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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일요일엔 대체로 침대에 누워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지난달 28일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다른 때와 하나 달랐던 점이라면 침대에 누워 쉴 새 없이 온몸을 두들겨야만 했다는 것이다. 특히 오른쪽 어깨와 허벅지, 무릎이 결렸다. 하루종일 주먹을 쥔 왼손이 남아나지 않았다.

나이 탓인가, 나만 이런가, 싶었는데 다행히(?) 온몸을 주무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은 나뿐만은 아닌 것 같았다. 단체카톡방 여기저기서 신음이 들려왔다. '움직일 때 아파요', '몸이 너무 뻐근해요', '허리가 계속 쑤셔요', '전 여기저기 멍이…'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몸의 피로를 풀러 아예 찜질방에 갔다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를 알기 위해선,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15년 6월 25일, 20명의 다양한 얼굴들이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본사로 들어섰다.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아래 오기만) 53기에 참여한 예비 기자들이었다. 오기만은 언론인을 꿈꾸는 대학생, 사회적 글쓰기를 배우고 싶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 기자가 18년 동안 꾸준히 진행해온 언론인 양성 프로그램이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슬로건에 아주 적합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겠다.

"기사를 쓰기 전에 가슴이 뛰어야 한다"

마지막 날 해산 직전 오마이뉴스 시민학교 운동장 축구 골대 앞에서
▲ 오연호의 기자만들기 53기 마지막 날 해산 직전 오마이뉴스 시민학교 운동장 축구 골대 앞에서
ⓒ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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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간 진행된 프로그램은 알찼다. 언론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과 다양해진 미디어 환경 속에서의 언론인의 역할, 전통적인 기사 쓰기 방식과 창의적 기사 쓰기 방식의 비교, 무엇이 좋은 기삿거리가 될 수 있는지, 무엇이 좋은 기사 문장인지 등등. 기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실제적이며 유용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기자란 이러한 유용한 정보들을 얻었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었다. 오연호 대표기자는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기자는 기사를 쓰기 전에 가슴이 뛰어야 한다." 기자는 세상을 향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내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연호 대표 기자의 열정적인 강의 모습
▲ 오기만 53기는 수업 중 오연호 대표 기자의 열정적인 강의 모습
ⓒ 여신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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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언론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오연호 대표기자는 <진보와 빈곤>을 펴낸 19세기 언론인 헨리 조지의 삶을 소개했다. 13세부터 사환, 선원, 인쇄공 등 갖가지 직업을 전전하던 헨리 조지는 링컨 암살에 분개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26세의 나이에 직업 언론인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직업 기자가 되려 한 적은 없었지만, 세상에 분노하다 보니 기자가 돼 있었고,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글을 썼다. 그는 행동으로 배운 것을 실천한 참 언론인이었다고 한다.

헨리 조지의 삶과 오기만의 수업 내용이 예비 기자들의 가슴을 울렸기 때문일까. 우리는 저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상대의 가슴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강의실에서, 식당에서, 복도에서, 운동장에서, 벤치에 앉아서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눈을 보며 질문했고, 들었고, 이내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술이 들어가자 더욱 급속도로 서로를 향해 침투할 수 있었다. 매일 밤 10시 30분쯤이 되면 우리는 술로 하나가 됐다. 벌게진 얼굴로 함께 노래하고, 이야기했다.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20대에서부터, 오랜 공직 사회를 거쳐 퇴직한 60대까지 어느 한 명도 낙오하지 않았다. 그 순간 우리는 같은 것을 바라고 있기도 했다. 술이 조금만 더 있다면, 시간이 조금만 더 있다면, 더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

노래 한 곡 뽑으시라고 앞으로 모셨더니 논개 이야기를 해주시는 중
▲ 오기만 53기 정운채 선생님의 미니 강연 노래 한 곡 뽑으시라고 앞으로 모셨더니 논개 이야기를 해주시는 중
ⓒ 여신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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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 일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역시나 '남녀축구'였다. 전날 내린 비로 젖어있던 운동장은 어느새 바짝 말라 뛰기 좋은 상태가 돼 있었다. 경기 규칙은 조금 복잡한 듯 보였지만 잘 생각하면 아주 간단했다.

여자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됐고, 남자는 여자에게 골만 잘 전달해주면 되는 경기였다. 숨이 턱에 찰 때까지 우리는 뛰고, 붙잡고, 뒹굴고, 넣었다. 경기 내내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에게 글쓰기란... 아픈 곳을 두드려내는 일

오연호 대표기자가 학생들을 압도하는 모습
▲ 오기만 53기는 남녀축구 중 오연호 대표기자가 학생들을 압도하는 모습
ⓒ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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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만큼 힘들지만 웃음이 난다
▲ 오기만 53기는 남녀축구 중 죽을 만큼 힘들지만 웃음이 난다
ⓒ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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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유증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경기 후 이틀이 지난 어제까지도 몸 구석구석이 그렇게 아팠으니…. 안 아팠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픈 몸을 두드려대는 일이 싫지만은 안았던 건 두드려대면 두드려댈 수록 어쩐지 몸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프면서도 시원할 수 있다는 것. 열심히 두드려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글을 쓰는 일이 이렇게 아픈 곳을 두드려내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사회의 아픔, 개인의 아픔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아프지만 시원하게도 만들어 주는 것. 아픔을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아픔이 아닌 다른 감각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글을 쓰는 이유가 아닐까. 사회적 글쓰기란 이런 것이 아닐까.

오기만 53기는 어쩌면 같은 고민을 안고 한 곳에 모였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답게 변했으면 하는 것, 나도 조금 보탬이 됐으면 하는 것, 그것을 글로 했으면 하는 것, 그런데 과연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면서 우리는 이곳에 모인 건지도…. 그런데 함께 참가한 다른 이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안고 이곳에 왔다는 걸 안 순간, 우리 모두는 조금이라도 고민을 덜게 되지 않았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게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안도감 또한 느끼지 않았을까.

오기만 일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뒤 조용욱(23)씨는 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세상은 너무나도 각박하고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SNS는 너무나 평화로웠다"라고. 그래서 한동안 떠나 있었다고. 그리고 이렇게 말을 덧붙였다.

"최근 '오기만'을 만났고 많은 것들을 느꼈다. 그리고 결심했다. 계속 숨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보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자. 그리고 그들도 느끼게 해주자."

그의 SNS를 본 뒤 나는 오기만에서 준 강의노트를 펼쳤다. 헨리 조지가 <진보와 빈곤>에 쓴 이 문장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도 별을 본다는 사실을 알 때 더 확신을 가지고 별을 보게 된다." 며칠 전 강화도 오마이뉴스 시민학교엔 별을 보는 스무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잘 보면 연두색 팀의 남자 인원이 한 명 더 많다. 하지만 빨간 팀이 이겼다.
▲ 오기만 53기 남녀축구 경기 전 전체 사진 잘 보면 연두색 팀의 남자 인원이 한 명 더 많다. 하지만 빨간 팀이 이겼다.
ⓒ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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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김지현 기자

덧붙이는 글 | 2015년 6월 25일부터 27일까지 있었던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 53기에 관한 내용입니다.



태그:#오연호의 기자 만들기, #오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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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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