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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률이 70퍼센트가 넘는 시대다. 대학(진학)은 불변의 '이데올로기'처럼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한다. 학력과 학벌이 사람들의 '등급'을 나누는 도구가 된 지는 오래다. 무작정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경쟁 시스템을 대다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내면화해온 결과다.

그 한편에 대학입학시험과 대학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견고한 경쟁 시스템과 능력주의 신화의 지배를 받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특이한' 존재들이다. '실패자'나 '낙오자'로 차별받는 삶은 보통 사람들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함께 모여 목소리를 내고 '운동'을 한다. 소수자들이면서도 세상의 차별과 소외에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린다. '투명가방끈'이라 불리는 대학거부자, 대학입시거부자 모임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이른바 '이름 없는 세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울산 ETS 현장실습생 사망 사건의 기사 작업을 함께했던 기자가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취업 현장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이들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 '88만 원 세대'처럼 대학생, 대학 졸업생들을 호명하는 이름은 많은데 이들은 이름이 없잖아.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 삶이잖아. 이들에게 '이름 없는 세대'라는 이름을 붙여주면 어떨까?" (171쪽)

'투명가방끈'이 직접 쓴 대학거부, 대학입시거부 이야기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 겉표지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 겉표지
ⓒ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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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는 이들 이름 없는 세대의 하나라 할 수 있는 투명가방끈이 직접 쓴 대학거부, 대학입시거부에 관한 책이다.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대한 불복종 선언'이라는 부제가 이 책의 기조와 주제 의식을 보여준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대학입시거부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2부는 대학을 다니다 대학을 스스로 거부한 이들의 이야기다. 3부는 투명가방끈이 그리는 새로운 삶과 사회에 관한 내용이다. 저자들은 대학이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것, 대학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바탕으로 완전히 다른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21명의 투명가방끈이 대학입시와 대학을 거부한 사연은 제각각이다. 억압적인 학교와 교사, 성적 문제, 경제적인 어려움, 자유에 대한 갈망 등등 그들의 수만큼이나 거부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왜 대학에 가지 않았느냐'고 묻는 우리 사회를 향해 한입으로 묻는다. '왜 대학에 가는가.' 청년좌파 대표인 김성일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대학 교육에 대한 비판적인 반문의 근거를 찾고 있는 듯하다.

등록금 1,000만 원 시대에 사람들은 대출을 해서라도 대학에 다니고 각종 자격증을 따러 다닌다. (중략) 도대체 어디에 써먹을지 알 수 없는, 직무와도 별 관계 없는 능력을 열심히 쌓은 대가로 '직장'은 상금처럼 주어진다. 마치 애완견이 생존을 위해 '차렷' '발' 훈련에 적극 임해야 하는 것처럼. (276쪽)

'발'을 내미는 데 성공한 강아지는 과자를 얻을 수 있을까. 김성일은 '차렷' 훈련을 시작으로 차례대로 '빵야', 불타는 링 뛰어넘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끝없는 숙련 강아지의 길을, 다음 시대에 등장할 어린 강아지들을 위해서라도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닐까"(277쪽)라는 그의 물음에 대학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는 이들은 어떤 대답을 줘야 할까.

2014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전문대학과 4년제 대학을 포함한 고등교육 이수율(25~34세 기준)이 66퍼센트로 오이시디 국가 중 가장 높았다. 29퍼센트에 불과한 독일보다 2배가 높은데, 한국은 2007년부터 줄곧 세계 1위를 유지해 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인적자본 경쟁력은 세계 122개국 중 23위에 그치고 있다. 우리보다 대졸자 비중이 낮은 독일이 6위, 일본은 15위다. 세계 최고의 고학력화를 자랑하는 대학 교육이 그에 걸맞는 수준과 질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철저하게 위계 서열화한 시스템에 따라 '그들만의 리그전'을 벌이는 한국 대학의 민낯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학력이나 학벌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우울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들 중 하나다.

"대학 교육 과정이 '의무교육'인 줄 착각할 정도"

2011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 결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차별'로 '학력이나 학벌'을 꼽은 사람들의 비율이 29.6퍼센트였다고 한다. 2013년 취업포털 '사람인'은 소위 '지방대' 출신 구직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10명 중 8명이 학벌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다고 느낀 경험이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학력, 학벌 약자들의 '주관적인' 판단이 아니다. 한국노동경제학회의 한 논문에 따르면, 학벌 '최상위' 13개 대학 출신 취업자들은 14~15위 대졸자보다 14.2퍼센트, 51위 이하 대졸자보다 23.2퍼센트, 전문대졸자보다 42퍼센트 많은 임금을 받고 있었다. 한국고용정보원 조사 결과 'SKY' 졸업자 평균임금은 281만 원, 전문대졸자는 174만 원이었다. 2012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자료는 고졸 월 평균임금이 145.5만 원으로, 대졸 이상보다 평균 42.7만 원, 전문대졸자보다 12.7만 원 적다고 보고하고 있다.

한국의 교육을 지배하는 것은 평가에 의한 서열 체제이다. 대학 서열이 중심인 학벌 사회에서 초중등교육은 대학 입시를 위한 과정으로 왜곡되어 버렸다. (중략) 입학한 대학의 학벌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얻은 정당한 보상인 것처럼 여겨진다. 대학 서열과 학벌주의는 이렇게 학생 서열화, '능력주의'와 함께 재생산되고 있다. (265쪽)

한 저자는 "대학 교육 과정이 '의무교육'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70쪽)고 고백한다. 수능철만 되면 인터넷에 떠도는 '김고삼'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수능 전에는 신처럼 모셔지다가 수능이 망하면 누군가가 "죄인 김고삼은 사약을 받으라"라고 소리친다는. 대학이 모든 사람을 옥죄는 이 '대학 서열화 공화국'에서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이야기들이다.

"대학에 가지 않는다는 것이 내 삶을 포기하겠다는 선언"(63쪽)은 아닐 것이다. 대학을 거부하는 일이 신성한 일이 아님은 분명한 사실이다. 투명가방끈은 투사가 아니며, 그들 역시 이 불안한 사회에서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들 '이름 없는 세대'는 소수가 아니다. 한 해 고졸자를 60여만 명, 대학 진학률을 70퍼센트 정도로 놓고 계산하면 해마다 10만 명이 훨씬 넘는 고졸자들이 사회로 나오고 있는 셈이다. 그들 모두 학력과 학벌에 따른 차별의 피해자가 된다고 말하면 지나칠까.

'고졸 성공 신화'로 차별 시스템의 치부를 감추기에는 고통 받는 이들이 너무 많다. 한국 교육의 새로운 근본을 성찰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이 책이 유용한 참조자료가 될 것이다.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투명가방끈 지음 / 오월의봄 / 2015. 6. 15. / 335쪽 / 1,4000원)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 -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대한 불복종 선언

투명가방끈 지음, 오월의봄(2015)


태그:#<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 #투명가방끈, #대학입시거부자, #대학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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