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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MBC에서 방영 중인 <화정>이라는 드라마가 인터넷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총 50부작에 달하는 대작이기도 하고, 캐스팅을 면면히 살펴보면 하나 같이 톱스타들이라 더욱 눈길이 간다.

그런데 유독 주연 배우의 연기력 논란이 도마 위에 올랐다. 뭐 새삼스러울 건 아니다. 이 배우가 주연을 맡았던 작품들이 회자되고 있을 정도니까. 그만큼 배우의 연기력이 작품에 몰입하는 데 중요한 요소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배우가 텍스트를 해석한다는 것은 내재된 객관적인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연기에 의해서 의미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의미를 구축하는 '해석(interpret)'은 텍스트의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깊이와 독창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배우는 대본이 말하는 대로 무대를 구성하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다, 텍스트를 읽고 그 의미를 스스로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라고 강조하는 수업이 있다. 연기 지망생들이나 연극영화과 학생들이 배우는 수업이라고? 아니다.

이 수업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제약요건이 있다. 무대공연 경력이 최소 3년에서 10년 미만의 기성 배우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현역 배우들도 연기를 배우나?" 다소 의아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어느 정도 일정 수준에 도달했는데 연기의 또 다른 벽을 넘고 싶은 배우들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기성 배우도 듣기 어려운 수업

<플레이업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하는 조만수 평론가는 "텍스트가 중성적이라는 뜻이다. 의미는 작품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사람들이 부여하는 것이다. 모든 텍스트는 항상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 이번 수업의 목표는 텍스트에 정답이 있다는 생각을 깨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 연극인 재교육 프로그램 <플레이업 아카데미> <플레이업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하는 조만수 평론가는 "텍스트가 중성적이라는 뜻이다. 의미는 작품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사람들이 부여하는 것이다. 모든 텍스트는 항상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 이번 수업의 목표는 텍스트에 정답이 있다는 생각을 깨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 이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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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극센터는 현장에서 활동 중인 연극인의 창작 역량을 키우는 재교육 프로그램 <플레이업(PLAY-UP) 아카데미>를 지난 4월 6일부터 오는 10월 말까지 진행한다. 올해로 4년째 진행되는 이 사업은 2012년 '체호프 연기 워크숍'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출발했다.

올해는 동시대 공연 예술계를 이끌고 있는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직접 강사로 참여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현역 배우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수업이라 그런지 커리큘럼마다 특성이 확실하다.

세부 프로그램으로는 '호흡과 몸으로 여는 자유로운 음성'(국민대 김혜리 교수), '공간을 바꾸는 화술'(배우 김소희), '의미를 발생시키는 읽기 방식'(평론가 조만수), '신체 행동으로 설계하는 연기 기술'(연출가 강량원), '중심의 발견'(안무가 정영두), '공동창작 수행 프로젝트'(연출가 윤한솔) 등이다.

지난 25일 대학로에 위치한 서울연극센터 아카데미룸에서 조만수 평론가의 '의미를 발생시키는 읽기 방식' 수업이 진행됐다. 두 시간이 넘게 진행된 이 강좌에는 14명의 현역 배우들이 참여했다. 하나같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배우들이라 그럴까. 다른 배우들의 몸짓, 소리 하나 하나에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수업을 받는 내내 말하기 힘든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강사의 목소리 하나에도 배우들은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래, 자! 페드르가 누군지 잘 봐라.
페드르의 광증까지 모두.
그래, 난 사랑한다.

네가 날 더 미워하게 되어도, 나는 너를 덜 사랑하지 않았는데,
불행마저도 네게 새로운 매력을 더하더구나."

이날 수업에는 <페드르> 1막 5장 중 한 장면이 소개됐다. 수업에 참관한 배우들은 이 텍스트를 연기한 세 편의 영상을 관람했다. 첫 번째는 배우들의 움직임이 거의 없었고, 두 번째 영상은 약간의 움직임을 가미했다. 마지막으로 보여준 영상은 움직임뿐만 아니라 내적 갈등까지 다양하게 텍스트 해석을 거쳤다.

