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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20일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에 딸린 작은 섬인 굴업도(掘業島)에 다녀왔다. 굴업도를 너무 사랑하여 지난 5년 동안 50여 차례 방문한 경험이 있는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의 실무자인 건축가 박민영 선생과 함께한 여행이었다.

인천시 옹진군 굴업도
▲ 굴업도 지도 인천시 옹진군 굴업도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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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4년 정부에서 핵폐기장 후보지로 선정돼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굴업도는 이후 CJ가 통째로 사들인 뒤 2006년부터 골프장과 관광레저단지 개발 사업을 추진하여 안팎으로 난리가 났던 섬이다. 이로 인하여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주민간 찬반 의견이 갈려 반목이 계속되고 있다.

굴업도까지는 생각보다 교통이 불편했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부근에서 오전 7시에 만나, 차를 타고는 우선 인천으로 이동했다. 1시간 30분 정도 만에 인천여객터미널에 도착하여 동행하기로 한 17명과 함께 덕적도로 가는 9시 배에 올랐다.

배는 한 시간만 덕적도에 닿았다. 다시 굴업도로 가는 배를 갈아타야 한다. 잠시 30분 정도 시간이 있어서 상호간에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동하면서 배안에서 먹게 갑오징어 회, 소라 회를 조금 샀다. 별로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여러 명이 함께 정담을 나누며 먹을 수 있어 좋았다.

다시 한 시간을 타고 도착한 곳은 우리들의 목적지인 굴업도다. 상상보다는 큰 섬이었다. 하지만 마음먹고 걸으면 반나절이면 섬을 종주할 수 있는 작은 섬이다. 해안선 길이가 12㎞라고 하니 말이다. 10가구가 안 되는 작은 마을에 채 20명도 되지 않는 주민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학교와 우체국은 없고, 천주교 공소가 하나 있다. 

민박집 식사
▲ 굴업도 민박집 식사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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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가 다 되어 도착하니, 바로 민박집에서 트럭이 나와 있다. 짐과 사람이 전부 짐칸에 실려서 민박집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식사와 숙박을 하게 사전 예약을 했다. 지역특산물로 만든 점심은 일품이었다. 이곳에서 먹은 4번의 식사 모두 같은 반찬 하나 없이 최고의 요리만이 나와서 다들 감동했다.

해산물과 홍어탕을 너무 맛있게 먹었다. 식사 이후 잠시 쉬고는 맑은 날이면 연평도가 보인다고 하여 이름이 정해졌다는 연평산(延坪山) 방향으로 길을 잡아 긴 산책을 나섰다. 마을에서 출발하면서 보니, 민박집 입구에 20년 정도 된 회화나무 두 그루가 멋지게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중심에 너무 좋은 터에 자리 잡은 집이다. 그래서 주인장 내외분의 사람됨이 좋구나!
회화나무가 좋은 굴업도
▲ 굴업도 회화나무가 좋은 굴업도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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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언덕을 오르다 보니, 남쪽 바다 멀리에 바위섬 3개가 보인다. 선단여(白牙島)라고 하는 바위섬이다. 섬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근친상간을 벌하기 위해 노한 하늘나라의 할머님이 오누이를 바위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생김새가 특이하다. 바위섬 주변은 어황이 좋아 낚시를 즐기시는 분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이어 언덕을 내려가다 보니 모퉁이에 작은 공덕비가 보이고, '생명의 숲'이 주관한 2009년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주관한 2009년 꼭 지켜야 할 자연유산 환경부장관상을 굴업도가 수상했다는 것을 알리는 푯말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삼성식품(三成食品) 류흥효 대표를 기리는 공덕비가 더 관심이 간다. 소득이 많지 않은 굴업도에서 주민들의 생계수단이었던 땅콩, 고구마 등을 안정적으로 수매해준 삼성식품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 한다.

류흥효 사장 공덕비
▲ 삼성식품 류흥효 사장 공덕비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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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식품에서는 농산물수매는 물론 굴업도에 많은 공생적인 지원을 했다고 전한다. 이어 굴업도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다는 증거가 된다는 폐총을 잠시 보았다.

작은 섬이지만, 수만 년 동안 사람이 살았다는 기억을 이곳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래의 있는 쓰레기장으로 갔다. 굴업도는 자체적으로 쓰레기처리 시설이 없는 관계로 이곳에 모아 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뭍으로 내 보낸다고 한다.

