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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인 5월 18일,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정계 은퇴를 표명했다. 5월17일 진행된, '오사카시 폐지안'에 대한 주민투표 결과에 승복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 언론의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담담히 주민투표 패배 사실만 전하는 기사부터, 막말 정치인에게 시민들이 심판을 내렸다는 내용의 칼럼까지 나왔다.

하지만 다양한 반응 속에도 공통점은 하나 있었다. '주민투표는 인기가 하락한 하시모토가 인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는 분석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에 밉상을 보인 정치인이 주민들에게까지 버림받았다는데 싫어할 한국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은퇴에만 초점을 맞춰 기뻐하기엔 이르다. 5.17 주민 투표가 함의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당시 일본의 분위기를 생각해보자. 오사카시 주민투표 결과를 바라보는 일본의 분위기는 한국이 생각하는 것과 사뭇 달랐다.

하시모토의 은퇴 회견 소식을 전한 일본 뉴스 댓글에는 '아직 젊으니 정치가로서 계속 일했으면 한다', '투표에서 한 번 졌다고 은퇴하는 건 지지하는 시민을 저버리는 행위다' 같은 댓글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막말 정치인의 실패나, 주민들에게 버림받은 것이라고 보기엔 어려운 분위기다.

이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일본에서 벌어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5.17 오사카시 주민 투표는 세대 갈등이 '터져버린' 선거였다. 한 달하고도 10여일이 지난 지금, 타국에서 벌어진 선거의 의미를 굳이 짚어보는 건 이 때문이다. 오사카시 주민 투표가 함의하는 바는, 지금의 대한민국에게도 유효하다.

70대 이상의 선전포고

주민 투표 결과가 전해지고, 미즈노 후미야 전 지바현 의원은 <허핑턴 포스트>에  '70대 이상의 선전포고'라는 글을 기고했다. 오토키타 도쿄도 의원 역시 기고문에서 '실버 민주주의에게 패배한 오사카도 구상'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이런 표현이 나오는 이유는 하나다. 투표 전 연령대에서 오사카도 구상에 반대한 연령대는 70대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붉은 색이 오사카시 구상을 반대, 푸른 색이 찬성이다. 70대 이상과 50대 여성을 제외하면 찬성의견이 과반을 넘는다.
▲ 오사카시 주민투표 출구조사 붉은 색이 오사카시 구상을 반대, 푸른 색이 찬성이다. 70대 이상과 50대 여성을 제외하면 찬성의견이 과반을 넘는다.
ⓒ 요미우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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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에서 드러나 듯 오사카도 구상에 과반이상이 반대를 표한 건 70대가 유일했다. 50대 여성층도 과반에 조금 못 미치지만(49.6%) 70대의 압도적인 반대율을 따라가진 못한다. 게다가 반대와 찬성은 약 1300표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결국 젊은 층부터 중장년층까지, 거의 대부분의 세대에서 두드러진 찬성 여론이, 70대의 반대에 허물어진 셈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70대 이상만 오사카시 주민 투표에 반대했던 것일까.

이중행정을 폐지하고, 오사카 경제를 살리자

70대의 반대 이유를 생각해보기 전에, 우선 '오사카도 구상'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오사카도 구상은 간단히 말해서 오사카시를 해체하고, 오사카부에 합치자는 주장이다. 오사카시는 상위 단위인 오사카부에 속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오사카부 자체가 그렇게 큰 지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오사카부는 일본에서 두 번째로 면적이 작은 지역이다. 게다가 나눠진 오사카시 자체도 다시 24개의 자잘한 구로 나뉘어 있다.

그런데 자잘하게 쪼개지는 건 면적 뿐만이 아니다. 예산도 행정 지역을 따라 다시 자잘하게 나뉜다. 결국 규모가 큰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워진다. 자연스레 기간산업같은 큰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워진다. 하시모토는 이 자잘하게 나뉘어진 행정 단위를 오사카 경제의 침체되고 있는 원인으로 지목한다.

실제로 오사카 지방의 경제 사정은 계속 침체되어가고 있다. 오사카에서 시작한 기업들의 본사가 잇달아 도쿄로 옮겨가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버블시대인 1980년대에 비해 오사카 지방의 기업체 수는 1/5이 줄어들었다.

때문에 하시모토는 오사카 시를 해체하고, 예산을 일원화해 기간산업에 집중투자하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하시모토는 2011년 오사카 부지사를 사임하고, 그해 11월 오사카시 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리고 자신의 측근을 오사카 부지사 선거에 출마시켜 당선시켰다. 오사카도 구상은 인기 하락을 잡기 위한 포퓰리즘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추진해왔던 하시모토의 계획인 셈이다.

큰 틀에서 보면 오사카도 구상은 지자체의 이중행정을 타파하는 '구조 개혁'에 해당했다. 아베 총리가 오사카도 구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것도,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이 구조 개혁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문제다. 때문에 5월 17일 전 일본의 관심은 오사카시 주민투표에 향해있었다.

