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화제를 뿌리며 종영한 KBS 2TV <프로듀사>의 마지막 회 에피소드는 '장수 프로그램의 이해'였다. 우리나라 대표 장수 프로그램으로 손꼽히는 <전국노래자랑>의 MC 송해가 게스트로 깜짝 출연한 마지막 회에서 <프로듀사>는 '초심'을 꺼내들었다. 시청자의 오랜 사랑을 받고, 장수 프로그램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은 다른 곳에 있지 않고, 바로 '초심'에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다. MBC <무한도전>은 늘 무모하고 무리한 도전에 나서며, 별 것 아닌 것에 목숨을 걸고 경쟁을 벌인다. 국민 예능으로 자리 잡기 전 <무한도전>의 초심이 바로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KBS <1박2일>은 또 어떤가. 이제는 식상하다고 손사래 칠 법한 복불복과 입수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부침은 있었지만 그 '초심'을 우직하게 지켜낼 수 있었기에 지금의 <무한도전>과 <1박2일>이 존재하는 것이다.

개코에 문희경까지...'재발견' 넘어선 '새로운 발견'

 복면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설정으로 반전의 묘미를 안겨주는 MBC <복면가왕>

복면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설정으로 반전의 묘미를 안겨주는 MBC <복면가왕> ⓒ MBC


솔직하게 말해서 MBC <복면가왕>이 언제까지 방영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최근 '핫'한 예능 프로그램임은 분명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반전의 쾌감, 그리고 음악의 감동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스트가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문제는 '캐스팅'에 있다. <복면가왕>의 경우 한번 녹화를 하고 2주간 방영되는데, 최소 8명의 출연자를 섭외해야 한다. 한 달에 16명, 다섯 달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100명에 가까운 연예인을 섭외해야 한다. 그것도 나름대로 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며, 노래 실력도 어느 정도 뒷받침 되어야 한다. 연예인 판정단과 청중 평가단, 그리고 시청자를 속일 수 있을 만큼의 '의외의 인물'이면 더욱 좋다. 결국,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 비해서 출연자의 진입장벽이 꽤나 높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복면가왕>은 매주 놀라움을 안겨준다. 가면 속 정체가 드러날 때마다 환호성이 쏟아져 나아고, 우리의 편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예상외의 결과가 이어진다. 지난 28일 방송 역시 마찬가지다. 래퍼로만 알려진 개코가 오롯이 혼자서 노래로만 무대를 채울 때, 과연 누가 그의 정체를 예측할 수 있단 말인가.

이기찬과 고명환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출연 동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이들의 노래에서는 "내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간절함이 묻어난다. 그 노래에 취하고, 감정을 이입하는 순간, 누구인지 맞추는 것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비록 온 몸을 전율시키는 그런 무대는 아닐지언정, 그들의 노래를 듣고 또 노래를 부른 출연자의 정체를 눈으로 확인하는 그 순간 자체가 즐거움이고 감동인 것이다.

 다수의 편견과 예상을 깬 <복면가왕> 참가자 고명환.

다수의 편견과 예상을 깬 <복면가왕> 참가자 고명환. ⓒ MBC


이날 최고의 화제로 떠오른 문희경은 또 어떤가. 드라마 속에서 부잣집 사모님으로만 나오던 그녀에게 이토록 뛰어난 노래 실력과 감성이 있었다는 사실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추측조차 불가능했던 참가자. 1987년 강변가요제 대상 수장자라는 이력이 알려지고 나서야 우리는 그녀의 노래 실력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재발견'을 넘어선 '새로운 발견'이다.

문희경의 정체가 밝혀지고 난 뒤 작곡가 윤일상은 이렇게 말했다. "많은 노래 프로그램이 있지만, 우리가 어디서 문희경 선배님이 노래를 들을 수 있겠는가. 복면가왕은 정말 대단하다."

 강변가요제 우승자라는 반전 이력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배우 문희경

강변가요제 우승자라는 반전 이력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배우 문희경 ⓒ MBC


이제 <복면가왕>은 단순하게 편견을 깨는 프로그램을 넘어서고 있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꿈이 있는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복면가왕>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한물 갔다고 평가를 받는 가수나 개그맨, 혹은 래퍼라도 상관없다.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복면가왕>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노래를 연습하고 무대에 올라 벅차다는 문희경이 바로 그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의지와 열정만 있다면,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다고.

<복면가왕>이 언제까지 지금의 인기를 유지하며 방영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대를 그리워하며 갈구하는 수많은 연예인이 존재한다면 이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초심이다. <복면가왕>이 지금의 이 초심을 잘 유지하여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saintpcw.tistory.com),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복면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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