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68)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이 '2015 프리미어12'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김인식 감독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진출과 2009년 WBC 준우승 등 국제 대회에서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해 '국민감독'이라는 칭호를 얻은 바 있다.

국제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이 주최하는 '2015 프리미어12'는 세계 랭킹 상위 12개국이 참가한다. 오는 11월 일본과 대만에서 열리는 국가 대항전으로 이번이 첫 대회다. 한국은 그동안 전년도 한국시리즈 우승팀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맡는 것을 원칙으로 해왔으나 이번 프리미어12의 경우 가을에 열리는 대회 일정상 현직 프로 감독이 장기 레이스를 끝내고 바로 대표팀을 맡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KBO는 체계적인 대표팀 구성과 국제 경험을 두루 고려해 김인식 감독이 최선의 대안이라고 판단했다.

'국민 감독' 김인식, 프리미어12 사령탑 올라

김인식 감독은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 야구 최고 명장 중 한 명이다. 김 감독은 OB(현 두산), 한화 사령탑을 거치며 17년 동안 980승 1032패를 기록했다. 국내에서 그보다 많은 승수를 거둔 감독은 1000승 이상을 올린 김응룡 감독(74)과 김성근 감독(73) 두 명뿐이다. 세 사람 모두 한화의 전·현직 사령탑을 거쳤다는 것도 기묘한 인연이다. 류현진, 김태균, 정민철, 홍성흔, 정수근, 김동주, 안경현 등 한국 야구사에 한 획을 그은 무수한 슈퍼 스타가 모두 그의 지도를 거쳤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을 지금의 국민 감독으로 만들어낸 계기는 역시 국제 대회에서의 호성적이다. KBO에서의 실적도 물론 빼어나지만, 대표팀을 이끌고 여러 국제 무대에서 꾸준히 성과를 낸 경력으로는 단연 역대 한국 지도자들을 통틀어 '넘버원'이다. 개성 강한 스타 선수들을 단기간에 뭉치게 해 최상의 팀워크를 끌어내는 인화의 리더십, 고정된 야구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용병술, 적재적소의 마운드 운용 등은 김인식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다.

특히 야구팬의 가슴 속에 '김인식=영원한 대표팀 감독'이라는 이미지를 뚜렷이 각인한 것은 역시 2009년 WBC다. 당시 프로 구단 사령탑들이 이런저런 핑계로 국가 대표팀을 기피하던 상황에서 김인식 감독은 애당초 후보 명단에도 올라 있지 않았으나 KBO의 간곡한 권유로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했다.

당시 김인식 감독은 뇌졸중 후유증이 남아 있어서 다소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었다.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이후에도 이승엽-박찬호 등 스타 선수들의 대표팀 고사와, 현직 감독들의 코칭스태프 합류 불발 등 김인식 감독이 원했던 조건들이 모두 무산되는 등 순탄하지 않은 행보가 이어졌지만, 김 감독은 포기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표팀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국가가 있어야 야구도 있다"는 어록을 남기며 이기주의에 찌든 국내 야구인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김인식 감독은 당시만 해도 해외파들이 주를 이뤘던 1회 대회 때에 비해 전력이 약해졌다고 평가받는 대표팀을 준우승으로 이끌며 또 한 번 명장임을 증명했다. 결승전에서 일본에 통한의 패배를 당하며 우승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김인식 감독과 태극호가 WBC에서 보여준 '위대한 도전'은 역대 한국 야구 대표팀 역사에 손꼽힐 명장면으로 남았다.

명장 김인식, 그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

사실 김인식 감독 개인으로서만 놓고 보면 대표팀은 애증의 역사이기도 하다. 당시 한화 사령탑을 겸임하고 있던 김 감독은 비시즌 기간 갑작스레 대표팀을 맡느라 소속 팀을 돌볼 사이가 없었고, 한화는 그 해 최하위에 그치며 결국 성적부진으로 김 감독은 지휘봉을 내려놓게 된다. 조국을 위해 독이 든 성배가 다름 없는 대표팀을 맡았던 희생을 감안하면 아이러니한 결과였다. 공교롭게도 한화는 그때부터 암흑기의 시작을 알렸고, 김 감독은 이후로 더 이상 프로 팀 지휘봉을 잡지 못했다.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야구계 원로로서 이룰 것은 모두 이룬 김 감독에게, 대표팀 사령탑 복귀는 잘 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망신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김 감독은 이번에도 국가의 부름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중임을 맡았다. 이번 프리미어12에서 어떤 성적을 거둘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 자체만으로 한국 야구를 위한 김인식 감독의 용기와 헌신이 존중 받아야 할 이유다.

사실 이번에도 대표팀 구성을 둘러싼 상황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일단 프리미어 12 출전에 대해 국내 야구계에서도 아직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WBC가 있는 마당에 굳이 프리미어12까지 참여해야 하는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많다. 프리미어 12는 아시안게임처럼 병역 혜택 등의 당근이 없는 데다, 각국의 프로 시즌이 끝난 직후인 11월에 열리는 만큼 선수들의 컨디션에도 변수가 많다.

김인식 감독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김 감독이 한국 야구계에 손꼽히는 명장임에는 틀림없지만, 2009년 한화를 끝으로 감독 지휘봉을 놓은 지 벌써 6년이다. 야구, 특히 단기전은 시시각각 상황이 변하고 감독의 순발력있는 판단과 대처가 중요한 종목이다. 기술위원장으로서 꾸준히 한국 야구를 지켜봐 왔다고 해도 현직 감독으로서의 현장 감각을 따라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 김인식 감독의 선임 못지 않게 결국 야구계의 지원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뤄질지가 관건이다. 김 감독이 현장 공백기가 있는 만큼 그를 보좌할 코치진만이라도 재야 인사보다는 현장 상황에 더 밝은 현직 감독이나 코치들로 구성되는 게 바람직하다. 김인식 감독이 야구계 원로인 만큼 현재 프로 구단 지도자들도 대부분 김 감독의 제자들이라 코치로 쓰는 데도 큰 문제는 없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대표팀 구성이다. 김인식 감독은 기왕이면 최고의 대표팀을 구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계획대로라면 미국-일본에서 활약하는 해외파들까지 총망라한 최정예 대표팀을 구상하고 있다. 프리미어 12에 미온적인 해외 구단의 협조를 얻는 것도 필수지만, 역시 선수들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다. 병역 혜택 이후 대표팀 합류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들었던 추신수(텍사스)를 비롯해 강정호(피츠버그), 이대호(소프트뱅크), 오승환(한신) 등의 합류 여부에 따라 대표팀의 전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김인식 감독이 한국 야구계에서 차지하는 인망과 상징성도 이번 대표팀의 위상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야구계가 다시금 김인식 감독을 추대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칠순을 바라보는 국민 감독은 이번에도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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