인구수와 투표율로 지켜낸 기득권

그런데 여기서 70대들이 반기를 든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오사카시가 오사카부와 통합되면, 기존 오사카 시에서 받았던 노인 대상의 복지 제도가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오사카부와 통합하는 과정 초기에 드는 적자 때문이기도 했다.

자민당을 비롯한 반대파들은 이런 노년층의 반대 심리를 읽고 주민선거 반대를 주장했다. 결국 70대 이상의 집결로 오사카시 주민투표는 부결됐다. 70대 이상의 노인층에겐 다른 세대에겐 없는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인구와 투표율이다.

일본의 60세 이상 노인 유권자의 비중은 2010년 기준 약 38%다(조선일보 "고령자 복지만 내놓은 일본" 2012.11.27). 오사카 시의 경우는 좀 더 심하다. 작년 기준으로 약 227만 명이 거주하는 오사카 시에서 50만 명이 넘는 사람이 70대 이상이다. 20대는 약 32만 명이다.

투표율 역시 고령층이 압도적으로 높다. 작년에 시행된 제 47회 중의원 선거에서 70대 이상의 투표율은 약 60%였다. 20대의 경우에는 최저인 약 33%였다. 인구와 투표율이 압도적이니, 젊은 세대의 발언이 투표로 반영되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는 실버 민주주의의 '선전포고'가 오사카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대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일본의 정치인들은 '실버' 표를 의식하며 정책을 펼쳐왔다. 대표적인 게 노인층 의료비 부담이다. 2006년 자민당은 2008년부터 70~74세 연령대의 의료비 부담을 10%에서 20%로 올리겠다고 결정했던 바 있다. 하지만 발표 직후 벌어진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했다. 결국 시행하기로 했던 2008년이 되자 의료비 부담 인상은 없던 일이 되었다.

현재 불거지고 있는 연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연금은 물가 수준에 연동해 증감되는 구조를 갖는데, 1999년 당시 자민당 정권이 고령자 배려라는 이유로 3년 간 연금 지급액을 특례로 낮추지 않은 전례가 있다. 이 특례는 2013년 까지 유지되었는데, 최근 연금이 감액되자 전국연금수령자 협회의 1549명은 생활권을 보장하라며 13개 지방법원에 일제히 제소했다. 그 탓인지 일본 젊은층의 국민연금 납부율은 20~24세 기준 20%대에 머물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종료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일본은 3명의 젊은이가 1명의 노인을 부양하는 형태다. 2022년이 되면 2명의 젊은이가 한명을 부양하게 된다. 실버 민주주의 경향이 심해지면 심해졌지 줄어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일본에 비한다면 한국의 상황은 당장은 양호한 편이다. 아직은 노인 세대를 충분히 부양할 여력이 있다. GDP 대비 국가부채도 40%대로 비교적 안정권이다. 하지만 인구구조를 살펴본다면 한국도 일본의 뒤를 따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표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듯, 조만간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연령대가 경제 활동에서 은퇴하게 된다.
▲ 2015년 한국의 인구구조 표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듯, 조만간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연령대가 경제 활동에서 은퇴하게 된다.
ⓒ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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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10~15년 뒤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 수가 많은 집단이 경제활동에서 은퇴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을 받쳐줄 젊은 세대의 수는 점점 감소하고 있다. 특히 15세 이하부터 인구가 급격하게 줄고 있다. 15세인 2001년생이 57만명으로 줄어들고, 2002년생은 50만명이다. 이후부터는 매년 43~45만명의 신생아가 태어나고 있다. 만일 10년 뒤 지금의 50대와 10대의 의견이 부딪치는 현안이 생긴다고 가정한다면, 정치인들이 어느쪽의 눈치를 볼지는 자명한 일이다.

물론 노인층의 인구 수나, 적극적인 투표 참여가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에 참여하는 것은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높은 투표율은 그만큼 시민의식이 투철하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특정 연령의 발언권이 너무 세진다면 그건 그 나름대로 민의를 왜곡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청년 세대를 지원하는 정책은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지만, 고령화가 심각할 경우 청년 세대는 강력한 표를 갖고 있는 고령층보다 후순위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청년 세대가 출산과 경제활동의 주동력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들을 지원하는 문제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때문에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닥쳐올 기형적인 인구구조를 보완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독일의 청년위원회는 참고할 만한 사례다. 독일의 청년 세대는 청년위원회를 조직할 수 있고,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권한도 갖고 있다. 이처럼 청년, 그리고 미래 세대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정책을 고민하는 것이 시급하다. 장기적으로는 젊은층의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것도 중요하다. 인구 수가 적다고 해도 높은 투표율을 보인다면 정치인들이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될 것이 분명하다.

흔히 일본을 한국의 10년 뒤라고 부른다. 일본 사회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한 건 이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오사카시 주민 투표와 하시모토 은퇴는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한국의 미래를 막말 정치인으로 빈축을 샀던 하시모토지만, 일본 사회에 실버 민주주의에 대한 위험을 경고했다는 점에서 그의 퇴장은 의미가 있다. 한국의 10년 뒤에는 지금의 일본과 같은 세대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태그:#실버 민주주의, #일본, #오사카시 주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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