이 주변부지 4000평 정도가 흔히 구원파로 알려진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사)한국녹색회 소유지라고 한다. 한때 CJ그룹의 개발에 맞서 지역주민들과 뜻을 같이한 한국녹색회가 이 터에 주민들을 위한 작은 마을을 조성하기 위해 주거단지와 관광객들을 위한 몇 동의 숙박시설을 만들 계획도 구상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여러 가지 이유로 무산된 상황이다.

이곳을 제외한 나머지 98.5%의 섬 땅은 CJ가 골프장과 리조트를 건설하기 위해 구입했다고 한다. 결국은 여러 사람들의 반대로 모든 사업이 거의 무산(?)되기는 했다. 이어 아래의 습지들을 잠시 살펴보았다. 한 달에 한두 번 바닷물이 들어올 때는 바다가 되었다가 나갔을 때는 염분이 있는 습지가 되어서 그런지 생태계가 어느 습지와는 조금은 달라 보였다.

이곳 습지에는 미꾸리, 물 방게 등 40~50여 종의 수생식물이 서식하는 독특한 식생을 이루고 있다. 이제 조금 더 가니 해골바위라고 불리는 바위를 중심으로 사방 200~300미터 정도에 다양한 현무암층이 분포하고 있는 넓은 터가 나온다.

화산토양과 바위가 좋은 곳
▲ 해골바위 주변 화산토양과 바위가 좋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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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업도는 8000만~90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말 화산활동으로 섬이 생겼다고 하는데, 큰 활화산이 아니라 마그마(magma)가 여러 번 분출만 반복했는지, 여러 종류의 바위가 있지만 현무암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이했다.

학자들은 섬 전체가 화산 쇄설암이 쌓여서 굳은 응회암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아울러 지형, 바람, 안개, 파도, 온도, 소금 등의 영향으로 동쪽은 회랑처럼, 서쪽은 절벽처럼 침식된 독특한 해안지형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여기저기에 살아 움직이는 사구습지가 형성되어 있는 지질학적으로 연구가치가 높은 유별난 섬이라고 한다.

정말 고운 화산재가 쌓이다가 돌연 지름 10m에 이르는 암석들이 콘크리트 반죽처럼 버무려진 화산쇄설암이 쌓이는 등 거듭된 화산활동의 자취와, 파도, 바람, 소금, 안개 등의 영향으로 바위가 갈라져 부서지고 녹아내린 침식의 역사가 고스란히 보이는 곳이다. 소규모의 마그마 분출이 여러 번 반복되어 특이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또한 희귀 동식물들로 이팝나무 군락, 금방망이, 보리밥나무, 큰 천남성, 홀아비 바람꽃, 두루미 천남성, 매, 검은머리물떼새, 애기뿔 소똥구리, 왕은점 표범나비, 개미귀신 등이 왕창 서식하고 있는 섬이다.   

잠시 쉬면서 해골바위를 중심으로 기념촬영도 하고, 음료수도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생각해 보니 정말 식생도 다양하고, 바위며 모래와 자갈이 모양도 색도 전부 다른 것이 보기에도 좋았다.

목기미 해변
▲ 굴업도 목기미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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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지는 곳은 해수욕장으로도 쓰이고 있는 '목기미 해안사구'. 좌우측의 해안선을 따라 약 600m의 가늘고 고우면서도 색이 하얀 모래밭이 이어져 있다. 1998년경에 사용이 중단된 전봇대는 계속되는 사구의 성장으로 인하여 끝을 2~4m가량을 남기고 모래에 몸을 깊이 박고 서 있어 풍광이 재미지다. 멀리서 보면 나무 전봇대 같은데, 자세히 보면 콘크리트의 산화와 녹슨 철의 흔적, 물때 등이 있어 더 나무처럼 보인다.

오래된 전봇대
▲ 목기미 해변 오래된 전봇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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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아치는 파도와 강풍에 가는 모래가 날려 쌓인 이곳 사구는 소사나무와 소나무, 찰피나무 숲을 잠식하며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주변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는 바다모래 채취로 인하여 숲은 나무뿌리를 드러내는 등 방풍림의 파괴 등이 심각하게 발생하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이어 이제는 사라진 작은 마을 터로 갔다. 1990년대 후반까지 몇 가구가 살던 이곳에는 지금은 흔적만 남은 집터와 창고건물, 화장실, 우물, 수명을 다한 아카시나무(false acasia) 여러 그루가 남아있고, 뒤편에는 연못과 비슷한 민물습지가 있다.

