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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이었다. 우리 반 영무(가명)와 수현(가명), 현우(가명)와 광수(가명)가 싸웠다. 영무는 공부 욕심이 많고 매사 능동적이다. 수현이는 선생님들에게 밝게 인사를 잘하고 넉살이 좋다. 현우는 스스로 알아서 선생님들을 잘 돕는다. 장난이 심하던 광수는 요새 많이 차분해져서 칭찬을 많이 받고 있었다. 모두가 평범한 남학생들이다.

싸움은 1시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연달아 일어났다. 영무와 수현이는 공놀이를 하다가 싸움이 붙었다. 현우와 광수는 모둠 활동을 하던 중이었다.

수현이가 다른 아이와 공놀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영무가 함께 놀고 싶어서 끼어들었다. 수현이는 무작정 다가온 영무가 훼방을 놓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둘은 서로 어깨로 밀치고 등을 치는 동작들을 주고받았다. 영무의 중립적인 접근이 수현이에게는 감정이 실린 장난으로 해석됨으로써 시작된 싸움이었다.

현우와 광수의 싸움에는 '역사'가 있었다. 국어 수업 중이었다. 둘이 한 모둠이 되었다. 현우는 광수를 피해 옆 모둠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광수 옆에 있던 다른 친구가 현우에게 모둠으로 빨리 오라고 말했다. 현우는 광수 때문에 안 간다고 대꾸했다.

광수가 벌떡 일어났다. 아무 말 없이 있었을 뿐인데 현우가 자기 핑계를 대며 피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화가 났다. 현우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광수가 장난처럼 대하는 행동들이 못마땅했던 참이었다. 그런 마음을 그때그때 말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다. 결국 교실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한번에 2건이나 되는 '학교폭력(학폭)' 사건을 연달아 처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틀에 걸쳐 상황을 파악하고 정리했다. 아이들과 학부모, 학생부 교내 폭력 담당 선생님과 수차례 전화 통화를 하고 대화를 나눴다.

아이들은 격해진 감정을 쉬이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서로 화해시키기 위해 몇 번이나 대화 자리를 마련했으나 허사였다. 원인 제공을 누가 먼저 했느니 하며 자기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서로 주먹을 휘둘렀으니 모두 문제라고 말하는데도 받아들이지 않는 눈치였다.

어른처럼 덩치 큰 중 3 아이들에게 25평 교실은 너무 좁다. 활개 치며 오가다 친구와 부딪는 일이 흔하다. 외동이거나, 형제자매가 둘에 불과한 소규모 핵가정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다. '헐'과 '개'로 대변되는 획일적인 언어 표현이 감정적인 오해를 부를 때가 많다. 그 모든 조건들의 복합작용 속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고 관계가 틀어질 토대가 마련된다.

학교 시스템도 아이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아이들을 얽매는 규율과 규칙은 여전히 '전근대적'이다. 학생인권을 강조하는 시대인데도 학교 현장에는 아이들을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듯한 시대착오적인 교칙들이 벌겋게 살아 있다.

얼마 전 3학년 도준(가명)이가 삭발했다. 며칠 후에는 또 다른 3학년 아이인 승찬(가명)이가 삭발한 모습으로 학교에 나타났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점심 시간이었다. 두 아이가 학교 봉사 조끼를 입은 채 손에 행주를 들고 구내식당에서 식탁을 훔치고 다녔다. 삭발을 했다는 이유로 교내 봉사활동을 하는 모양이었다.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삭발 관련 교칙이 있을 리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식판을 정리하고 나가려다 승찬이를 불렀다. 작년 우리 반이었던 녀석이다. 자초지종을 물었다.

도준이는 미용사 때문에 그리된 것이었다. 머리 손질을 잘 못 하는 바람에 그냥 밀어달라고 해서 삭발 머리가 됐다는 것이다. 승찬이는 그냥 삭발했다고 했다. 그런데 말끝을 흐리는 게 다른 말이 남은 듯했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한 거야? 그렇게 물으니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벌을 받을 일들이 아니었다. 도준이나 승찬이는 오히려 위로나 칭찬을 받아야 하지 않았을까. 한 동료 교사와 대화를 나누다 삭발 얘기를 꺼냈다. 삭발했다고 벌을 주는 건 문제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참 있다가 그로부터 메시지 하나가 왔다. 교칙에 삭발 관련 규정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놀라웠다. 삭발이 뭐가 문제지?

그러나 학칙에는 이유가 없다. '삭발은 처벌한다'고 하면 끝이다. 기준 역시 불필요하다. '심하게' 화장을 하면 처벌한다는 규정에 객관적인 화장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그런 '묻지 마' 규정에 걸려들어 '전과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평범한 아이들이 한두 번의 실수 때문에 문제아 취급을 받는다는 건 분명 문제다.

현우와 광수는 담임 종결 사안으로 처리했다. 서로 화해하게 하려고 편지를 쓰게 했더니 둘 다 진심이 묻어나는 편지를 써서 내게 건네주었다. 다행이었다. 현우와 광수를 위해 월요일에 정식으로 화해식을 가지려고 한다.

영무와 수현이 건은 아직 미지수다. 주말을 이용해 부모님들과 충분히 대화를 나눈 뒤 결정하자고 했다. 그에 따라 담임 선에서 화해 중재를 거쳐 마무리할 것인지, 정식 학폭 사건으로 접수시켜 절차에 따라 처리할 것인지 결정된다.

문제는 학폭 사건으로 넘겼을 때다. 아이들의 싸움이 학폭 사건이 되면 맨 먼저 5~10인의 교내·외 위원으로 구성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열린다. 그 전에 영무와 수현이는 가해·피해 학생으로 나누어지기 위한 조사 과정을 거친다.

여기에서 가해자로 지목되면 최종 학폭 처리 결과가 학생생활기록부(학생부)에 기재된다. 확실한 '낙인'이 찍히게 되는 셈이다. 상급학교 진학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이중처벌 등의 문제도 떠안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 경찰청이 전국 초·중·고교의 학교폭력 가해자․피해자 정보를 데이터베이스(DB)로 한데 모으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한겨레> 6월 15일자 기사 "경찰, 학교폭력 가해·피해자 정보 DB화 추진 논란" 참조) 학교전담 경찰관이 학폭 가해․피해 학생의 개인정보와 학폭 관련 제반 사항들을 일일이 입력해 관리하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영무(가명)와 수현(가명), 현우(가명)와 광수(가명) 모두 평범한 아이들이다. 주먹질은 우발적인 충동과 순간의 격정에서 시작되었다. 삭발한 도준이와 승찬이는 이른바 '문제아'와 거리가 아주 먼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학폭 사건 처리 시스템 안으로 들어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학폭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처리하는 일련의 과정은 건조하다. 아이들은 철저하게 대상이 된다. 조치 결과가 어떻든 학생부에 기재된다. 아이들이 겪을 심리적 부담감과 상처가 적지 않다. 이에 더해 아이들은 장차 경찰에 의해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영무와 수현이가 각자의 잘못을 인정하고 서로 진심으로 화해하기를 바라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태그:#학교폭력,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문제아, #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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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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