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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찾은 오사카성(大阪城)의 아침. 나는 이른 아침 시간에 오사카 시민들과 함께 오사카성을 차분히 산책하고 있었다. 오사카성의 텐슈가쿠(天守閣)로 들어가는 정문인 사쿠라몬(櫻門) 앞에서 보니 오사카성에 비하면 규모가 작다고 할 수 있는 한 신사(神社)가 보인다.

오사카성이라는 유명세의 관광지에 비해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신사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많이 미치지는 않는 곳이다. 일본 신사의 입구를 지키는 도리이(鳥居)에 아침 햇살만이 비스듬히 비치고 있었다.

이 신사의 이름은 호코쿠 신사(豊國神社).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와 함께 그의 동생 도요토미 히데나가(豊臣秀長), 그리고 그의 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豊臣秀頼)를 제신(祭神)으로 기리는 신사다. 일본의 107대 일왕인 고요제이 일왕(後陽成天皇)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호코쿠다이묘진(豊國大神明)이라는 신호(神呼)를 내려주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신으로 모셔지게 됐고, 신호에 따라 호코쿠 신사라고 불리게 됐다.

이 신사는 한국 사람이라면 편한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을 신으로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태평양전쟁의 전범도 추모하는 나라이니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했든 말든 자신들에게는 중요한 신으로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이 신사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복을 기원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신사 안으로 들어가 보니 외국에서 온 관광객은 보이지 않고 오사카 시민들이 많았다. 일본 사람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자수성가해 천하를 평정한 영웅으로 숭배하기 때문이다. 일본인 중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는 일본 전국시대의 전쟁 당시 기발한 전략을 세운 후, 집요한 끈질김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일본을 통일한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이 신사를 찾는 일본인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으로 인해 조선 사람들이 받은 고통에는 관심이 없고 그의 개인적인 성공 스토리에만 관심이 있어 보인다.

거대한 도리이 너머에는...

호코쿠 신사 도리이 신의 세상과 인간 세상의 경계를 나타낸다.
▲ 호코쿠 신사 도리이 신의 세상과 인간 세상의 경계를 나타낸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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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코쿠 신사 입구에도 다른 일본 신사에 세워져 있는 석제 도리이(鳥居)가 육중하게 서 있다. 이 도리이는 일본 신사에서 세속의 세계에서 경계를 넘음으로써 신의 영역에 들어서는 상징이다. 이 신사에서 신은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그러니까 이 도리이를 넘으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신을 만나러 가게 되는 것이다. 일본은 세속적으로 성공한 인간들을 모두 신으로 만들어버리는 나라이니 일본의 종교는 간편하기도 하고 이해하기 힘든 면도 많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동상 왜소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몸을 더 커 보이게 만들었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 동상 왜소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몸을 더 커 보이게 만들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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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육중한 도리이 너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동상이 가운데서 사람들을 맞는다. 사실적으로 묘사된 옷과 신발, 그리고 그의 표정이 눈길을 확 잡아끈다. 자갈이 정갈하게 깔린 신사의 마당에 서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앞을 노려보며 서 있다. 왼편에 차고 있는 칼을 손으로 움켜쥐고 있는 모습에서 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일본 사람들은 이 동상에서 상당한 카리스마와 위엄을 느낀다지만 내가 보기에는 인상 참 고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동상은 체격이 아주 왜소했다고 전해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덩치도 크게 만들고 위엄있는 모습으로 묘사해놨다. 동상의 바로 밑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올려다보면 아주 커 보이지만 조금만 발길을 멀리 해서 신체 비례를 다시 보면 아주 왜소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그가 모시던 무장(武將),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원숭이'라는 별명으로 불렀을 정도로 아주 왜소한 사람이었다. 대머리에 얼굴도 아주 못생겼었다고 전해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왜소한 외모에 대해서 큰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빈농으로 태어난 미천한 자신의 출신성분 때문에도 강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신분이 미천한 자신이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통일 후 여러 장수들의 불만을 해외로 돌리기 위해 조선 침략을 지휘했을 것이다.

조선의 수많은 무고한 목숨들을 죽이고 조선의 경제를 몰락시킨 인간의 동상이 이렇게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못내 불편하기만 하다.

도요토미 가문 문장 도요토미 가문을 나타내던 이 문장은 현재 일본정부의 문장이 되었다.
▲ 도요토미 가문 문장 도요토미 가문을 나타내던 이 문장은 현재 일본정부의 문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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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코쿠 신사의 본전 앞으로 걸어가니 그 앞에 도리이 하나가 더 서 있다. 도리이의 아랫부분을 보니 도리이의 두 기둥 앞에 도요토미 가문의 노란색 오동나무 문장(紋章)이 걸려 있다. 이 문장은 일본 돈 500엔 짜리에도 박혀 있는 문장이기도 하다.

