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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공부하다 보면 말하는 대로 쓰는 게 가장 좋은 글이라는 조언을 곧잘 접하게 된다. 이오덕의 <우리 글 바로 쓰기 2>(한길사, 2009)에서는 "글은 쉽게 읽어서 알 수 있도록 써야 한다, 그런 글을 쓰자면 될 수 있는 대로 입으로 하는 말을 그대로 쓰는 것이 좋다, 낱말도 말법도 입말을 살려서 쓰는 것이 가장 미덥다"(73쪽)라고 충고한다. 물론 인용문의 취지는 일상 대화에서 쓰지 않는 어려운 단어와 어법을 구사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입말로 표현하라는 것이다. 글을 쓴 뒤에 소리 내어 읽어보면서 어색한 부분을 찾아내는 것은 좋은 글쓰기 훈련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조언을 확대 해석하여 말을 종이에 그대로 옮기면 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강연을 필기하거나 인터뷰를 녹취하면 책이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입말과 글말의 차이는, 하나는 소리이고 하나는 글자라는 것만이 아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리처드 닉슨 대통령
ⓒ 위키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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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공화당 행정부가 불법 활동을 벌인 것이 폭로되어 발생한 미국의 정치 스캔들이다. (이 사건으로 닉슨은 미국 대통령으로는 유일하게 임기 중에 사퇴하는 불명예를 겪었다.)

사건을 조사하는 와중에 닉슨 대통령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벌인 대화가 녹음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며, 우여곡절 끝에 테이프 내용이 공개되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닉슨의 불법 행위나 천박한 말투에서보다 일상 대화를 말 그대로 받아 적었을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충격을 받았다.

이를테면 "Get it, in a, in a way that, uh―Who's going to talk to him? Colson?"(하는 거지. 어쨌든 …… 누가 연락을 취하지? 콜슨이?)이라는 문장은 'get it'의 의미에 따라 범죄 모의의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었으나, 대화 당사자가 아닌 우리가 글만 읽어서는 무슨 뜻인지 알 도리가 없다. 말과 글에 어떤 차이가 있기에 닉슨 대통령과 그의 법률고문 존 딘 3세가 아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할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차이는 억양과 끊어 읽기다. 우리말에서도 억양을 알지 못하면 평서문과 의문문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밥 먹었어'라는 말은 "밥 먹었어?"라는 질문일 수도 있고 "밥 먹었어."라는 대답일 수도 있다(물음표와 마침표로 구분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이야말로 말과 글의 차이를 똑똑히 보여준다.

말과 글은 서로 다른 장치를 이용하여 자신의 의도를 표현한다. 구두점은 글을 읽는 방식이 [소리 내어 읽는] 낭독에서 [소리 내지 않고 읽는] 묵독으로 바뀌면서 도입되었다.) "철수 집에 있어"라는 문장은 철수가 집에 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철수, 집에 있어) 누군가가 철수의 집에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말로 할 때는 '철수'와 '집에' 사이를 끊어 읽느냐 붙여 읽느냐로 의미를 구분할 수 있지만 글에서는 그 차이를 나타낼 수 없다.

대명사와 일반명사, 생략 등은 대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저 사람 끝내주지 않아?"라고 말하면서 '저 사람'을 손가락이나 눈짓으로 가리킨다. 이 비언어적 몸짓을 언어로 번역하지 않으면 독자는 '저 사람'이 누구인지 알 도리가 없다. 이인성의 <강 어귀에 섬 하나>나 온다 리쿠의 <Q & A>처럼 대화만으로 이루어진 소설도 있지만, 이런 소설은 독자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대화문 속에 인위적으로 설명을 넣는다. 생략은 효율성을 위한 장치다. 대화에 참여하는 쌍방이 알고 있는 것을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삼자는 생략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맥락을 통해 대화를 이해하지만 역으로 대화를 통해 맥락을 유추하기도 한다. 아래의 간단한 대화를 살펴보자.

여자: 우리 헤어져.
남자: 어떤 놈이야?


여자의 이별 통보를 들은 남자가 왜 '어떤 놈'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걸까? 위의 대화에서 우리는 여자에게 다른 남자가 생겨서 연애가 깨졌다고 남자가 생각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재구성한 맥락이 사실과 어긋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지만.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해하기 힘든 글이 되기 때문에, 인터뷰어는 녹취록을 정식 기사로 풀 때 문구를 편집해야 한다. 그러다 인터뷰이가 자신의 말이 왜곡되었다며 항의하기도 한다. 단어를 바꾸지 않아도 문장의 순서를 바꾸거나 문맥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완전히 딴판이 되기도 한다. 정신분석가 제프리 메이슨은 자넷 말콤 기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자신이 '지적인 기둥서방', '프로이트 이후의 가장 위대한 분석가' 등의 말을 한 적이 없다며 1천만 달러의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하고 말았다.

말은 찰나적이고 국지적이다. 음파의 진동이 멈추면 말은 (녹음해두지 않는 이상) 영영 사라지고 만다. 또한 말은 말소리가 닿는 범위까지만 전달된다. 이러한 대면 형식인 말이 영속적이고 보편적인 비대면 형식인 글로 발전하면서 의사소통의 위력이 엄청나게 커졌지만, 말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누락되는 정보 때문에 오해의 가능성도 커졌다. 문자 메시지, 게시판, 소셜 네트워크 등이 널리 퍼지면서 필담이 의사소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게시판이나 소셜 네트워크에서 누락되는 맥락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글쓴이가 누구인가다. 이것은 연설의 3요소 중에서 에토스에 해당한다. 상대방이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면, 그가 터무니없어보이는 소리를 했을 때 우리는 그가 왜 그런 소리를 했을까, 하고 고민한다. 하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이 똑같은 소리를 하면 바로 발끈하고 때로는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에토스가 중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번드르르한 소리를 늘어놓기도 하고―책임지지 않아도 되니까―남을 가혹하게 비난하기도 하고―제 눈의 들보를 들킬 염려가 없으니까―근거 없는 험담을 하기도 한다(수 틀리면 계정을 폭파하면 그만이니까).

물론 여기에 역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격을 내세울 필요 없이, 예단당하지 않고, 편견 때문에 배제되지 않고 남들과 대등하게 논리로 맞설 수도 있다. 한편 익명 게시판과 달리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실제 에토스와는 다른 새로운 에토스를 온라인 상에서 구축하기도 한다. 이 에토스는, 적어도 온라인 상에서는 현실의 에토스와 구분되지 않는다.

우리는 내 앞에 서 있는 상대방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그에게 할 법한 말을 글로 쓰지만, 내 글을 읽는 사람은 내가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가정하고 있는지, 왜 이 글을 썼는지 모를 수 있다. 이렇게 누락된 맥락을 재구성하면서 오해가 시작되고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글 속에 나의 눈빛과 몸짓과 억양과 표정을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이런 것들이 담기지 않아서 다행인지도 모르겠지만.

덧붙이는 글 | 인용문과 사례는 스티븐 핑커, <언어본능>(동녘사이언스) 7장 '말하는 머리들'을 참고했습니다.



태그:#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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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회사에서 번역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환경단체에서 일했다. “내가 깨끗해질수록 세상이 더러워진다”라고 생각한다. 번역한 책으로는『새의 감각』『숲에서 우주를 보다』『통증연대기』『측정의 역사』『자연 모방』『만물의 공식』『다윈의 잃어버린 세계』『스토리텔링 애니멀』『동물과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