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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을 세(洗, x?)는 의미부인 물 수(?)와 소리부인 먼저 선(先)이 결합된 형태이다.
▲ 洗 씻을 세(洗, x?)는 의미부인 물 수(?)와 소리부인 먼저 선(先)이 결합된 형태이다.
ⓒ 漢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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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왕 중에 요임금이 있다. 요임금에게는 단주(丹朱)라는 아들이 있었지만, 천하를 맡기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한 요임금은 왕위를 건네줄 만한 인물을 찾았다. 요임금은 허유(許由)에게 제위를 맡아 달라고 하지만, 허유는 거절하고 기산(箕山)으로 들어가 버렸다. 허유가 겸손하다고 생각한 요임금은 사람을 보내 제위를 못 맡겠다면 구주(九州)의 장이라도 맡아 달라고 제안했다.

정치에 뜻이 없던 허유는 자신이 못 들을 말을 들었다며 근처 영수(颖水)에 내려가 몹쓸 말로 더럽혀진 귀를 씻었다. 그 곁을 지나던 친구 소부(巢父)가 자초지종을 전해 듣고는 허유가 귀를 씻어 물이 더러워져 소에게도 물을 먹일 수 없게 되었다며 소를 몰고 상류로 올라갔다고 한다.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 바로 세이(洗耳)이고, 기산지절(箕山之節), 영천세이(潁川洗耳), 세이공청(洗耳恭聽) 같은 성어이다.

씻을 세(洗, xǐ)는 의미부인 물 수(氵)와 소리부인 먼저 선(先)이 결합된 형태이다. 소리부이기 하지만, 선(先)이 사람의 발바닥을 형상화한 것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제사에 앞서 물로 먼저 발에 묻은 오물을 씻는 것에서 '씻는다'는 의미가 생겨났다. '씻다'의 뜻을 가진 한자 중에 3000년 전 갑골문에도 등장하는 목(沐)은 머리와 얼굴을, 욕(浴)은 몸 전체를 씻는다는 의미로 쓰였다.

중국에서 목욕은 제례나 종교적 의식에 앞서 예를 갖추는 행위로 여겨졌다. <주례(周禮)>의 기록에 주나라 때부터 왕의 침실에 욕실이 갖춰져 있었다고 하며, <논어>에도 공자가 목욕을 하고 조정에 나섰다(孔子沐浴而朝)는 기록이 있다.

또 공자는 제자들과의 대화에서 증석(曾晳)이 "늦은 봄날, 봄옷을 지어 입고, 어른 대여섯 명, 어린 아이 예닐곱 명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을 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나 읊으며 돌아오렵니다(暮春者,春服既成,冠者五六人,童子六七人,浴乎沂,風乎舞雩,咏而歸)."라고 하자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목욕이 엄숙한 의식의 예를 표하는 동시에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높은 경지의 즐거움으로 여겨졌던 셈이다. 허유가 그랬던 것처럼 '씻는다'는 행위는 세속적 유혹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자기 신념에 대한 의식이며, 홍진을 벗어나 자연과 벗하며 유유자적하겠다는 다짐인 셈이다.

중국 물은 석회질이 많아 설거지를 해도 마르면 얼룩이 남아, 정수기 물로 다시 헹궈야 한다. 깨끗해지기 위해 황허에 뛰어 들어도, 황허 물이 더러워 깨끗해질 수 없는(跳進黄河也洗不清) 셈이다. 어쩌면 우리가 이미 너무 오염된 세계에 살고 있어 아무리 깨끗이 씻으려 해도, 씻기지 않는 세속의 떼를 안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주변 '물은 좋은지' 한 번 살펴볼 일이다.


태그:#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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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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