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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사회혁신 공간 데어(there)'는 동그라미재단 지원을 받아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5월까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회혁신 키워드 100'을 선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380여 명이 열린 토론에 참여하는 '사회실험실(오픈랩)' 방식으로 찾은 100여 개 키워드 가운데 일부를 5차례에 걸쳐 <오마이뉴스>에 소개합니다. '신뢰 네트워크'에 이은 그 두번째 키워드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한국인을 위한 '시간 권리' 찾기입니다. [편집자말]
부산 청년유니온은 22일 오전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경영계의 제시한 최저임금 동결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부산 청년유니온은 22일 오전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경영계의 제시한 최저임금 동결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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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을 향한 젊은 사람들의 꿈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과학과 기술, 경영학과 노동조합, 교육과 의학의 발달, 그리고 정치와 정부, 이런 것들이 허리가 휘어지는 고된 노동과 장시간 근무가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 여가와 교육시설, 오락시설이 많아져서 누구나 영혼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공상소설에 나오는 비현실적인 얘기로 들리는가? 아니다. 지금부터 거의 60년 전인 1956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후보 수락을 하면서 연설한 내용의 한 구절이다(브리짓 슐트, <타임 푸어>).

아이젠하워가 제시한 비전은 아마도 60년 전 미국시민들이 가까운 장래에 실현되기를 바랐던 기대와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20세기 중반에 꿈꾸었던, 여가와 놀이로 채워진 일상은 2015년 지금 우리 곁에 과연 와 있는 걸까?

10명 중 4명이 '시간 빈곤'에 빠졌다

불행하게도 지금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일상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희망에 넘쳐 제시했던 이상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주일 시간소비 계산서가 극명하게 그것을 보여준다.

"먹고 자고 씻는 것처럼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은 일주일 168시간 가운데 약 90시간. 그러면 78시간이 남는데, OECD 국가 가운데 우리는 두 번째로 일을 많이 하고, 통근, 통학 시간은 가장 깁니다. 가사일, 육아에 하루 1시간만 써도 이미 시간은 마이너스 상태, 결국 먹고 자는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어 아침은 거르기 일쑤고 수면 시간은 OECD 최저 수준입니다."(2015. 02. 18 SBS 뉴스)

결국 우리들은 지금도 지독하게 시간에 쫓겨서 허덕이는 삶을 살고 있다. 즉 '시간 빈곤'에 빠져 있다는 것인데 이런 사람들이 전체 직장인의 42%인 930만 명이란다. 2014년 기준 연간 노동 시간 2160시간이라는 OECD 부동의 2위(멕시코 1위)인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면 예상 못할 바도 아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과거 경제 개발 연대에 우리는 자원도 기술도 없다면서 오직 국민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의존해서 성장을 해왔던 고통스런 역사적 기억을 갖고 있다. 그때부터 여가와 놀이와 관계를 맺는 모든 생활을 포기하고 오직 24시간을 일만 하면서 살아온 덕분에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어선 OECD국가로 도약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도 여전히 저녁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그럴 만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불어 닥친 기업들의 단기 실적주의 압박은 2만 달러 시대도 여가와 놀이 없는 장시간 노동 체제에 시민들을 속박시켰던 것이다.

심지어 21세기 벽두의 기술혁신을 상징하는 스마트 기기의 등장조차 우리에게 시간 적자를 탈출시키기보다는 거꾸로 '언제, 어디서나' 회사 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족쇄로 작용했을지 모른다.

그렇게 오랜 세월 우리는 일상과 습관과 생각의 구석구석까지 장시간 노동, 여가와 놀이 없는 일상, 일에 파묻혀 사는 삶에 완벽하게 길들여져서, 이제는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유력 정치인이 '저녁이 있는 삶'을 말하자 깜짝 놀란 듯이 잠시 마취에서 깨어나기도 했지만.