앞선 두 개와 달리 마지막 영상은 페드르가 고백하는 장면에서 상대 배우가 칼을 움켜지며 반응했다. 이것은 페드르의 사랑을 명백하게 거부하는 표현이었다. 세 영상의 대사는 동일했지만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텍스트를 벗어나 살아있는 움직임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 확연하게 보여줬다. 이에 대해 조만수 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같은 대본을 가지고 연출했지만, 해석은 모두 다 달랐다. 이것은 텍스트가 중성적이라는 뜻이다. 의미는 작품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사람들이 부여하는 것이다. 모든 텍스트는 항상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 이번 수업의 목표는 텍스트에 정답이 있다는 생각을 깨는 것이다."

<플레이업(PLAY-UP) 아카데미>는 지난 4년 동안 총 25개 과정에서 355명의 연극인들이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은 연극인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것들 중 가장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처음에 이 사업을 시작할 때는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고 한다. '기성 연극인들도 나름 이름 있는 배우인데 감히(?) 배우겠다고 할까'라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우였다. 매번 공모 신청접수를 진행하면 수 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야만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질 정도다.

"<플레이업 아카데미>는 연극인들에게 정말 의미있는 수업이다. 유관기관에서도 배우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많이 있는데, 이처럼 실전 무대에서 써먹을 수 있는 방법론을 다뤄주는 것은 없다. 현장에서 어깨너머로 연극을 배웠던 비전공자 배우들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수업으로 배웠던 전공자들까지 실전에 적용 가능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 의미가 깊다."(서울연극센터 매니저 서명구)

다음은 이번 <플레이업 아카데미> 강좌에서 '의미를 발생시키는 읽기 방식' 수업을 받고 있는 뮤지컬 배우 박무진(37)씨를 만나 나눈 일문일답 내용이다.

박무진 "연기에 대한 시각 달라졌어요"

뮤지컬 배우 박무진(37)씨는 "10년, 20년 이후까지 오래 가는 것에 대한 뿌리를 가지려면 어떻게서든 배워야 한다. 오로지 자존심 때문이라면 안오는게 낫다. 선생님한테도 배우지만 다른 배우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배우는 것이 많다"고 말했다.
▲ 뮤지컬 배우 박무진(37)씨 뮤지컬 배우 박무진(37)씨는 "10년, 20년 이후까지 오래 가는 것에 대한 뿌리를 가지려면 어떻게서든 배워야 한다. 오로지 자존심 때문이라면 안오는게 낫다. 선생님한테도 배우지만 다른 배우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배우는 것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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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해왔나?
"1990년대 후반에 '쌍칼' 박준규와 이일화 등 배우들과 대학로에서 세미 뮤지컬 공연을 했다. 군대 제대 이후 2004년에는 '블루오션'이라는 문화 봉사대를 만들어서 소외 계층을 위한 거리 콘서트를 하기도 했다. 이후 기획사에서 하는 뮤지컬 아카데미에 들어갔고, 이 때 '지킬앤하이드' 오디션에 합격했다.

처음으로 수입이 발생하는 뮤지컬을 할 수 있었고, 다음 작품에서는 배역으로 올라서며 빠르게 성장해갔다. 이후 2007년에 음반 작업을 하면서 연예 생활을 시작했다. 2012년도에 첫 앨범을 발매하고, 공중파 방송의 뮤직뱅크, 음악캠프, 세바퀴, 도전천곡 등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뮤지컬 활동은 2013년 겨울부터 '삼총사'를 시작해 '로빈훗'까지 참여하고 있다."

- 연기, 뮤지컬, 가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했는데, 이 수업에 참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은 시간이 맞았다.(웃음) 연기를 하면 할수록 연기력과 기본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 무대에 선다는 것은 살아남기 위해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춤을 잘추면 무대에 설 수 있고, 노래를 잘하면 주인공이 될 수 있고, 연기를 최고의 배우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연기력 향상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마침 이런 수업이 있다는 걸 보고 내게 딱 맞다고 생각했다."

