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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텔레비전은 '올드미디어'라는 말이 일찍부터 제기되어 왔다. 특히, 디지털 다매체 시대가 되면서 젊은 층들의 콘텐츠 소비는 웹이나 모바일로 급격하게 이동하는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즉, 올드미디어의 반대 지점에는 뉴미디어가 있을 곳이고, 그것은 디지털 미디어를 가리킨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어 보였다.

이러한 지적들은 거꾸로 방송 매체의 변화를 자극하기도 했다. 젊은 층들을 적극적으로 껴앉으려는 시도가 바로 그것이다. 새로운 소재의 형식과 소재의 트렌디 드라마를 강화하거나 아이돌 스타들을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는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종편의 출범으로 깨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상파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종편이 처음 출발할 때만해도 텔레비전을 올드 세대의 매체로 특화하려고만 하지는 않았다. 예컨대, MBN은 젊은 층들을 겨냥한 프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TV조선의 경우에는 아예 젊은 층들을 고려한 프로그램은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MBN은 예능프로그램에서 젊은 세대의 기호와 감각, 취향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젊은 개그맨들을 선발하거나 다른 지상파나 케이블에서 시도하지 않는 시트콤(예컨대, 뱀파이어 아이돌)도 제작했다. 케이블 방송에서 추구하던 감각적인 포맷이나 소재를 적극 품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점점 TV조선의 기조대로 흘러갔다. 왜 그러했을까. 케이블은 초기에 제작비나 노하우가 없었기에 선정적인 소재나 말초적인 내용을 통해 논란을 일으키면서 주목을 끌어갔다. 새로운 시청자층을 확보하기 위해 점차 젊은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특히, 제작 프로그램이 웹에서 화제가 많이 되고, 그것이 시청율을 견인할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갔다. 비록 시청율은 낮아도 강력한 마니아적 특징을 담아내어 충성도 높은 시청층을 확보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본래 시청률이 높으면 웹에서는 크게 화제가 안되는 법이다. 이 때문에 CJ E&M 는 방송프로그램의 평가기준으로 시청률이 아니라 '콘텐츠 파워지수'라는 것을 만들기도 했다. 이런 점은 젊은 세대의 선호 방식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궤도에 오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더구나 그들의 콘텐츠 소비 패턴은 다양했다. 어떻게 보면 종잡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듯했다.

이런 상황에서 출발한 종편은 그들의 말대로라면, 상대적으로 시간과 여력이 없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엉성한 상황 속에서 종편은 멀리보고 길게 가는 것이 아니라 손쉬운 방법을 선택했다. 즉, 기성세대를 적극적으로 끌어올 수 있는 소재와 내용을 가져왔다. 저렴하게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다. 우선 보수적인 편향의 정치시사토크프로그램을 전방위적으로 만들었다. 제작비를 저렴하게 들인 논객 토크나 특정인물을 인터뷰하는 방식은 주로 올드 세대의 관점에 초점이 맞춰졌다.

정치적으로나 이데올로기 관점에서 편중되는 내용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논조나 방향성 면에서 세대 배제의 특성이 매우 강했다. 새로운 세대의 행태는 관심사항이 아니며, 다룬다고 해도 문제점이 불거질 때, 그것을 더욱 부각 시켰을 뿐이다.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출연자는 거의 전무했다. 새로운 사회변화의 흐름보다는 과거의 사실이나 인물을 적극 부각시켰다. 물론 그 관점도 그에 부합하려 했다. 이에 무엇보다 그들은 올드 세대의 세계관을 강화 증폭시켜주는 기능에 충실하려 했다. 그렇게 해야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어차피 웹 상에서 많은 화제를 낳는 것이 시청율에 영향을 주지도 않을 뿐더러 광고 시장에서도 유리한 점도 없었다. 당장에 시청률 성적표를 통해 돈을 벌어야 했다. 특히, 종편은 이런 프로그램은 낮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배치했다. 또 반복적인 재방의 비율을 높여서 올드 시청자들을 확장시켰다. 소재와 내용 그리고 포맷은 낮에 텔레비전 매체를 시청하는 올드 세대들에게서 정확한 타켓 효과를 낳기 시작했다. 반응이 일어나게 되면서 지상파에서도 이 시간대에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편성되었다.

이로써 새로운 시대적 변화의 흐름에 맞게 방송 프로그램이 달라지는 모습들이 순간 과거로 회귀해가는 분위기가 형성돼 버렸다. 올드 세대들은 이에 맞추어 자신들의 신념과 가치관을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갔다. 상호 시너즈 효과 즉 상호 강화 효과를 낳았다. 이러한 양상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반복되어 버렸다. 이는 세대간의 콘텐츠 소비에서 분리와 고착화로 이어졌다.

