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기 KBL 총재가 최근 남자 프로농구에서 불거진 불법 스포츠 도박과 승부 조작 논란에 공식 사과했다. 김 총재는 지난 29일 KBL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프로 농구의 근간을 해치는 불법 도박 및 승부 조작을 근절하기 위한 제도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남자 프로 농구에선 전창진 KGC 감독이 불법 도박과 승부 조작 연루 의혹을 받아 경찰 수사 중이다. 최근 은퇴한 전 프로 농구 선수도 역시 승부 조작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2013년 강동희 전 원주 동부 감독의 승부 조작 파문으로 큰 홍역을 치른 농구계는 2년 만에 유사한 사태가 재발한 데 대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KBL의 기자회견은 농구계를 향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언제까지 경찰의 수사 결과만 기다릴수 없고, 내부적으로 특단의 개혁 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영기 총재는 전창진 감독에 대해 조만간 경찰 수사와 별개로 KBL 자체적으로 감독 자격 심의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불법 도박 근절과 승부 조작을 방지하기 위해 그동안 감독의 고유 권한 혹은 프로 농구의 관행처럼 여겨져왔던 선수 기용 문제에 대해서도 모니터링 제도 등을 도입하며 일정한 기준에 따른 규제를 시도할 방침이다.

사실 농구계에서는 그동안 태업이나 고의 패배 의혹이 빈번했다. 각 구단이 신인 드래프트에서 좋은 순번을 얻기 위해 전력이 떨어지는 팀일수록 노골적으로 패배를 유도해 순위를 낮추거나, 아예 시즌 자체를 포기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만일 초반에 점수 차가 벌어지면 이른바 '가비지 타임'(사실상 승패가 결정된 이후의 남은 시간)을 자의적으로 판단해 무성의하게 경기를 운영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KBL, 특단의 개혁 필요하다

선수층이 얇고 트레이드나 FA를 통한 전력 이동 수단이 제한돼 있는 국내 프로 농구 시장에서 사실상 신인 드래프트가 거의 유일한 선수 수급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규정을 악용한 편법이나 꼼수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벤치의 재량권을 넘어 승부 조작 또는 담합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여지를 초래한 셈이었다.

KBL은 과거에도 불성실한 경기운영으로 의혹을 자아냈던 몇몇 구단들에 대해 공식적인 경고를 한 경우는 있지만, 실질적인 제재 수단이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김영기 총재는 이에 대해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KBL이 내세운 팬 모니터링 제도에 따르면 농구팬이나 전문가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을 구성해 경기를 분석하고 석연치 않은 장면이나 문제의 소지가 발생할 경우, 감독과 해당 구단 측의 설명회를 갖겠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일찌감치 점수 차가 벌어졌다고 해서 자의적으로 경기를 포기하거나, 누가 봐도 작전타임을 불러야할 상황에서 부르지 않고 지나가는 상황 등도 설명회를 요구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물론 이러한 모니터링 제도는 한편으로 현장의 권한을 침해할 수 있다는 부작용도 만만치않다. 강팀이라고 해서 한 시즌 54경기를 치르다 보면 모든 상황에서 100%의 경기력을 발휘하는 어렵다. 때로는 전략적으로 포기하는 경기가 나올 수도 있고, 신인이나 백업들을 투입해 기회를 줘야 하는 상황도 나올 수 있다. 선수단 내 불화나 전술 실험 등 외부에 함부로 드러내기 어려운 팀 내부만의 기밀도 있을 수 있다.

만일 전체적인 시각에서 보지 못하고 그날 그날의 경기만 놓고 석연치 않은 부문을 일일이 걸고 넘어지다 보면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 될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 당장 감독들의 고유 권한이 엄청난 제약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팀 내부 사정에 대해 빈번하게 해명을 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농구계로서는 KBL이 왜 이런 식의 고육책까지 들고 나올 수밖에 없는지 그 배경에 대한 반성이 먼저다. 그만큼 한국 농구계와 농구인의 투명성에 대한 대중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프로 농구가 이 정도까지 몰락한 데는 결국 한국 농구계 특유의 '패쇄성'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고의 패배, 태업, 판정 시비 등 각종 부정적 이슈가 터져나올 때마다 농구인들은 관행이나 내부 사정이라는 변명으로 합리화 해왔다.

어느 집단이든 폐쇄적인 조직일수록 사회의 보편적인 상식보다는 자기들 조직 내에서는 통용되는 '그들만의 룰'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팬들이나 외부의 시선에서 볼 때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져도, 농구인이 정작 죄책감이나 문제의 심각성에 대하여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13년 프로 농구계를 강타한 신인 드래프트 논란과, 현직 감독의 승부 조작 파문도 알고보면 하나 같이 농구계에 보편적으로 만연한 '관행'이라는 이름의 독버섯이 만들어낸 도덕불감증에서 비롯됐다. 바로 자신들이 '전문가'고 한국 농구에 대해서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해온 농구인들의 매너리즘과 독선이, 바로 지금 한국 농구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낸 일등공신인 셈이다.

결국 지금의 한국 농구는 팬들이나 외부의 영향이라도 빌려 '감시'하지 않는한, 스스로의 힘만으로 자정이 가능한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규제가 현실로 도입될 경우, 물론 시행착오와 현장의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시도라도 해보는 것이 차선으로 보인다. 규제의 기준과 범위는 천천히 수정해 나가도 늦지 않다. 그동안 한국 농구계의 위기를 경고하는 신호는 수도 없이 나왔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개혁할 시기를 놓친 것은 농구인들의 자업자득이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개적인 문제 제기과 강제성을 갖춘 수단이 아닌 이상, 농구계가 최소한의 진정성있는 변화도 보여주지 못하는 집단이었다는 역사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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