- 수업을 받으면서 무엇을 배웠나?
"수업을 듣고 나니까 씨앗 하나가 생겼다. 이게 뿌리가 될지…. 날아가 버리는 씨앗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얼마나 물을 주는가에 달린 것 같다. 그 씨앗이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준 것이다. 무대에서 뭔가를 시도해보고 싶은 에너지가 생겼다. 연기는 솔직히 감으로 했다. 멋진 성이 만들어질수는 있겠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 이 수업을 한번 듣고 확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씨앗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이제 다음 수업을 끝으로 강좌가 끝난다. 교육 이전과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지는 점은 무엇인가?
"일단은 시각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그냥 텍스트를 보고 텍스트가 말하는게 무엇인가를 보려고 했다. 조만수 평론가가 '텍스트에는 빈틈이 많다'는 말을 했다. 그건 내가 미처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나는 텍스트가 모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면의 것들에 대해서 얘기를 해줬고,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공간과 시간에 대해서 알게 됐다.

그동안은 눈 앞의 것만 봤다면 이제는 3D, 4D의 시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비극에는 항상 대립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들이 혼자만 뭘 하면 재미가 없는데, 경쟁을 통해서 스릴과 같은 것이 더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재미를 찾아서 표현했더니 나만의 것을 찾게 됐다. 구조라는 것을 배우니까 이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게 됐다. 물론 지금은 그런 눈이 생긴거고 현장에서 적용하는 것에 달려 있다."

- 수업에서 배운 것으로 향후에 어떤 계획이 있는가?
"지금 7월에 얘기하고 있는 작품이 있긴 한데 아직은 확정이 안됐다. 무대에서 지금 배운 것을 50% 이상을 쓰려고 노력할 것이다. 요새는 강의를 하고 있다. 강의도 무대랑 똑같다. 무대나, 강의나, 노래나…. 텍스트에서 배웠던 공간, 시간에 관한 시각들이 저의 무대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준 것 같다. 현장에 계속 적용하는 게 내 목표다."

뮤지컬 배우 박무진씨는 삼총사를 비롯해 지킬앤하이드, 로빈훗 등 다양한 뮤지컬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역 배우다. 그는 서울연극센터에서 진행하는 연극인들의 창작 역량 강화를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인 <플레이업 아카데미>에 참여하고 있다.
▲ 삼총사를 비롯해 뮤지컬에서 활동 중인 배우 박무진씨 뮤지컬 배우 박무진씨는 삼총사를 비롯해 지킬앤하이드, 로빈훗 등 다양한 뮤지컬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역 배우다. 그는 서울연극센터에서 진행하는 연극인들의 창작 역량 강화를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인 <플레이업 아카데미>에 참여하고 있다.
ⓒ 박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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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교육받고 싶은데 주저하고 있는 배우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배우는 끊임없이 배우는 직업이라 생각한다. 정상에 있는 배우인 유준상과 엄기준도 끊임없이 관찰하고 도전하고 시도하는 것을 옆에서 봤다. 어떤 배우든지 배움을 게을리 하는 배우는 보지 못했다. 그런 배우는 살아남지도 못할 것이다.

당연히 주저할 이유가 없다. 당장 생활을 해야 하는데…. 일주일에 두 번 공부냐 일이냐 주저할 수는 있겠지만…. 당장 눈앞의 아르바이트비를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10년, 20년 이후까지 오래 가는 것에 대한 뿌리를 가지려면 어떻게서든 배워야 한다. 오로지 자존심 때문이라면 안오는게 낫다. 선생님한테도 배우지만 다른 배우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배우는 것이 많다."

- 마지막으로 당신은 자신을 소개할 때 "무궁무진 박무진"이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대를 만드는 것이고, 잘하는 것은  무대에 서는 것이고, 가치가 있는 것은 무대를 나누는 것이다. 무대를 나누는데 있어서 건강한 에너지는 당연한 일이다. 스스로한테 에너지를 돋아 주는 것. 내가 신나고 건강해야 남들에게 전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부터 웃음 캠페인을 하고 있다. 한 달 동안 웃는 사진을 찍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웃음은 계속되어야 한다. 일 년 가까이 하고 있는데… 기네스에 도전하는 것이 목표다. 세계 웃음지수 1위, 행복지수 1위에 도전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태그:#서울연극센터, #플레이업 아카데미, #연극인 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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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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