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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진 선생님은 평생 사업가로 국내외를 오가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농막에 은일하는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내수진 선생님은 평생 사업가로 국내외를 오가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농막에 은일하는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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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주 갈현리 언덕에서 공릉천쪽을 내려다보면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제2자유로라고 하는 357번 도로가 그 들판을 갈라놓아 예전처럼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모를 내고 추수를 하는 농촌의 일상이 펼쳐지는 들판입니다.

너른 갈현리 들판이 새로난 도로로 나뉘어졌지만 여전히 농촌의 서정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너른 갈현리 들판이 새로난 도로로 나뉘어졌지만 여전히 농촌의 서정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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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들판 초입에 농막이 하나 있습니다. 산황농장입니다. 이 땅의 주인은 이곳에 갖은 농작물을 심었습니다. 상추와 치커리, 케일 등 쌈채소는 물론, 오이와 토마토, 수박과 참외 등 가짓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작물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산황농장에는 갖가지 채소들이 앞 다투어 자라고 있습니다.
 산황농장에는 갖가지 채소들이 앞 다투어 자라고 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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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막 초입에 열병하듯 서 있는 것은 옥수수입니다. 벌써 키가 어른 키를 훌쩍 넘어선지 오래입니다. 앞쪽 옥수수는 풋옥수수가 여러 개 달렸습니다. 뒤쪽 옥수수는 아직 옥수숫대만 무성합니다.

농막입구에 열병하듯 서있는 옥수수대
 농막입구에 열병하듯 서있는 옥수수대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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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황농장의 주인인 내수진 선생님은 이 고장 토박이로 선친으로부터 적지 않은 땅을 물려받았지만 농사 대신 대처의 삶을 택했습니다. 

평생 사업을 해온 분으로 중국에서의 사업을 마지막으로 이곳 농장에서 채마밭을 가꾸는 은 일을 택했습니다. 

중국에서는 공자의 고향인 산둥성(山東省) 취푸(曲阜)에서 수백 명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대형 식당을 경영했었습니다.

수십 년의 노정을 뒤돌아보면 큰돈을 얻기도 했고 그만한 돈을 잃기도 했습니다.

귀국 후 몇 해를 농막에서 은거하니 이 보다 더 좋은 세월은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2 

내 선생님이 부지런히 씨를 뿌리고 밭의 김을 매는 이유는 수확 농산물을 팔아 환금을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채마밭이 초록색을 띠기 시작하는 초여름부터 늙은 호박을 수확하는 늦가을까지 제철로 수확되는 이 모든 텃밭작물들은 모두 현장에서 소비되거나 종이백에 담겨 농장을 방문한 이웃들의 손에 쥐어집니다.

비닐하우스 농막 옆에는 홀로지은 두 평짜리 원두막이 있습니다. 여름에는 하루에 지인들 두세 팀이 다녀가기도 합니다. 농막을 방문하는 분은 삼겹살 두어 근을 들고 옵니다. 농막주인은 쌈채소를 바로 수확해 씻어둡니다.

산황농장에서 바로 수확한 쌈채소들
 산황농장에서 바로 수확한 쌈채소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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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은 동네 주부, 직장인, 사업가, 문화예술인 등 딱히 성향을 분류하기가 어렵습니다. 

안부차 방문이 삼겹살 파티로 이어지고, 두어 시간 함께 말을 섞다보면 온갖 사는 이야기부터 은퇴 후 계획까지 쏟아지기 마련입니다.

한 건축가가 시인과 가수와 어울려 유랑단을 만들어 전국 오지를 순회하며 동네공터에서 공연을 하는 얘기며 빈터에 된장독을 들여 장독대를 만들어 봄이 어떠냐는 얘기까지….

원두막이 어떤 때는 인문학당이 되고 어떤 때는 농사법 강의장이 되기도 합니다. 힘든 일에 조언을 주는 인생 클리닉이 되기도 하고 좋은 일을 축하해주는 파티장이 되기도 합니다.

말수가 적은 주인은 늘 뒷전에서 쌈채소 씻는 일을 도맡아하곤 합니다. 그리고 수다쟁이 방문객들이 자리를 뜰 때면 종이봉투에 남새를 담아 내밉니다. 함께 오지 못한 사람의 쌈거리와 국거리로 전하라는 뜻이지요.

석양이 깔리는 때에 일행들이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다시 농막입구의 옥수수 열병 길을 걸어 나오며 들어갈 때 가졌던 의문에 대해 물었습니다.

"이 옥수수는 열매를 달아서 옥수수수염이 이미 말라가는데 이 녀석은 아직도 풋옥수수도 달지 않았네요?"

이미 옥수수수염이 말라가는 올된 옥수수와 아직 키를 키우고 있는 뒤쪽의 옥수수
 이미 옥수수수염이 말라가는 올된 옥수수와 아직 키를 키우고 있는 뒤쪽의 옥수수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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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연을 아는 일행이 주인을 대신해 답했습니다.

"파종시기가 달라서 그렇습니다. 수확시기를 며칠만 지나도 옥수수는 알맹이가 딱딱해져서 쪄먹을 때 맛이 없어요. 그래서 손님이 올 때마다 적기에 수확한 가장 맛있는 옥수수를 맛보게 하려고 일주일씩 지연시켜 씨를 심었대요."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내수진, #산황농장, #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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