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수의견>의 포스터 사진.

영화 <소수의견>의 포스터 사진. ⓒ 하리마오 픽처스


2013년에 제작이 완료된 영화 <소수의견>이 지난 24일에 드디어 개봉했다. 영화는 강제 철거 현장에서 열여섯살 아들을 잃고 살인 혐의로 체포된 박재호(이경영 분)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경찰이 철거 측 용역 직원들과 함께 진압을 하던 도중 아들이 숨지고, 이에 분노한 박재호가 의경을 살해했다는 정황.

지방대 출신에 경력도 없어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2년차 국선변호사 윤진원(윤계상 분)이 박재호의 변호를 맡게 된다. 얼떨결에 사건을 넘겨받은 윤진원은 본인의 무죄를 주장하는 박재호의 말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인다.

변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윤진원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경찰의 초기 수사기록은 변호인 측에 열람이 제한되고, 검찰은 끊임없이 윤진원 변호사를 회유하려고 시도한다. 이 때 사건 당시의 기록을 갖고 있는 기자 수경(김옥빈 분)이 정보를 제공하면서 윤진원은 더 적극적으로 변호에 임하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윤진원은 단순 살인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다. 자신을 향한 압박을 느낀 그는 이혼 전문변호사였던 선배 대석(유해진 분)에게 도움을 청한다. 쉽지 않은 재판은 그렇게 시작된다.

국가를 상대로 한 '100원 청구 소송'

 영화 <소수의견> 중 한 장면. 박재호(이경영 분, 오른쪽)는 철거 농성 중에 아들을 잃고 경찰을 죽인 혐의로 체포된다.

영화 <소수의견> 중 한 장면. 박재호(이경영 분, 오른쪽)는 철거 농성 중에 아들을 잃고 경찰을 죽인 혐의로 체포된다. ⓒ 하리마오 픽처스


박재호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의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된다. 검찰은 그의 아들을 죽인 사람은 경찰 병력이 아니라 용역업체 직원이라고 맞선다. 이대로라면 영락없이, 이성을 잃고 경찰을 죽인 살인자가 될 상황이다.

윤진원은 박재호의 증언에 따라, 그의 아들을 죽인 사람이 용역업체 직원이 아니라 경찰이라고 반박한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을 목격자로 확보하면서 사건 정황을 재구성하려고 애쓴다. 검사(김의성 분)가 판사와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토대로 변호인 측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다. 재판부가 바뀌면서 상황은 반전되는 듯 보이지만, 여전히 역전은 멀어 보인다.

윤진원 변호사를 포함한 변호인의 주장은 '피고 국가를 상대로 한 100원 청구 소송'이었다. 누가 죽였든 무고한 청소년의 죽음은 경찰의 진압 작전 중에 벌어졌고, 국가가 배상 차원을 넘어서 직접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변호와 심문 등 <소수의견>의 많은 장면은 법정 영화의 면모를 확실히 드러낸다. 상영시간동안 배우들의 대사는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도 자세한 법률 정보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줄거리의 흐름뿐만 아니라 세밀한 부분에도 신경을 쓴 것이 느껴지는 점이다.

장면과 장면의 연결이 다소 부자연스러운 지점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적절한 감정 표현이 돋보인다. 적절한 개그 감각이 곳곳에서 드러나면서 진지한 분위기를 영화가 끝까지 잘 이끌어가는 편이다. 웃고 울고, 또 화나게 만드는 장치들이 자연스럽게 제 역할을 다 한다.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도 몰입을 돕는다.

아들을 잃은 두 아버지, 국가는 책임 없나

 영화 <소수의견> 중 한 장면. 박재호(이경영 분)가 피소된 재판에 참관하는 김희택 의경의 아버지(장광 분)의 모습. 그의 아들은 무리한 진압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다.

영화 <소수의견> 중 한 장면. 박재호(이경영 분)가 피소된 재판에 참관하는 김희택 의경의 아버지(장광 분)의 모습. 그의 아들은 무리한 진압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다. ⓒ 하리마오 픽처스


영화 <소수의견>은 국가와 철거민의 싸움을 다룬 내용으로 전개된다. 극 중 '과거 올림픽 유치 때문에 쫓겨난 사람들이 살던 곳'으로 묘사되는 마을은, 재개발 열풍 바람이 불면서 다시 철거의 진통을 겪는다.