사회혁신 키워드 지도 속의 '시간 권리'와 연관 개념들
 사회혁신 키워드 지도 속의 '시간 권리'와 연관 개념들
ⓒ 사회혁신 공간 데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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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에게 시간의 권리 돌려주는 게 진정한 사회혁신

이제는 발상 자체를 바꿔야 할 시점에 온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가 고쳐야 할 하나의 심각한 사회적 질병으로 장시간 노동 시스템을 인식하고, 시민들에게 그들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고 자유롭게 각자의 발전과 자유를 위해 자신만의 시간을 쓸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생활하면서 시민으로서 자신이 쉬고 누울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할 권리로서 '주거권'을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같은 맥락에서, 시민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과 발전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충분히 스스로 통제하고 사용할 '정당한 권리'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시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라는 의미의 '시간 자결권'을 주장하여 100만 회 이상 조회를 기록한 인기 테드(TED) 강사이자 저널리스트 칼 오너리의 주장도 이런 차원에서 볼 수 있다.

이제 시민들이 자신의 휴식과 자신만의 생활, 자신만의 계획을 위해서 최소한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 주려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 태도의 전환, 그리고 삶의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수 년 전 시민들 마음 속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화두는 바로 시간 권리가 우리 국민들에게 잠재된 얼마나 큰 열망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시간이야말로 진정 유한하고 재생 불가능한 자원이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계속 '시간 권리'를 희생한 대가로만 경제적 발전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모두가 원하는 바람직한 미래가 아닐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과로사회를 넘어서 여가사회로' 혁신해야 할 시점에 온 것이다.

'사회혁신 키워드 100'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접촉했던 많은 사람들이 '쉼'과 '여가', '놀이'를 공통적으로 사회혁신과 연결하려 했던 것은 바로 이런 시민적 필요가 매우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라 추정된다.

헨리 포드가 임금을 올리고 노동 시간을 줄인 이유는?

그런데 노동 시간을 대폭 줄이고 여가와 놀이에 쓸 시간, 사람과 관계를 맺는 데 쓸 시간을 늘리는 것이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 특히 우리나라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서로를 제약하면서 견고하게 사회구조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즉, 생활 자체가 어려운 현실의 최저 임금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 사람들이 선택하는 가장 일반적이고 유력한 대안은 노동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잔업과 특근, 휴일근무가 일상적으로 선택(?)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낮은 최저임금이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것이다.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장시간 노동이라는 '나쁜 대안'이 존재하는 한 최저임금을 올리자는 시민적 의지를 모으기가 어렵게 된다.

반대로 노동 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다 보면 결국은 낮은 임금의 장벽을 만나게 된다. 잔업과 특근을 하지 않으면 지금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러 있는 기본급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즉 낮은 최저임금이라는 '장벽'을 제거하지 않으면 노동 시간을 줄이는 일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더구나 이렇게 최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체제라고 하는 가혹한 구조에 의존해서 그 위에서 생존하는 중소 상공인의 사업구조가 전환되지 않으면 장시간 노동을 줄이는 일이 현실적으로 탄력을 받기 어렵게 된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구조 안에서 낮은 최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서로 단단하게 맞물려서 작동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물질과 시간의 빈곤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며 사회 발전을 억제하고 있는 것이다. 장시간 노동을 줄여 나가면서 시간의 자유를 확장시키려는 노동자와 시민들의 바람은 그렇다면 영원히 실현 불가능한 것일까?

일찍이 한 세기 전에 두 가지 난제를 한 번에 해결해버린 한 기업가가 있다. 지금부터 백년 전인 1914년 1월 5일, 히틀러를 존경하기조차 했던 지독한 보수주의자이자 20세기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열었던 헨리 포드(Henry Ford:1863 ~1947)가 포드 자동차 노동자들의 일당을 기존의 두 배인 5달러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그 날을 '5달러의 날'이라고도 부른다.

그가 진보적인 정책의 옹호자였기 때문이 아님은 물론이다. 노동자들의 주머니를 두둑이 하면 그들이 공장 밖에서는 소비자가 되어 구매력을 높일 것이고 그러면 포드 자동차 판매 실적도 올라갈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헨리 포드가 취한 조치는 이것만이 아니다. 그는 노동 시간 역시 8시간으로 줄이는 정책을 동시에 발표했다. 당시 업계의 일반적인 노동 시간은 주당 60~70시간이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1926년부터는 매주 토요일 공장 문을 닫기로 했고, 1938년부터는 아예 주당 40시간 노동제를 도입한다.