종편의 예능 프로그램은 주로 올드세대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건강, 가족, 재테크, 복고추억에 관한 프로그램을 대거 선보였다. MBN '황금알'이나 '천기누설', TV조선 '만물상'과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 일어났다. 집단 토크 쇼의 내용이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초점이 맞춰졌다. 전체적인 공동체의 방향성보다는 자신 개인의 생존에 초점이었다. 의학 지식이나 건강 보조식품에 대한 부각은 쇼닥터들의 활동을 더욱 증대시켰다.

쇼닥터들의 증명 안된 의학이론은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주부를 위한 토크쇼는 부부생활이야기나 고부간의 갈등, 자녀 교육에 꽂혔다. 무엇보다 패널 가운데 젊은 층은 거의 없으며, 있어도 제대로 자신들의 견해를 밝힐만한 기회도 많지 않았다.

결혼을 하지 못한 할 수 없는 이들의 고민은 끼어들 여지도 없었다. 취업이나 고용에 관한 고민도 시니어 세대에 맞춰졌다. 각광받는 게스트의 태도는 어떤 것보다도 살아온 경험이나 현실이 중요했다. 심지어 시니어 게스트들은 자신의 경험에 따른 노하우를 앞에 내세워 상대방을 밀어붙였다.

문제는 태도이기도 했다. 다른 세상살이는 빤하고 순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수동적인 삶의 태도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러한 점은 한참 사회나 가정에서 고군분투하는 젊은 층들에게는 맥빠지게 만드는 내용들이 많게 했다. 이에 젊은 층들은 이러한 프로그램을 외면했다. 이런 면은 지상파 방송사의 집단 토크쇼 '황금연못'과 같은 프로를 제작하게 만든 배경이기도 했다. 기성세대를 대변하는 패널들이 가족 상담을 집단 토크쇼 형태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솔루션 프로나 다큐 프로그램의 양상도 바뀌었다. 이전에는 난치병 어린이를 돕는 프로그램이나 이를 적극 부각시키는 다큐가 많았지만, 이제는 노년층 부부의 이야기가 대폭 증가했다. 전체적으로 젊은 층들의 고민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물론 무조건 비틀어볼 필요는 없다. 그동안 기성세대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소재와 내용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했기 때문에 결국 방송에서 비켜 있던 시청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준 면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비어 있는 틈새를 적극적으로 파고 들어갔다.

하지만 편중된 내용과 소재, 세계관으로 세대간의 오해와 갈등의 소지를 증폭시켰다. 변화의 흐름을 적극 반영하기보다는 과거와 경험에 의존하거나 강화하는 패턴에 머물게 했다. 이런 방송 채널만 보고 있으면, 텔레비전은 올드미디어다.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즉, 디지털 모바일 시대의 방송 매체 입지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볼 수는 없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나 '비정상회담'의 경우, 비록 종편방송프로그램이었지만, 젊은 시청자들에게서 많은 지지와 호응을 얻었다. '비정상회담'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모습과 견해들을 통해 우리 사회나 문화에 대한 성찰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었다. 오히려 이러한 방식은 세대 간의 다양한 양상을 드러내주어 통합적인 관점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 제작으로 이어졌어야 했다. 텔레비전 방송이야말로 사회 구성원간의 이해와 소통의 폭을 넓혀야 하지만, 오히려 각 매체의 의도에 따라 그 반대지점으로 향하고 있다.

무엇보다 특정 세대를 겨냥한 단기적 시청율의 확보는 우려 먹기 행태를 강화하고, 방송가 전체를 획일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일단 특정 게스트 그룹이 해당 매체만이 아니라 다른 방송매체까지 휩쓸어 버린다. 이는 보도나 예능 프로그램을 불문하고 일어나는 일이다. 심지어 포맷이나 소재만이 아니라 자막스타일까지 똑같아진다.

0.1%의 시청률이라도 아쉬워할수록 이는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결과와는 관계없이 올드 전략은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역량이 소진된다. 세대통합적인 관점에서 차근차근 돌아가더라도 준비해야 한다. 시간은 지나고 세대의 중심축은 이동해간다. 중심세대로 확장해 가는 것은 젊은 세대다.

방송은 사회의 소통과 통합적 역할과 기능이 있다. 이는 방송효과의 외연을 넓히는 것이기도 하다. 넓힌다는 것은 다양한 시청자를 포괄하는 것이며, 이는 시청률이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단기적인 시청율을 생각한다면 특정 세대와 계층만을 목표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스스로 입지를 좁히는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레드오션에 빠지며 미래의 비전은 없게 된다. 올드미디어라는 프레임에 갇혀 버리면 세대의 소멸과 함께 같이 사라질 가능성이 큰 셈이다. 단기적인 시청률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방송 콘텐츠의 효과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마치 따뜻한 물속에서 편안해하다가 데워 죽는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방송작가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종편, #예능, #세대 갈등,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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