수천억 원의 돈이 걸린 이권 싸움에 대기업과 국가기관이 개입하고, 서둘러 공사를 진행하고자 공권력이 철퇴처럼 철거민을 강타한다. 영화에서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함과 더불어 '책임을 회피하는' 비겁한 모습을 노출한다. <소수의견> 속의 경찰청장은 법정에서 자신이 무전으로 내린 명령을 부인하다가 망신을 당하고, 급기야 청와대로부터 "부녀자 살인 사건을 확대 보도하게 만들라"는 여론조작 지시가 담긴 문건을 받은 사실까지 발각된다.

국가의 책임을 묻는 소송에서 주목할 다른 지점도 엿보인다. 개인과 권력의 구도로 진행되는 싸움에서, 철거민 아들의 죽음과 동시에 또 다른 희생자가 있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경찰 측의 작전에 투입된 20대 의경의 사망 사유도 무리한 진압으로 인해 벌어진 상황 때문이었다.

영화 중반 이후에는 사망한 의경의 아버지(장광 분)가 법정에 등장하는데, 아들의 죽음에 분노하는 대신 슬픔에 조용히 눈물을 떨군다. 이는 철거민 박재호가 "미안합니다"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용의자와 피해 유족으로 대비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 표출로 두 사람은 가족이 희생된 동병상련의 처지로 나란히 묶인다. 이 지점에서 영화를 보던 관객은 묻게 된다. 아들을 잃은 두 아버지를 법정으로 불러낸 사건에서, 국가는 책임이 없었는지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의 <소수의견>

 영화 <소수의견> 중 한 장면. 적절한 감정 표현과 함께 자세한 법정 용어 및 정보 전달로 사실적인 재판 장면을 볼 수 있다.

영화 <소수의견> 중 한 장면. 적절한 감정 표현과 함께 자세한 법정 용어 및 정보 전달로 사실적인 재판 장면을 볼 수 있다. ⓒ 하리마오 픽처스


영화 <소수의견>의 첫장면은 '이 영화는 실화가 아니며, 인물은 실존하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막을 올린다. 그럼에도 영화를 본 관객은, 당연하게도 한국에서 벌어졌던 어느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원작 소설에서 모티브가 되었다던 '용산 참사'가 영화 속 철거민들의 망루 장면에서 포개어진다. 영화는 한 줄의 문구로 실제 사건이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정작 그 덕분에 줄거리와 사건 사이의 가느다란 끈이 선명해지는 듯도 하다.

영화가 실감나는 것은 실제 사건과 흡사한 내용도 하나의 요인이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도 현실과 멀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약자에게 더 무자비한 공권력, 위기관리를 위해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 그 너머에서 이익을 챙기는 자본 권력, 힘없이 희생되며 쓰러지는 개인의 모습까지. <소수의견>이 보여주는 많은 것들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실과 매우 닮았다.

영화 <소수의견>은 동명의 2010년작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소설을 쓴 손아람씨는 과거 언더그라운드 힙합 그룹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소속 래퍼였고, 현재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영화 속에서 단역으로 출연한 원작 작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원작 소설과 영화의 결말이 다소 다르게 진행되는데, 그 차이를 관객이 직접 확인해보는 것도 관람의 묘미가 될 것 같다.

한국에서 국가의 권위보다 개인의 권리가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어쩌면 '소수의견'에 불과할까. 판결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뒤로 하고 문을 닫는 재판관들의 모습, 뉴스의 홍수와 사람들의 망각 속에서 조용히 철거된 마을, 정의 구현을 기대하지만 결국 달라지지 않은 재판 다음날, 너무 뜨겁거나 지나치게 냉소적이지도 않은 분위기의 영화 <소수의견>이 보여주는 장면들은 과연 무얼 말하는가. 분명 '실화가 아니'라는 이 영화가, '진실이 말소된' 현실을 비틀어서 거울로 비춘 것처럼 느껴진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 편집ㅣ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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