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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나무를 출입구에 걸었습니다.
 엄나무를 출입구에 걸었습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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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침대는 이쪽으로 놓을까?"
"사람이 어떻게 머리를 북쪽을 향하냐? 

지난 6월 27일 이사를 했다. 강 건너 마을. 읍내에서 불과 2km도 떨이지지 않은 거리인데, 포장이사 비용이 100만 원이란다. '용달차를 불러 직접 나를까'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냉장고, 장롱 등 커다란 가구들을 7층까지 올린다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비싸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24평형 아파트. '옷장을 이쪽으로 놓자, 거기보단 여기가 낫다' 등 이사 때마다 반복되는 현상이다. 전에 살던 집 구조와 다르다. 아내와 물건 위치를 두고 사사건건 마찰이 생긴다. 우리 부부싸움을 위해 바쁘다는 이삿짐센터 사람들을 잡아둘 순 없다. '일단 거기에 쌓아 두세요'라고 말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만 산더미처럼 쌓였다.

조그만 가구를 버리고는 무엇이 그리 아쉬운지 다시 주워오길 수차례. 대체 처음 보는 이 물건은 언제 사 들였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있는지 조차도 몰랐던 포도즙 박스, 조그만 항아리에 엉겨붙어버린 꿀. 이걸 먹어도 될지 의문이다.

방안인지 창고인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짐들이 그득하다.
 방안인지 창고인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짐들이 그득하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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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간의 휴일을 고스란히 이삿짐 정리에 투자했다. 그런데도 아직 방안 구석구석엔 정리 안 된 물건들이 그득하다. 대충 정리해 놓으면 아내는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다시 헤집어 놓는다. 이렇게 하다간 일주일이 걸려도 해결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살면서 몇 번의 이사가 있었지만, 아내는 이번엔 유독 유난스럽다. 이해는 간다. 결혼 이후 21년, 10여 평 남짓한 월세 또는 전세를 전전했다. 1억 원의 대출을 받았지만, 아내는 집이 생겼다는 게 못내 설레는 모양이다. 이삿짐 정리가 아닌 예술작품을 만들 기세다. 무거운 물건이 있으면 여지없이 나를 호출한다.       

박을 못 구하면 플라스틱 바가지를

박을 구하지 못한 아내는 플라스틱 바가지를 깼다.
 박을 구하지 못한 아내는 플라스틱 바가지를 깼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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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가 하루만 내지?"

6월 초순, 아내는 '6월 25일이 손 없는 날'이라고 말했다. '6.25행사도 있고, 사무실 상황도 좀 그렇다'라는 내 말에 이삿날을 27일로 정했지만 뭔가 고민하던 아내는 결단을 내렸다.

"25일 저녁에 솥단지 들고 가자."

뭔 소린가. 이사는 27일에 하더라도 손 없는 날인 25일에 솥을 가져다 놓고 이사할 집에서하루 자고 나오면 액땜이 된다고 했다. 미신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집안을 위한 일이라는데 반박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먼저 들어가면서 엄나무를 걸어야 해. 그리고 박을 깨고, 솥에 쌀을 담아 놓고, 그 집에서 자면 되는 거야."

대체 어디서 그런 신선한(?) 많은 정보를 입수한 걸까. 아내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전기밥솥에 넣어 놓은 쌀. 이시가기 전 이렇게 해야 밥을 굶지 않는단다
 전기밥솥에 넣어 놓은 쌀. 이시가기 전 이렇게 해야 밥을 굶지 않는단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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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럴 줄 알았다. 그렇게 말을 했는데, 또 고주망태?"      

공교롭게도 아내와 약속한 날, 퇴근 후 집주인 어르신과 두어 잔 마신 이별주에 꽐라가 됐다. 2년간 계약하고 채 8개월도 되지 않아 나간다는 말을 한다는 게 참 힘들었다. 집주인은 어디서 들었는지 '집사서 이사 가신다며? 축하해요'라는 말과 함께 한잔을 제의했다. '오늘이 손 없는 날이라 미리 가서 자야하기 때문에 안 돼요'라고 말할 순 없다. 한 잔 두 잔 마시다 그만 고주망태가 됐다.

