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일주일 따라 다녀보면 어떨까', 이 질문으로부터 '팔로우'는 시작됐습니다. 이왕이면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던 남자 연예인을 뒤쫓고 싶은 바람이 개인적으로 없지 않지만, 코너 이름이 '스토커'로 변질되는 일이 없도록 사람, 사물, 현상을 가리지 않고 '팔로우'하겠습니다. [편집자말]
* 1편 '이모도 AOA 팬이 될 수 있을까'에서 이어집니다.

AOA, 머릿수 많은게 우리 장점! 걸그룹 AOA가 22일 오후 서울 광장동 악스코리아에서 열린 세번째 미니 앨범 <하트 어택(Heart Attack)> 발매 쇼케이스 및 기자간담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7개월 만에 컴백하며 라크로스 선수로 변신한 AOA 멤버들은 이성에게 첫 눈에 반한 여성의 설레는 마음을 '심쿵'이라는 신조어로 풀어낸 타이틀곡 '심쿵해'를 통해 섹시하면서도 건강한 매력을 담은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 AOA, 머릿수 많은게 우리 장점! 걸그룹 AOA가 22일 오후 서울 광장동 악스코리아에서 열린 세번째 미니 앨범 <하트 어택(Heart Attack)> 발매 쇼케이스 및 기자간담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7개월 만에 컴백하며 라크로스 선수로 변신한 AOA 멤버들은 이성에게 첫 눈에 반한 여성의 설레는 마음을 '심쿵'이라는 신조어로 풀어낸 타이틀곡 '심쿵해'를 통해 섹시하면서도 건강한 매력을 담은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 이정민


슬로건까지 갖추니 다음날 Mnet <엠카운트다운> '사녹(사전녹화)' 방청하러 가는 발걸음에 당당함이 묻어났다. 다만, 방송국인 상암동 CJ E&M 건물이 내가 근무하는 회사 바로 앞이라는 게 좀 신경 쓰였다. 평소 출퇴근할 때 길게 늘어선 팬들을 보며 "아, 오늘 목요일(<엠카운트다운> 방송일)이구나" 상기시켜주곤 했던 그 상징적인 줄 안에 내가 서 있게 될 줄이야.

오프를 세 번 뛰었을 뿐인데, 얼굴이 낯익은 팬들이 꽤 보였다. 이날은 50명 정도가 모였다. 앞선 녹화가 지연되는 바람에 집합한 지 3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AOA와 만날 수 있었다. 다행히 어제 못 봤던 '심쿵해' 무대를 녹화할 참이었다. 팬매니저들이 응원법을 적은 종이를 나눠줬는데, 몇몇 외국인 팬들과 나는 시험 보러 들어가기 전 핵심노트처럼 손에 꼭 쥐고 연습했다. 어려운 건 아니고, '반해 반해' '심쿵해' 같은 이른바 싸비(후렴, 노래에서 같은 가락으로 되풀이해 부르는 짧은 몇 마디의 중요 부분)를 큰소리로 함께 외치는 식이다.

남성 팬들의 응원은 확실히 달랐다. 여성 팬들이 "꺅" 하는 소프라노에 특화돼 있다면, 그보다 음역대가 낮지만 깊이와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때가 아니면 슬로건을 언제 써보겠나 싶어 다른 팬들을 따라 수줍게 흔들어 보니 정말 엘비스(ELVIS, AOA 팬클럽명)가 된 것 같다. 스마트폰으로 멤버들의 이름이나 문구를 띄워놓고 응원하는 팬들도 있었다. 예전엔 형광 도화지에 글자 하나하나를 장인정신으로 새겨 플래카드를 만들었는데, 이쪽 세상도 좋아졌다.     

돈을 주고 CD를 산 게 얼마 만인가

AOA 설현, 섹시하고 건강하게 걸그룹 AOA의 설현이 22일 오후 서울 광장동 악스코리아에서 열린 세번째 미니 앨범 <하트 어택(Heart Attack)> 발매 쇼케이스 및 기자간담회에서 타이틀곡 '심쿵해'를 열창하며 섹시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7개월 만에 컴백하며 라크로스 선수로 변신한 AOA 멤버들은 이성에게 첫 눈에 반한 여성의 설레는 마음을 '심쿵'이라는 신조어로 풀어낸 타이틀곡 '심쿵해'를 통해 섹시하면서도 건강한 매력을 담은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 AOA 설현, 섹시하고 건강하게 걸그룹 AOA의 설현이 22일 오후 서울 광장동 악스코리아에서 열린 세번째 미니 앨범 <하트 어택(Heart Attack)> 발매 쇼케이스 및 기자간담회에서 타이틀곡 '심쿵해'를 열창하며 섹시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7개월 만에 컴백하며 라크로스 선수로 변신한 AOA 멤버들은 이성에게 첫 눈에 반한 여성의 설레는 마음을 '심쿵'이라는 신조어로 풀어낸 타이틀곡 '심쿵해'를 통해 섹시하면서도 건강한 매력을 담은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 이정민