마찬가지로 그가 특별히 노동자들에게 여가 시간을 배려해주기 위함은 절대 아니었다. 작업 시간에 일의 실수를 줄이고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장시간 노동을 줄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하면 두뇌 회전이 느려지고 멍해진다. 휴식을 취했더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실수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지쳐있기 때문에 그런 실수를 수습하는 데도 더 오래 걸린다."(브릿지 슐트, <타임 푸어>)

지금 열리고 있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고집스럽게 임금 동결을 강변하고 있는 한국의 기업가들이 새겨들어볼 대목이다.

한 세기 전 미국에만 일어났던 사례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나라의 한 출판사에서도 오후 4시만 되면 모든 직원이 칼 퇴근하고 하루 6시간 노동하면서 살아가는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파주출판단지에 소재한 보리출판사가 그 주인공인데 벌써 3년째 접어든다. 그들은 일하는 방식과 문화를 바꿈으로써 혁신의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직원들은 6시간 내에 일을 마치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했다. 가장 먼저 여러 사람이 모이는 내부 회의를 줄였다. 각자 업무에 보다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작가나 외부업체와의 미팅은 가급적 업무 시간 내에 하기 위해 사전에 계획을 세웠다. 주말에 하는 외부행사나, 신간이 나오면 으레 돌던 인사도 없앴다."(경향신문 2015년 6월 19일자)

이런 식으로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장시간 노동 시스템은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과 관계를 맺을 시간이 없다면 사회를 바꿀 수 없다

시민들에게 시간 권리를 되돌려 주는 일이 사회적으로 절박한 이유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시간에 대한 자유권을 얻지 못하고 일상에서 시간에 쫓기게 되면 사회적 관계를 맺을 기회, 공동체에 참여할 기회를 박탈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급격한 사회변화에 따라 가족관계를 필두로 인간관계가 큰 폭의 지각변동을 겪고 있는 지금, 관계를 맺고 유지해갈 시간을 갖지 못하면 개인들은 자칫 고립과 단절을 초래할 위험이 커지게 되고 사회적으로도 건전한 민주적 공론장의 형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

<과로사회>라는 책을 내고 우리나라의 장시간 노동체제를 신랄하게 고발했던 사회학자 김영선 교수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의 건강과 가족관계만 해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없으니 지역공동체, 시민사회, 정치참여에 대한 관심이 없어집니다. 요리를 할 시간이 없으니 외식을 하거나 가공식품을 사먹게 됩니다.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으니, 놀이카페나 문화센터에 보내 강사가 대신 놀아주게 합니다. 장시간노동은 노동자의 탈정치화, 보수화, 상품화, 소비중독 등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한겨레신문 2013년 6월 16일자)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며 그 유명한 <유토피아>라는 책을 저술했던 토마스 모어로 잠시 돌아가 보면서 시간 얘기를 매듭짓도록 하자. 지금부터 500년 전에 유토피아를 상상하면서 토마스 모어는, 특히 그 세계가 '여섯 시간 노동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임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한다.

"유토피아에서는 평일의 경우 하루에 총 여섯 시간을 일합니다. 오전에 세 시간 일하고 점심을 먹고 두 시간 휴식을 취하고, 오후에 세 시간 더 일하고 저녁을 먹습니다." "나머지 시간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시간입니다. 그들은 이 시간을 빈둥대거나 방종한 일에 탕진하지 않고 좋아하는 여가활동에 유익하게 사용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자유 시간을 교육을 더 받는 데 소비합니다. 매일 아침 가장 먼저 공익 강좌가 열리기 때문입니다."(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펭귄 클래식 코리아, 124~125쪽)

그는 어떻게 그런 세상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게 말한다. "부자를 포함하여 아무도 놀지 않고 모두 노동하면" 6시간 노동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 어법으로 볼 때 소박하고 친환경적으로 생활하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오백 년 전에 이미 해법은 나와 있었으니 문제를 풀지 못할 이유는 없다. 혁신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다만 우리의 낡은 사고 틀뿐이다. 따라서 시간 권리를 되찾기 위해, 여가와 놀이의 시간을 충분히 얻기 위해, 그리고 서로 관계 맺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혁신은 생각과 발상의 혁신이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 김병권 기자는 사회혁신 공간 데어(There) 이사입니다.



태그:#시간 권리, #사회혁신 키워드, #사회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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