일왕이 왕실에서 신성시하던 오동나무 문장을 도요토미 가문에 내렸고, 근대 일본의 메이지 정부 이후 일본 정부에서도 사용하게 된 문장이다. 임진왜란 당시 침략의 총본산에서 휘날리고 있었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문장이 현대 일본정부에서 사용하는 문장이 됐다고 하니 기분이 찜찜하기만 하다.

출세를 비는 사람들

신사 본전 본전 건물 안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 아들의 위패가 세워져 있다.
▲ 신사 본전 본전 건물 안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 아들의 위패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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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녹색 본전의 지붕은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었다. 신사의 본전 내부를 들여다보니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의 아들의 위패가 함께 세워져 있다. 진한 갈색의 목재로 꾸며진 제단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만들어져 있다.

신전 안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신(神)'이라는 이름으로 경배되고 있다. 그동안 자주 보아온 일본의 신사지만 인간을 신으로 받드는 일본인들의 문화는 언제나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출세 기원 함께 온 한 아버지와 딸이 출세와 소원을 빌고 있다.
▲ 출세 기원 함께 온 한 아버지와 딸이 출세와 소원을 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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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전 안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신전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어린 딸과 산책 나온 젊은 아버지가 딸에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훌륭한 신이니 너도 이 신에게 기도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출세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신사 안에 반려견까지 데려온 이 아버지는 어린 딸과 신전 앞으로 다가오더니 합장하며 기도를 올린다.

기원하는 어린이 출세를 기원하는 어린이의 모습을 아버지가 사진에 담고 있다.
▲ 기원하는 어린이 출세를 기원하는 어린이의 모습을 아버지가 사진에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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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사에는 자식들의 성공과 출세를 '도요토미 히데요시' 신에게 기원하는 아버지들이 계속 찾아온다. 조금 후에는 어린 아들을 데려온 한 아버지가 아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 신에게 기도하며 복을 구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있다. 이 아버지는 아들이 무럭무럭 커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이 '성공한 남성'이 되길 바랄 게다.

상업의 도시 오사카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직을 발전시키는 리더십을 가진 리더이자 성공과 출세의 신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 그래서 이 신사는 아직 출세의 꿈을 꾸고 있는 어린 아이들을 출세시키고자 하는 부모들이 아이들과 자주 찾는 곳이 됐다.

에마와 오미쿠지 신사 내에는 자신의 소원을 비는 기원들이 가득 걸려 있다.
▲ 에마와 오미쿠지 신사 내에는 자신의 소원을 비는 기원들이 가득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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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마당 안에는 소위 출세를 바라는 사람들의 기원이 여기저기에 담겨 있다. 개인의 길흉을 점치기 위해 뽑는 제비인 오미쿠지(おみくじ)도 신사의 본전 앞에 주렁주렁 걸려 있다.

흰 줄에 걸려 있는 오미쿠지가 마치 하얀 꽃 여러 송이가 핀 것 같이 모여 있다. 제비를 뽑았을 때에 나쁜 점인 흉(凶)이 나왔을 때에 이렇게 오미쿠지를 접어서 걸어두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복을 빌러 온 사람들이 나쁜 점에 실망하고 오미쿠지를 걸어두고 갔을 것이다.

오미쿠지 위에는 개인의 사랑과 행복을 기원하는 나무판인 에마(繪馬)도 한 가득 걸려있다. 다행히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소원을 비는 한국인은 없었는지 한국어로 소원을 적은 에마는 없다.

경배받는 '침략의 아이콘'... 불편하네

‘출세개운’ 에마. 출세를 비는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 신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출세개운’ 에마. 출세를 비는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 신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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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전 왼편에는 어느 신사에서도 보지 못했던 큼지막한 에마(繪馬)가 걸려 있다. 2015년을 상징하는 양의 그림과 함께 출세와 좋은 운을 바라는 '출세개운(出世開運)'이라는 글자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가지고 있던 출세의 운을 받아보고자 하는 일본인들의 기도가 담긴 에마다. 출세에 효험이 있다는 이들의 막연하고 미신같은 믿음은 지금도 많은 일본인들을 이 신사에 불러 모으고 있다.

일본인들은 출세를 하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 외국을 침략하며 무수한 인명을 살상했던 인물이 출세하고 정상의 자리에 오름으로써 일본인들의 숭배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출세한 사람의 이력은 따져보지 않는 건지, 전쟁으로 인한 살인은 용서되는 건지, 무조건 성공만 하면 다 미화되도 좋은 건지에 대한 고찰은 없어 보인다.

오직 출세지향주의 속에서 출세만을 위해 기도하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이 불편하기만 하다. 아무리 개인의 복을 기원하는 신사이지만 한국인들에게는 마음이 편치 않은 곳이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00 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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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