3시간을 기다렸는데, 사전녹화는 5분 만에 끝났다. 4시간 정도 더 기다리면 본방송까지 방청할 수 있지만, 다른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번 주에만 세 번의 팬사인회가 있는데 각각 종로, 용산, 신촌의 지정된 판매처에서 AOA 새 음반을 사야 응모할 수 있다. 추첨인원은 각 100명. 누군가는 1장만으로 당첨되고 운 없는 누군가는 5장으로도 실패했다는 짜릿한 모험의 세계다. 노래를 음원으로 듣는 시대가 된 이후 CD를 돈 주고 사본 게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데, 12500원짜리 음반을 몇 장이나 사야하는지 심한 내적갈등에 휩싸였다.

이날 응모가 마감되는 종로로 향했다. Y군이 전날 구매했을 때 응모번호 100번을 조금 넘겼다고 했다. 확실히 승산이 있었다. '안전빵'으로 두세 장 지를까, 하며 일단 한 장을 결제했는데... 맙소사, 응모번호 450번. 마감까지는 아직 6시간이나 더 남았고, 나는 희망을 잃었다. 거창하게는 음반판매량의 허와 실을 느끼며, 나는 정상적으로 응모하겠다는 그럴듯한 합리화 끝에 한 장만 사서 돌아왔다. 결과는 '꽝'이었다. AOA를 한 뼘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넘어야 하는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스타를 넘어 콘텐츠를 움직이는 팬덤의 힘

 그룹 AOA 새 앨범 <하트 어택>을 구매하면 주는 팬사인회 응모권. 100명을 추첨하는데, 내 응모번호는 450번이었다.

그룹 AOA 새 앨범 <하트 어택>을 구매하면 주는 팬사인회 응모권. 100명을 추첨하는데, 내 응모번호는 450번이었다. ⓒ 이현진


더 큰 출혈을 감내해야 하는 사인회가 아니었던 게 어디냐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독였다. 이를테면 AOA가 광고하는 브랜드의 운동화 15만 원 이상 구매고객에 한해 선착순으로 사인권을 주는 이벤트. 실제로 오프에서 만난 팬들은 대부분 그 브랜드의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호갱'이 되는 줄 알면서도 스타를 보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지갑을 여는 팬들. 그들을 상대로 한 장사는 예나 지금이나 성업 중이다.

어떻게 보면 무모하다고도 할 수 있는 애정과 열정 때문에 팬들을 '빠' '덕후'로 비하해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지나친 조공(선물), 사생팬 등 기형적인 팬 활동은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여겨지고 있다. 나 역시 그 광적인 에너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들에게 접근했고, 팬이 아닌 입장에서는 이해 불가능한 점들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좋아하는 스타를 넘어 콘텐츠를 움직이는 그들의 힘에는 새삼 놀랐다.

소비하는 이들이 있기에 음반이 만들어지고,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제작되며, 기업에서는 광고모델로 활용한다. 분명히 돈이 오가지만 '팬덤 경제' 안에서는 일반적인 자본주의로 설명할 수 없는 특수한 부분들이 존재한다. 예로, 음악 프로그램은 팬들이 응원하는 모습과 환호가 필요한데 팬들은 이를 기꺼이 수행하고도 노동의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든 그 일을 하고 싶어 줄을 선다. 5분을 보기 위해 수 시간을 기다리고도 화를 내기는커녕 감사해 하는 소비자는 팬이 아니라면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엘비스 코스프레를 끝낸 내게는 비닐포장도 뜯지 않은 CD와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팬싸 응모권, 슬로건으로서의 소임을 다 한 빨간 수건이 남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심쿵해'를 들으면 어깨가 저절로 들썩이고, AOA만 보면 내 자식처럼 응원하고 싶어지는 부작용이 생겼다. 아, 혹시 이것이 말로만 듣던 '입덕'인가.

 AOA 새 앨범 <하트 어택>과 응원도구인 슬로건.

AOA 새 앨범 <하트 어택>과 응원도구인 슬로건. ⓒ 이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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