이 되었다. 나무 곁을 찾는 사람들의 기원과 고달픈 인생살이, 집안 소소한 즐거운 이야기를 무수히 듣고 공감했을 나무가락 끄트머리에 할비의 애잔한 감정이 묻어난다.

어느덧 해가 산봉우리 뒤로 물러가고 잔잔한 저수지 속에 묻어난 한(恨)들을 보듬으며 산사의 종소리가 마을 전체를 감싼다.

수산봉
 수산봉
ⓒ 정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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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인터넷신문 제주시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태그:#제주생각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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