풍경이 좋다
▲ 옛 마을터 풍경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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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파도가 강해서 반 지하 형식으로 만든 집의 모양도 재미나다. 오래된 마을의 흔적은 전위 예술가들이 다양한 나무와 조각, 벽돌 등을 전시해둔 것처럼 모양이 멋지고 이쁘다. 카메라를 대고 어느 방향으로 찍어도 작품이 될 듯이 폼나고 아름다운 곳이다. 마을을 둘러본 다음, 뒤편의 우물과 습지를 살펴보았다. 오랜 가뭄에 습지는 말라있었지만, 조만간 장마가 시작되면 물고기들이 살아서 움직일 것처럼 그림이 좋다.

그리고 다시 뒤편의 모래밭으로 갔다. 이곳의 모래는 화산암이 많이 부서진 곳이라 그런지, 붉은 색의 모래와 바위가 남다른 느낌이 든다. 특히 조금 전에 본 목기미 해안과는 다르게 굵은 모래로 색깔도 별나다. 우측에  덕물산(德物山)과 좌측에 연평산이 잘 보이는 좋은 터이다. 큰 배들이 잠시 두고 간 닻이 여러 개 놓여있어 우주를 향하여 발사를 준비 중인 우주왕복선이 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우주인이 되어 화성의 대지 위에 서 있는 듯하다.

가지고 온 맥주를 한잔했다. 너무 시원하다. 이제 다시 길을 잡아 연평산 정상 쪽으로 오른다. 바람을 스스로 타고 넘을 듯이 유연한 곡선으로 아주 낮게 자라고 있는 소사나무가 여러 그루 보인다. 그리고 꽃이 진 이팝나무 군락, 모든 것이 아름답다.

누워서 자라는 소사나무, 바람을 잘 타고 산다
▲ 소사나무 누워서 자라는 소사나무, 바람을 잘 타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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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부드럽게 바람을 타고 오른 것 같은 소사나무는 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 하늘에 순응하면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나무의 삶에 대한 자세를 보는 것 같아 좋다. 소사나무가 이렇게 이쁜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분재로만 보던 나무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정상까지 가지 않고 중간쯤에서 사방을 살펴본다. 아래쪽의 바다와 코끼리바위 주변이 눈에 확 들어온다. 특히 코끼리바위 부근의 움푹 들어간 넓은 터는 자연이 만들어 준 반원형의 음악당 같다.

이곳에서 연주를 하고 사람들은 보트를 타고 바로 앞 바다에서 신이 내려주신 파도소리와 함께 인간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 상상한 해 본다. 나중에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들이 모여서 이런 공연을 하면 좋을 것 같아 보여 박민영 선생에게 제안도 했다.

연평산에서 본, 목기미 해변 방향
▲ 굴업도 풍광 연평산에서 본, 목기미 해변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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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더 이상 산에 오르지 않고, 하산을 하며 방금 본 코끼리바위 쪽으로 길을 잡았다. 생각보다 길이 미끄럽고 위험하다. 가는 길에 정말 모래가 고운 해안사구 위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돌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고, 사구를 그냥 걸어서 혹은 미끄럼을 타면서 내려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모래 타기를 즐기다
▲ 굴업도의 모래사구 모래 타기를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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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천천히 걸어서 내려갔지만, 아이들은 미끄럼을 타기도 했고, 몇몇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장난을 치면서 몇 번을 오가며 사구를 오르내렸다. 모래가 너무 가늘고 고와서 찰떡을 이곳 위에 굴리면 흰 고명을 무친 것처럼 될 듯 보인다. 

굴업도
▲ 코끼리바위 굴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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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사구에서 놀다가 이번에는 조금 더 가서 코끼리바위에 닿았다. 정말 파도와 바람 등이 만든 예술품이다. 곳곳에 있는 코끼리를 닮은 바위를 보았지만, 이곳의 바위가 가장 멋지고 커서 대단히 웅장하다. 다들 바위를 만지기도 하고 기념촬영도 하고는 잠시 쉬다가 돌아서 나왔다.


태그:#굴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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