술에 취했다고 봐줄 아내가 아니다. 내 손에 날카로운 가시가 박힌 엄나무와 바가지 그리고 팥 한줌이 쥐어졌다. 밥통과 이불은 아내가 들었다. 엄나무는 이사 갈 때마다 가지고 다녔다. 그걸 출입문 상단에 붙이면 잡신들이 찔릴까 두려워 감히 들어오질 못한단다. 현관에 팥을 뿌리는 행위는 아마도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액땜을 한 것에서 유래된 듯하다.

이런데 그놈의 바가지가 문제였다. 아내는 시장을 반나절은 돌아다녔지만 구하지 못했다고 투덜댔다. 하긴 과거 농촌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박을 구하기 쉽겠나. 한동안 말이 없기에 포기한 줄 알았다.

"같은 바가진데 뭐 어떻겠어."

아내는 결국 시장에서 플라스틱 바가지를 하나 샀다. 우리 부부는 그걸 깨고 너무도 당당하게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가져온 밥통에 쌀을 담고 텅 빈 주방에 덩그러니 놓아두었다.

쌀을 담아 두는 것, 무슨 의미일까. 모를 땐 인터넷 검색이 최고다. 옛날 사람들은 이사할 때 가마솥에 쌀을 안쳐 가지고 들어갔다. 먹을 것이 흔치 않던 시절, 가족들이 굶지 않고 풍족하게 살길 바라는 풍습에서 비롯된 듯하다. 가마솥을 구하지 못한 아내가 전기밥솥에 쌀을 담아 놓아 둔 광경이 우습다. 그래도 웃으면 안 된다. 부정 탄다고 나무랄 게 빤하기 때문이다.

벽쪽에 팥도 뿌렸다. 그래야 액땜이 된다기에...
 벽쪽에 팥도 뿌렸다. 그래야 액땜이 된다기에...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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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자자"

TV도 없는 방안. 딱히 할 일도 없다. 우리 부부는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다 가져온 이불을 폈다. 자정이 넘기기 전에 불을 끄고 잠이 들어야 액땜이 된다고 했다.

아내도 그들처럼 변했다

"화천에 살기 잘했지? 사실 아이들이 춘천으로 이사 가자고 할 때 못내 미안했거든."

아내는 쉽게 잠이 오지 않나보다. 먼저 말을 건넸다. 돌이켜보면 같이 화천에서 공무원을 시작했던 동료 직원들은 인근 춘천시로 이사를 갔다. 아이들 교육 때문이라고 했다. 자가용이 보편화되고 도로가 포장되면서 그 숫자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

아내 말은 '춘천시로 나간 사람들보다 결과적으로 잘된 것 아니냐'는 뜻이다. 운이 좋았던지 우리 아이들이 중학교에 진학할 즈음, 화천에 학습관이 생겼다(관련 기사 : 외박 강요받는 고3 수험생 아빠 "숨도 못 쉬네). 덕분에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과외비는 들지 않았다.

딸아이는 일찌감치 대학 2학년 때 화천군 공무원 특채시험에 합격했다(관련 기사 : 대학교 2학년 딸,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아들은 대학에서 지역인재육성 장학금을 받는다. 시 단위로 보내지 않은 선택이 얼마나 잘한 일이냐는 아내 말이다.

손없는 날 이사 못할 때 준비해야 할 물품. 팥, 바가지, 엄나무, 솥 그리고 이불.
 손없는 날 이사 못할 때 준비해야 할 물품. 팥, 바가지, 엄나무, 솥 그리고 이불.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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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도 하나 없이 썰렁한 방 한가운데 아내와 나란히 누워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눴다. 문득 연애시절이 떠올랐다.

등산길, 아내는 커다란 돌탑을 향해 절을 하는 아낙들을 보면서 '왜 저런 미신을 믿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했었다. 그랬던 아내가 변했다.

집안이 화목하고 평안하길 바라는 아내의 간절한 마음인 듯하다. 결혼 후 20년이 넘어 마련한 집, 그 감동과 정성이 오죽하겠나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태그:#이사, #손 없는 날, #엄나무, #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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