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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고된 아버지로 살아오신 흔적이 근육통과 신경통의 소염 진통제, 파스로 남았습니다.
 평생 고된 아버지로 살아오신 흔적이 근육통과 신경통의 소염 진통제, 파스로 남았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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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6월 25일 늦은 밤. 서로 정을 나누는 지인들의 카톡방에 한 분이 글을 올렸습니다.

"이제 막 아버님 제사를 모셨습니다. 나보다 훨씬 더  성격이 강철 같던 아버지. 살아계시면 96세인데."

막 기제를 마친 자식이 아버지를 회고하는 글에는 회한과 그리움이 함께 느껴졌습니다.

또 다른 분이 그 글을 이었습니다.

"그러셨군요. 어제는 제 어머님 기일이었습니다."

또 다른 분의 글이 이어졌습니다.

"저도 때론 아버지가 그리워지니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이 그리워지는가 봅니다."

60대 초중반 남자들의 아버지 단상에 70대 중반의 어르신 글이 뒤따랐습니다.

"효심지극하신 여러분의 마음을 읽으니 저 또한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더구나 오늘은 아버지의 110회 생신일입니다. 해마다 6.25 사변, 이때가 오면 지금은 전설이 되신 아버지가 더욱 그립습니다. 그날도 비가 내렸습니다. 낯설은 피난길 위에도~"

혈기가 지배하는 청년기에는 주로 아버지와 대립하는 입장이 됩니다. 세상의 파고와 맞대결 해야 하는 장년기에는 아버지의 자리를 막 물려받은 입장이 되지요. 하지만 정신없이 살다보면 자신에게 아버지가 계셨다는 것조차 잊기 십상입니다.

겨우 아버지의 무게를 이해할 때쯤이면 남들이 자신을 노인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때는 이미 아버지가 곁에 계시지 않습니다. 

#2
최근 외국에서 공부하던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먼저 군대에 다녀오고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우리 가족의 카톡방에서 아들이 만든 잡채와 갈비탕이 가족들의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영국에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테이크아웃 한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일로 조리하는 재간이 많이 늘었습니다.

그 아들의 생일이 어제였습니다.

"남영동 고깃집에서 맛난 소고기 사서 맥주랑 집에서 먹을까? 영대 요리 솜씨도 보고 니들  생각은 어떠니?"

파주에서 저의 청소를 돕던 아내가 카톡으로 아이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큰 딸이 외식 대신 집에서 함께하는 식사에 동의했습니다.

"좋은 생각인 듯 하네염. 아빠랑두 맛난 거 먹어야 하는데. 아빠 혼자 계시니까."

해거름에 청소가 끝났습니다. 아내는 아들 딸들과의 식사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둘러 서울로 떠났습니다.

대만에서 오는 손님의 체크인을 기다려야 하는 저는 홀로 파주에 남았습니다. 카톡 메시지로 아들의 22번째 생일을 축하했습니다.

"영대 또 한살 먹는군. 아빠가 왠지 든든해지는 마음이다. 아빠의 마음은 점점 가벼워지고... 축하해!"

아들에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의 중함을 상기시키기 위해 슬쩍 부담을 얻은 메시지였지만 사실은 아버지의 자리가 결코 가벼워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혼자 된 저녁에 베트남에서 시집온 이본(Ivon)씨가 왔습니다. 이본씨는 유학 중에 한국인 유학생과 사랑에 빠져 결혼 후 해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작년에 남편의 나라로 왔습니다. 저의 둘째딸 주리와 같은, 27살의 밝고 심성 고운 새댁입니다.

오늘 아들의 생일이라 가족들이 서울에 모였다고 했습니다. 이본씨는 놀라는 표정으로 왜 나는 함께 가지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우스개로 이본씨의 말을 받았습니다.

"작년에도 아들의 생일이 있었고, 내년에도 생일이 있어요."

밤 9시가 넘어서 대만 손님이 도착했습니다. 체크인이 끝나고 마침내 나 홀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들의 생일 날,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지 못한 저는 홀로 아버지의 자리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될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되기 위해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두렵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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