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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성검사는 최근 10년간 대기업 채용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1995년, 국내 대기업 최초로 인·적성검사를 도입한 삼성의 SSAT를 필두로 많은 기업들이 기존의 지능검사를 변형한 인·적성검사를 개발해 채용 전형에 활용하고 있다. 학력·성별·지역 등과 상관없이 취업준비생에게 대기업 입사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시작된 채용 전형 방식이다. 학력 제한이 심했던 당시의 풍토를 고려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채용 방식이기는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최근에는 이를 가르치려는 취업 사교육 시장이 성행하게 되었다. 잡코리아가지난 4월 발표한 '취업 사교육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1.8%가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취업 정보를 얻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지난달 기준 교보문고의 수험서 전체 베스트셀러 또한 인·적성검사의 문제집이 1, 2위를 다투고 있다. 많은 대기업에서 인·적성검사를 시행하고 있는 탓에 취업준비생들은 취업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인·적성검사도 국어, 영어, 수학처럼 배우면 실력이 느는 것일까.

아무리 공부해도 제자리걸음

삼성직무적성검사인 SSAT는 SamSung Aptitude Test의 약자로, 삼성그룹이 채용을 위해 실시하는 직무 적성 검사이다. 현재 취업 삼수생인 이현호(28, 가명)씨는 두 번의 SSAT 시험을 치렀다. 그는 대학교 기말고사를 준비하듯 열심히 공부하기 위해 인터넷 강의도 신청했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18일간 8시간씩 공부했지만 헛수고였다. 그는 "이 시험은 공부를 열심히 해도 늘지 않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음 상반기 시험은 준비를 하나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달랐다. 시험 당일까지 문제집 한 번 보지 않았지만 합격했다.

SSAT의 세부 과목인 '공간지각력'이 약했던 이다희(27)씨 또한 인터넷 강의를 신청했다.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1000문제 가량을 풀었지만 그녀의 '공간지각력' 점수는 제자리걸음이었다. 하나도 늘지 않는 공부를 하며 시간과 돈은 허비한 셈이다.

수많은 대기업의 적성검사는 웩슬러 지능 검사(IQ)라는 실제 임상 현장에서 사용되는 지능검사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서는 사람의 지능을 유동지능(선천적)과 결정지능(후천적)으로 나누고 있다. 대기업 적성검사에서 요구하는 공간지각력, 도식적 추리, 시각적 사고 등은 선천적 지능인 유동지능에 속한다.

애초에 선천적 영향이 큰 지능의 향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기댈 곳이 없는 청년들은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익숙한 사교육 시장에 눈을 돌린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취업 사교육 시장은 바로 이 점을 노렸다. 청년들의 불안감을 담보로 삼은 것이다.

이현호씨는 "제 값을 못하는 것 같지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남들보다 뒤처지진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움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기업이 원하는 인성 맞추기

인성이란 한 개인의 생활 방식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지속적이고 일관되며 독특한 심리 및 행동 양식을 뜻한다. 대부분의 대기업 인성검사는 MBTI성격 유형 검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MBTI는 개인의 성격적 특성과 행동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돕는 검사로, 심리학 현장에서 널리 사용되는 성격 유형 검사 도구이다. 한국MBTI연구소에 따르면, 검사를 다루기 위해선 석사 이상의 전문가 수준의 학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인성 문제집을 공부하면 마치 MBTI검사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을 듯한 책들이 시중 서점에 성행하고 있다.

회사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 가령 '과장님이 지시한 중요한 일과 부장님이 지시한 다소 중요하지 않은 일 중 어떤 일을 먼저 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이다. 실제로 자신의 주관에 따라 '중요한 일'이 더욱 다급하기에 과장님이 지시한 일을 먼저 할 것이라고 답할 수 있다. 이것은 개인의 성격이 반영된 답이다. 하지만 보수적인 조직문화를 선호하는 기업이라면 직급이 더 높은 '부장님 일'을 선택하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취업준비생들은 기업이 좋아할만한 인재상을 상상하며 '나' 자신을 왜곡시켜야 한다.

"불합격의 이유가 제 인성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억울하다. 내가 살아온 인생 방식도 스펙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인적성검사 단계에서 탈락한 경험이 있는 대학생 이소미(25)씨는 사유를 알 수 없는 탈락에 억울해했다.

흔히 사교육의 목적이라 함은 부가적인 돈과 시간을 투자하여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있다. 사교육도 교육인 만큼 실력 향상을 위한 '쓸모 있는 교육'을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인적성 사교육 업체의 고객은 청년 실업률이 최고조에 이른 현재,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취업준비생이다. 청년들의 돈을 받아가며 향상시키기 힘든 선천적 지능을 가르친다면, 그것이 과연 참된 교육일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박세웅 시민기자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http://seoulyg.net) 대학생기자단입니다.



태그:#취업, #청년, #인적성검사, #취업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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