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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가정환경조사'라는 걸 적어냈다. 그리고 2학년이 되고 난 뒤 얼마 전에도 같은 걸 적어냈다. 그때마다 당황스러운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부모님이 바라는 장래희망'을 적는 일이었다. 큰아이가 7살 때 일이 생각났다.

"흠, 넌 장래희망이 뭐야?"
"... 몰라."
"몰라? 나중에 뭔가 하고 싶은 일이라든가, 그런 거 없어?"
"없어."

그때 나는 쿨한 '척' 하고 싶은 엄마였으니까 애써 티는 내지 않았지만, 살짝 실망했다. 그 무렵이었다. 큰아이와 동갑내기 딸을 둔 선배가 SNS에 딸의 장래희망이 '식물 박사'라고 올린 건. 말 못할 충격은 더 컸다. 부러운 마음에 '우리 딸은 꿈이 없다는데, 선배가 그저 부럽네요' 하고 댓글도 달았다.

그런데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쓴 댓글도 지우고 싶었다. 이제 9살짜리가 당장 꿈이 없는 게 뭐가 어때서? 게다가 우리 큰아이는 손이 야물어서 뭐든 잘 하는데 뭐가 걱정이람. '걱정' 엄마에서 '쿨한' 엄마로 모드로 돌아오기까지 십여 분. 못난 엄마되는 거 순간이다 싶었다.

부모님이 바라는 장래희망에 '없음'이라 쓴 이유

그후 잊고 있다가 1학년이 되어 이 가정환경조사 때문에 다시 딸과 장래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 장래희망에 뭐라고 적을 거야?"
"음... 그냥 없다고 적으면 안 돼?"
"없다고?"
"응. 그런데 엄마는 뭐라고 적을 거야? 여기에?"

아이가 가리키는 곳은 바로 '부모님이 바라는 장래희망'. 사실 아이가 커서 뭐가 됐으면 하고 특별히 바란 게 없었다(지금도 그렇다). 꿈이란 건, 부모가 아니라 본인이 정하는 거니까. 자유로운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는데, 한참을 고민하다 '없음'이라고 적었다. 그걸 보고 딸이 웃었다.

"나도 '없음'이네. 네가 하고 싶어 하는 거 그게 엄마가 바라는 거지."

그렇게 내가 바라고 아이가 원하는 장래희망은 '없음'으로 가정환경조사는 끝났다. 선생님이 보기엔 참 수상한 답변이었을 듯하다. 그런 아이가 2학년이 되자 달라졌다. 장래희망을 적어야 하는 빈칸에 나는 여전히 '없음'인데, 아이는 '사육사'라고 또박또박 적었다.

이런 일을 겪으며 이런 가정환경조사는 어떨까 생각했다. 만약 내게 장래희망 대신 '귀하의 아이가 어떤 아이로 자라길 바라십니까' 묻는다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너에게>(글 에이미 크루즈 로젠탈, 그림 탐 리히텐헬드)에 나오는 내용을 말해주리라.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렇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너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너에게>
ⓒ 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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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축 처져 있기 보다 힘차게 뛰어놀면 좋겠고
마냥 받기보다 친구와 함께 나누며
혼자 애쓰기보다 친구들과 협력하고
친구를 멈춰 세우기보다는 함께 신나게 모험에 나서면 좋겠어.

나는 네가...
혀끝보다는 온몸으로 함박눈을 느끼면 좋겠어.
앞으로만 나아가기 보다 잠깐이라도 여유를 즐기고
비가 세차게 쏟아져고 꿋꿋하게 이겨내며
비눗물을 바로 씻어내기 보다 거품을 즐기면 좋겠어.

그리고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다가도 네 안의 빛나는 이야기를 읽을 줄 알면 좋겠어.

시는 아니지만, 한 편의 시 같은 동화. 나는 우리 다다가 이런 '너'이길 바란다. 그리고 다다 곁에 '너'같은 친구가 하나쯤 있으면 참 좋겠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너에게

제임스 M. 볼드윈 지음, 전옥령 옮김, 보성출판사(2006)


태그:#다다,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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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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